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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철 Jun 09. 2017

아직도 무의식은  거부하고 있는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의 나는 오랜 칩거 생활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온 학생이었다. 모두가 나를 환영해주고, 수업도 잘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울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도 아니다. 특정한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적응하지 못할 요소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여튼 학교에 돌아갔는데 이상하게 울고 싶었다. 끝.


일전에도 이 브런치에 밝힌 적이 있었지만, 나는 신검에서 4급 판정을 받아서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을 근무하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일반적인 대한민국 남성이 평생 동안 꾼다는 이른바 '군대 꿈'을 안 꾸는 편이다. 나의 경우 군대 꿈의 자리를 '학교 꿈'이 대신하고 있다. 학창 시절 동안 쌓인 것이 워낙 많아서 그런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나 스스로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서 학교에서 있었던 트라우마, 즉, 슬픔과 두려움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누구의 잘못이었는지 생각했다. 그렇게 나를 들여다본 결과 나는 학교 꿈의 공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자주 꾸던 학교 꿈의 횟수도 줄었으니까. 그런데, 다시 학교 꿈을 꾸고 말았다. 아직 내게는 학교에서 가졌던 슬픔이나 두려움이 남아있는 것일까?


꿈은 무의식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오랜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끝내고 다시금 취직이나 창직에 도전하려 하는 시점이다. 그 시점에서 나는 이런 꿈을 꾸었다. 혹시 이것은 내면의 목소리가 아닐까? 천천히 다시금 해석해보았다. 학교란 단체생활, 조직생활을 의미한다. 그곳에 돌아갔다는 것은 내가 어떻게든 취업에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취업 성공은 나에게도, 나를 지탱해주었던 사람들에게도 모두에게 기쁜 일인데 나는 우울하고, 울고 싶어 한다. 심지어 조직에는 부적응을 유발하는 요소도 없다. 괴롭히는 사람도 과도한 업무도 없다.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데 나만 우울하다. 내가 생각한 결론은 이렇다.


나는 아직도 조직생활이나 단체생활을 두려워하고 있다.


무리는 아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취업을 다시금 결심한 사람이 기업에 이력서나 자소서 한 장 안 내고 있는 이유가 없다. 게다가 최근에 읽은 국민일보의 기획기사인 '대한민국 신입사원 보고서'에서 회사라는 조직의 전근대성이나 그것으로부터 오는 부적응 가능성을 충분히 읽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조금씩 해결해가는 것이 글쓰기를 통해 자신감을 다시금 세우는 데 성공한 나의 다음 단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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