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WBC 때 태극기를 들며 야구 한국 대표팀을 응원할 수 있을까?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줄여서 WBC가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 열리는 WBC는 우리나라 최초의 돔구장인 고척 스카이돔 야구장에서 열리기도 해서 많은 야구팬들이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WBC가 왜인지 걱정이 된다. 한국 야구대표팀의 전력이 약해보이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걱정하는 문제는 바로
태극기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 세력"(일단, 보수 세력이라고 해두겠다.)은 탄핵 반대 집회의 상징물로 태극기를 사용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태극기 집회"이다. 그들은 태극기를 들고 애국심(이라고 해두겠다.)을 모아 박근혜 대통령의 위기를 막아내고, 더 나아가 탄핵을 주도한 사람들(그들의 말로는 종북세력)을 박멸하자고 외친다. 하지만, 그들이 태극기를 선택한 '작용'은 탄핵을 찬성하는 마음으로 촛불을 든 사람들 사이에서 태극기에 대한 혐오가 일어나는 '반작용'을 일으키고 말았다. 이를 걱정한 몇몇 사람들이 촛불집회 때 태극기를 들고 탄핵찬성을 외치고,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담은 노란 리본을 태극기에 달아 나눠주는 등 태극기 자체에는 죄가 없다는 점을 알리려고 하지만, 태극기에 대한 혐오를 완전히 씻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런 상황에서 WBC가 개막하고, 우리나라 야구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고척돔으로 갈 때 태극기를 손에 쥐고 가서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까지도 껄끄러워질 것 같아 정말 걱정이다. 생각해보면 그들이 태극기를 들기 전까지, 스포츠 행사에서 태극기를 보는 것은 꽤 멋진 일이었다. 2002년 월드컵 때,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펼친 대형 태극기는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그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우리는 태극기를 들며 하나가 되었고, 거리에서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며 우리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였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하나 된 긍지와 열정, 그리고 에너지의 상징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들이 탄핵에 반대하면서 태극기를 든 순간, 태극기는 긍지와 열정의 상징에서 끌어내려졌다. 아니, 그들이 끌어내렸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박근혜 정권 들어 순전히 좋은 뜻으로만 쓰이던 몇몇 단어들이 "보수 세력"에 의해 혐오의 대상이 된 것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당장 나도 스포츠 경기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하여 단상에 태극기가 게양되는 것이 이상하게 껄끄럽다. 머리로는 "저들의 태극기와 지금 단상에 올라가는 태극기는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2017년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도 개최되고, U-20 월드컵 본선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축구 예선이 개최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국기인 태극기가 특정한 세력에 의해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무엇을 들고 우리의 선수들을 응원해야 할까? 나 하나의 괜한 걱정이 아니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