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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철 May 18. 2017

대선을 돌아보다

60분처럼 흘러간 60일

문재인 대통령이 정식으로 취임한 이후 1주일이 지나가고 있다. 아직 꿈속에 있는 느낌이고 제대로 정권이 바뀌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대한민국에 벌어진 수많은 변화는 진짜다. 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광주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 수많은 변화를 발생시킨 60일간의 대선 레이스 동안 있었던 일들과 느낌들을 후보별로 정리하기로 했다. 일종의 대선 리뷰다.  참고로, 이 글은 조금 편파적이다.


심상정과 정의당. 상승한 존재감의 뒷면.


먼저 심상정부터 시작하겠다. 왜 심상정부터 시작하냐면 득표 순위의 역순이기도 하고, 1년 전의 총선에서 내가 준 정당 표 1장에 의해 당선된 비례대표 의원이 국회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상정은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직후에는 있는 듯 없는 듯하였지만, TV 토론회를 기점으로 급속도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존재감의 상승은 지지율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결국 진보계열 정당 사상 최다 득표수를 기록하는 작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대선 직후 발표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뒤를 이어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승한 존재감과 득표율, 지지율과는 별개로 나는 심상정이 속해 있는 정의당이라는 당 자체에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그것은 상승한 지지율을 득표율로 끌어올리기 위한 중후반의 선거전략이 나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나는 대선 기간 중, 이런 글을 써서 정의당의 선거전략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의당은 이른바 '극단적 여성주의'와의 절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다. 아마도 문재인 정권 임기 내에 인터넷의 극단적 여성주의 커뮤니티 문제가 아주 크게 거론될 때가 올 것이다. 마치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당시의 '일베'처럼. 


앞으로 정의당은 대한민국의 진보계열 정당이 걷지 못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 길을 제대로 걷기 위해서는 끊어내야 할 것은 끊어내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유승민과 바른정당. 바깥은 지옥.


유승민은 속된 말로 '장렬히 전사'했다.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세운 신생 정당인 바른정당의 후보로 출마한 유승민은 대선 기간 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박근혜가 묶어놓은 '배신의 정치'라는 주박에서도 벗어나지 못했고, 지지하지 않는 층에서는 '그놈이 그놈'이라는 싸늘한 시선과도 마주해야 했다. 게다가 당 내에서는 타당 후보와 단일화하자는 이들의 끊임없는 견제를 받았고, 심지어 바른정당 결성 의원 중 12명이 탈당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어떤 이들은 이 모습을 보고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당시 후보를 골치 아프게 한 이른바 '후단협 사태'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유승민은 대선날까지 버티는 데 성공했다. 이 시점에서 그는 나름대로의 승리를 한 셈이다.


하지만, 유승민은 앞으로도 지옥의 길을 걸어야 한다. 박근혜 정권의 공신 중 하나였다는 자신의 과거와 싸워야 하고, 자신이 주창하는 '개혁보수'를 더욱 갈고닦아 사람들로부터 인정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아있어야 한다. 바른정당이 결국 무너지고 다시 홀로 남겨지면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이기에. 그의 진정한 시련은 바로 지금 시작되었다.


안철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안철수는 이번 대선 기간 동안 가장 드라마틱한 상승과 추락을 경험한 인물일 것이다. 5개 당의 대선 후보가 확정된 시점에서 지금까지 반기문-황교안-안희정으로 유랑하던 이른바 '반문 보수표'의 4번째 기착지가 되었다. 한때 문재인과 양강 구도를 형성하였고, 당선까지 바라보던 후보는 어떻게 3위로 대선을 마치게 되었을까? 그 해답은 '유치원'에 있었다. 안철수가 사립 유치원 원장들의 모임에서 한 발언이 거대한 폭풍을 몰고 온 것이다. 이 날의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 용어로 '맘스터 콜'이 새로 생겼다. '맘스터 콜'은 만화 「원피스」에서 해군들이 강대한 화력을 아낌없이 퍼부어 목표를 섬멸하는 공격을 일컫는 '버스터 콜'을 변형시킨 단어인데, '맘 카페'에 가입한 어머님들의 정보 전파 속도와 대응력, 영향력이 그만큼 엄청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을 함부로 건드린 안철수는 지지율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하락세의 지지율에 기름을 부은 것은 안철수 본인의 TV토론 능력 부족이었다. 특히 문재인에게 "제가 갑철수입니까?", "제가 MB아바타입니까?"하고 묻는 것은 나도 내 귀를 의심한 순간이었다. '갑철수'나 'MB아바타' 같은 단어들로 정당에서 네거티브 공격을 한 적이 없다. 보통 친구들끼리 만날 때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정말 가볍게 쓰는 단어들이다. 아니, 나는 지금까지 'MB아바타'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걸 후보가 했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게 주홍글씨를 새긴 것이다. 이 날의 토론 이후 안철수가 문재인을 이겨줄 것이라 기대했던 보수표들도 급격히 빠져나갔다. 안철수는 결국 3위로 대선을 마쳤다. 안철수는 대선 패배 직후 재도전을 선언했지만, 자기 스스로가 새겨버린 주홍글씨를 간단히 벗어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홍준표. 말의 대가


박근혜 탄핵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유한국당의 대선후보 홍준표의 목적은 명확했다. 어떻게든 당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득표율을 내는 것이다. 그 '죽지 않을 정도'의 기준은 득표율 15% 이상이다. 선거법에서는 출마한 후보의 득표율이 15% 이상이면 국고로 선거비를 전액 보전해준다. 따라서 홍준표는 철저한 타겟팅 전략을 사용하였다. 그의 말은 철저하게 그가 선택한 '타깃'만을 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전략이 적중하여 안철수에게 향했던 보수표들의 최종 기착지 역을 하는 데 성공했다. 박근혜의 탄핵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홍준표로 이른바 '심리적 단일화'를 이루었다. 덕분에 자유한국당은 당의 기반을 지켰다. 이전보다 매우 쪼그라들긴 했지만.


하지만, 기반 보전의 대가는 컸다. 무엇보다도 그의 말은 양날의 검이었다. 홍준표의 말은 그가 타깃으로 삼은 대상에게는 아주 효과가 뛰어났지만, 그 외의 대상에게는 혐오스러운 막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의 말이 후보 본인의 이미지에만 영향을 끼치면 좋겠지만, 무대는 대통령 선거였다. 한 당에서 한 후보만 나와서 벌이는 최대의 승부. 후보는 곧 당의 얼굴이며, 후보의 말은 당의 말이다. 홍준표에 의해 자유한국당은 일종의 '레벨 다운'이 벌어졌다. 대선 후에도 본인을 포함해 자유한국당 인사들이 말한 '바퀴벌레', '낮술', '육모방망이' 같은 단어들로 보아 자유한국당의 수준이 홍준표와 동일한 정도까지 떨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자유한국당의 대선 후보의 목적은 자신의 가치 상승이라고 생각하여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면 가치 상승은 완전히 실패하고, 오히려 가치를 하락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잠시나마 그들에게서 나를 겹쳐보았던 나 자신이 한심해진다.


문재인. 모두가 하나가 되어있다.


대선 기간 동안 지켜본 문재인은 그야말로 모두가 하나가 되어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의 연설을 들었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간절함을 품고 있었다. 한 개표소에서의 일화인데, 다른 후보에게 기표한 용지의 경우 기표 표시가 사각형을 벗어나거나 조금 삐뚤빼뚤하게 되어있는 반면, 문재인에게 기표한 용지는 하나같이 사각형 안에 똑바로 표기가 되어있다고 하였다. 소중한 표가 무효표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절박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당도 그의 당선을 위해 한 몸처럼 움직였다. 서로 갈등하던 이들이 하나가 되었다. 공직의 위치 때문에 문재인을 돕기 어려운 경선 당시 후보들을 대신해 그들의 사람들이 전폭적으로 문재인을 도왔다. 특히 '비문' 계파의 거두였던 박영선의 변신은 아주 놀라웠다. 혹자는 이 더불어민주당을 보고 전성기의 새누리당에 버금가는 조직력이라고 칭했다. 이것은 칭찬이다. 민주당계 정당에 부족했고, 새누리당계 정당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일사불란한 조직력이었다. 전성기의 새누리당은 이 강력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많은 선거에서 민주당을 눌러왔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정 반대로 민주당이 조직력으로 다른 정당을 압도하였다.


그리고 문재인은 시대가 요구하는 '테마'를 가장 잘 잡고 있는 사람이었다. 흔히들 대선에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을 붙잡은 자가 승리를 거머쥐어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시대정신이란 곧 시대가 요구하는 테마이다. 문재인은 시대가 요구하는 테마를 다른 후보들보다도 잘 이해하고 그것에 맞는 말과 행동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겼다. 그는 승리한 이후에도 테마에 따라 수많은 일을 해냈다. 특히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사는 문재인이 자신을 당선시킨 '시대정신'을 철저히 따를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외.


대선은 5인 만의 레이스가 아니었다. 주목받지 못한 곳에서 나름대로 레이스를 이어나간 8인이 존재했다. 박근혜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고 하는 조원진, 복면을 쓰고는 대통령 1년만 하겠다는 이재오, 통합진보당의 사실상 정신적 후속 정당인 민중연합당의 김선동, 장성민, 오영국, 이경희, 윤흥식, 김민찬. 이른바 2부 리거들이다. 이들은 최종 개표 결과 대략 17만여 표를 나누어 가졌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지난 대선의 2부 리거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나름의 사연이나 의지 같은 것은 읽을 수 없었다. 지난 대선에서 완주한 2부 리거들에게는 적어도 박수라도 쳐줄 수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박수를 쳐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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