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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철 Apr 19. 2017

파이어 엠블렘(3)

개인들의 결과물은 조직의 결과물보다 빠르다?

지난 글에서 다룬 이야기처럼, 「파이어 엠블렘 if」(이하 「if」)가 한국에 로컬라이징 되어 출시되기 전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if」가 일본에 출시된 것이 2015년 6월이었으니 대략 1년 3개월 정도 걸린 셈이다. 그전에 「if」는 북미 지역에 「Fire Emblem Fates」라는 이름으로 영어 버전이 출시되었고, 그때가 2016년 2월이었다. 하지만, 2016년 2월 이전부터 인터넷상에서는「Fates」의 영어 플레이 영상이 마구 돌아다녔다. 홍보 영상이 아닌, 실제 플레이 영상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닌텐도 3DS 유저들 중 일부는 특정한 방법을 사용해 닌텐도 3DS에 커스텀 펌웨어를 설치하여 사용한다. 커스텀 펌웨어가 설치된 3DS는 게임 카트리지의 파일을 메모리에 복사할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복사한 데이터를 PC 등을 이용해 해독하는 것을 '데이터 마이닝'이라고 한다. 2015년 6월, 「if」가 일본에 발매되었을 때, 커스텀 된 3DS를 가진 사람들은 일본어 버전인 「if」를 입수한 다음, 데이터 마이닝으로 카트리지 내부 데이터를 해독하였다. 특히 그들은 해독된 데이터 중에 언어에 관한 부분을 찾아내었고,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일본어 지식을 이용하거나 웹 번역기를 이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게임 내부의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게임의 번역이라는 것은 단순히 게임 내의 텍스트를 모두 자국의 언어로 바꾸는 것만이 아니다. 게임 그래픽에 새겨진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꾼다는 것은 그만큼 게임의 그래픽 자료를 수정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예를 들면, "예/아니오" 버튼을 "Yes/No" 버튼으로 바꾼다고 하자. 이 경우 다시 작업해야 하는 그래픽 파일은 4장이다. 각각의 버튼에 커서를 가져다 대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버튼 표시 경우의 수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번역 작업 속도는 상당히 빨랐고, 한두 달 안에 영문 플레이 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준이 되었다.「if」가「Fates」로서 북미 지역에 발매되기도 한참 전에. 물론 이것은 일종의 '해적 영어판'이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일단은 법규 문제를 들 수 있겠다. 게임을 로컬라이징 한다는 것은 단순히 게임 내의 언어를 번역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현지에 적합하도록 게임의 내용을 수정하는 작업도 포함한다. 예를 들면 「포켓몬스터」의 경우 이전에는 최초로 발매된 일본어판 게임 내에 카지노식 도박 콘텐츠를 집어넣었는데, 일본 이외의 국가에서는 그것을 다른 미니 게임으로 대체하는 작업도 로컬라이징에 포함되어서 기간이 많이 늘어나는 문제가 있었고, 어느 시점에서 일본어판 게임에도 도박 콘텐츠를 집어넣지 않게 되었다. 「Fates」의 경우에는 여성 캐릭터들의 과도하게 선정적인 의상 일부를 게임 내에 표시하지 않게 하는 것도 수정 작업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심의에 통과해야 로컬라이징이 완료된 게임을 출시할 수 있다.


그리고 음성 더빙 문제. 최근 게임에는 많은 성우를 기용하여 게임 내의 캐릭터들의 대사를 녹음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자국 성우들을 캐스팅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게임 내의 파일로 변환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일본 성우들의 목소리도 게임 내에 담아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음성 변환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능의 구현도 필요하다. 다만, 3DS의 게임 카트리지에 담을 수 있는 데이터의 한계 용량의 문제와 일본어로 된 주제가의 사용비 문제로 「Fates」의 경우에는 음성 선택 기능은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해적 영어판을 만드는 이들은 이런 제약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다르게 말하면, 공식적인 조직으로서 진행할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에 닌텐도가 낼 수밖에 없었던 빈틈을 파고들어 빠른 속도로 해적 영어판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해적 영어판의 등장은 닌텐도가 만든 공식 영어판의 판매량에도 일정 부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해적'의 창궐을 막는 방법은 제작과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빈틈을 가능한 한 줄여서 전 세계에 거의 같은 시기에 로컬라이징이 완료된 제품을 공급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번에 출시되는「파이어 엠블렘 에코즈」의 경우에는 일본과 그 외 지역의 발매 간격을 1달로 크게 줄이는 데 성공하였고, 한국에도 빠른 시일 내에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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