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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철 Mar 08. 2017

새로운 가능성

「제3의 직장」을 읽다


"목표를 위해서는 기반이 필요하다."


이전 글을 쓰면서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긴 나는 그 '기반'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예전처럼 잡코리아나 사람인, 인크루트, 워크넷 같은 구인구직정보 사이트를 이용할 것인가? 이 사이트에 올라오는 정보를 신용할 수 있는가?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 새롭게 자신을 정립한 나의 기반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여러 가지 고민들이 새로 생겨나면서 나는 구인구직정보 사이트에 손이 가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우연히 한 책을 찾았다. 그 책은 서문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전략)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는 청년을 비롯하여 재취업을 원하는 시니어(senior)는 대부분 정부나 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한다. 그러나 정부나 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경쟁이 치열할 뿐만 아니라, 막상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된다고 해도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직업만족도를 얻지 못한다. 소득·안정성·자기계발·성취감·사회기여도 등 여러 측면에서 공무원과 회사원의 직업만족도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관료제로 이루어져 있고, 공식적인 의사결정체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수십,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이 된다고 해도 대부분 정해진 틀 속에서 반복된 업무를 계속할 뿐이다. 관료제의 위계 속에서 근무하다 보면 어느새 명령에 복종하는 기계로 변하고 만다. 기업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성과에 집착한다. 따라서 흔히 사람들은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좋아하지만, 회사원으로 근무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물신성을 추종하는 동물이 되어버리고 만다. 취직 10년 차의 영혼이 없는 공무원, 돈의 노예가 된 회사원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후략)

현대의 직장의 문제이고, 내가 취업을 망설이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그 책은 직업만족도 저하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시민사회나 비영리 영역 같은, 이른바 '제3섹터'로의 길을 걸을 것을 권하였다. 제3섹터에는 인간적인 가치와 삶의 질을 높이는 일자리가 많이 있으며, 그 일자리들은 자신의 발전을 위한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고도 서술하였다. 그리고 15개의 사례를 들어 그 주장을 뒷받침하였다. 책의 이름은 「제3의 직장」이었다.


이 책에서 제시한 15개의 가능성의 사례는 각각 NGO박물관 큐레이터, 국제원조 코디네이터, 공공 식물원, 공정무역회사, 노인권리 운동, 비영리단체 모금, 문화유적답사 가이드, 다큐멘터리 문화 전파, 영성 순례, 웰다잉(Well-dying), 기업 사회공헌 지원, 대안학교, 마을공동체, 사회적 기업, 그리고 NGO 인큐베이팅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신념과 정신적 만족을 우선하여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멋진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문화유적답사 가이드를 선택한 준구 씨의 사례에 크게 공감했다. 소설가를 지망하던 준구 씨는 취직을 꿈꾸면서도 일과 글의 밸런스가 깨지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보통 준구 씨 같은 사람들은 신문사·잡지사·출판사 등에 취직하여 일과 글의 밸런스를 맞추려 시도한다. 내가 이전까지 생각하던 것과 완전히 일치했다. 글을 전달하는 매체를 만드는 회사에 취직하면 글을 쓰면서 일할 수 있다. 그래서 글에 꿈을 품은 많은 이들이 출판 관련 업계를 지망하였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준구 씨는 문화유적답사 가이드를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을 살린 소설을 집필하거나, 문화유적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깊이 연구하고, 커리어를 더욱 개발하여 다양한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택하였다. 준구 씨의 사례를 읽으면서 나의 눈이 번쩍 뜨였다. 글이란 순전히 머리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중요하다. 다양한 장소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얻은 경험과 그 경험으로 느낀 감정, 확립된 소신 등을 자신의 글에 녹여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거치면 거칠수록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태봉 씨와 그의 동료들이 공공 식물원을 만들면서 세운 직장에 대한 이상도 인상적이었다.

(전략) 창조적인 직장이란 무엇인가? 아마 그것은 마지못해 출근하고 월급을 받기 위해 일하는 그런 직장은 아닐 것이다. 한마디로 직장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창출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타율적으로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노동이 가능하고, 노동 속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며, 타인의 삶의 향상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습관적 관행이 아니라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고, 도전성이 내재되어 있고 일정한 긴장도 필요로 하며, 자유롭게 시간관리를 할 수 있고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들이 간절하게 찾고 있는 직장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후략)

즉, 의미 없는 타율적 반복과 소모가 아닌, 자율에 의거한 도전과 향상. 태봉 씨와 동료들이 바란 것은 그런 것이 가능한 직장이었다. 준구 씨나 태봉 씨처럼, 현대의 직장에서 찾기 어려운 것. 가치. 그 가치를 찾기 위해 용기를 내어 제3섹터를 선택한 15명의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있었다.


이 책은 2013년에 쓰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제시하는 제3섹터의 가능성은 2016년을 거쳐 2017년이 된 지금 더욱 빛나고 있다. 2016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가 선언되었다.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기술의 발달로 전례 없는 파괴적 혁신이 벌어지면서 인간의 노동의 대부분은 기계로 대체되는 세계가 시작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에 따라 지금까지 인간이 가져온 일자리 중 과반수 이상이 미래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많이 나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여러 자료를 접한 나는 과연 어떤 영역의 일자리가 인간의 것으로 남을 것인지를 생각해왔다. 지금 내가 가장 되려 하는 '작가'같은, 유무형의 콘텐츠를 만들어내어 많은 이들에게 보급하는 영역의 일자리, 그리고 인간다움을 중시하며 공동체의 발전에 힘쓰는 영역의 일자리가 인간의 것으로 마지막까지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기업이 대부분의 노동력을 기계로 충당하게 될 경우, 제3섹터의 영역은 더욱 확장되는 것은 아닐까?


즉, 「제3의 직장」이 제시한 제3섹터의 미래는 어쩌면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전망이 밝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분야로의 취직에는 미래의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고 찾아낸 새로운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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