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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철 Jan 17. 2017

피해자 코스프레

성장 과정(1)에 대한 반론

이 글은 이전 썼던 성장과정(1)에 대한 다른 방향에서의 생각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저질러 온 무서운 잘못에 대해 고백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이전에 비해 놀림당하는 일이 늘어났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 외톨이 책걸상은 분명 내가 그렇게 하고자 해서 선생님께서 놓아주신 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놓인 것이 아니다. 기억에 없지만, 선생님은 내게 의향을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의향을 묻지 않았다고 해도, 나는 언제든 되돌릴 수 있었고, 다른 조의 모인 책상에 내 책상을 붙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다른 사람들을 따돌리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기 시작한 것은. 나는 나를 항상 피해자라고 여겼다. 피해자로 있으면 무엇이든 남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언제나 착한 아이로 있을 수 있다. 나는 중학교 이후의 시절조차도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연속으로 여겼다. 나는 계속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장과정(1)을 쓰고 다시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6학년 이후부터는 나를 직접적으로 심하게 괴롭힌 가해자는 없었다. 그저 가벼운 놀림 정도였고, 거기에 과민 반응한 것은 언제나 나였다. 피해자라고 보기에는 나는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은 편에 속했다. 실제로 나는 중학교 때 단체 발표를 할 때도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고, 아이디어를 주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도 내게 호의로 대해 준 사람은 많았고, 선생님과도 많이 상담했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학교를 계속 다녔다. 그들이 내민 손을 받지 않은 것은 나 자신이다. 오히려 나는 내게 이득이 되는 것만 골라 취했다. 야자를 빼는 것 같은. 혼자 있기 위해 나 자신과 주변을 속인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던 나는 그리 나쁜 상태는 아니었던 나의 학창 시절을 눈물을 칠해 왜곡시켰다. 스스로가 만든 '피해자'의 대본에 맞춰 연기했다고 봐도 된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나는 나를 진짜 피해자로 믿고 말았다. 아주 큰 현실도피를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도피는 점점 규모를 키워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3년간의 히키코모리 생활이라는 것도 그 실체는 피해자 코스프레의 연장선일지도 모를 일이다. 가족이나 타인이 내미는 손을 뿌리치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도. 나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서 가족을 대신해 총대를 맨 동생의 진심 어린 충고를 앞에 두고도 적당히 얼버무리고 있다.


내가 인정하지 못한 사실은 상당히 많다. 사실은 성립하지 않는 가해자-피해자의 관계를 억지로 만들어 내가 다른 사람들을 따돌린 것, 그런 편견에 스스로를 가둔 것,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 되어 갖은 현실도피를 저지른 것이다. 내가 아스퍼거 진단을 받은 것과는 상관없다. 사람은 겉으로는 그러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로 무의식 중에 행동하는 것인가 보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어찌 되었건 나는 진실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 진실이 있는 현실로 내려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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