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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철 Aug 03. 2017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이명준이다

다시 읽은 「광장」 1

고3 이후 대략 십여 년 만에 최인훈의 「광장」을 읽게 되었다. 그때는 읽어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지금 다시 읽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리하여 지금부터 몇 개의 글로 다시 읽은 「광장」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쓰고자 한다. 


저자는 「광장」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4·19 혁명에서 찾았다. 1960년 4월이 가져온 희망이 새로운 시대로 이어지는 것을 바라면서, 과거의 사람들이 어떤 곳에서 좌절했는가를 되돌아보자는 뜻이었을 터다. 하지만, 샐운 시대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었다. 5·16에서 시작된 군사정권이라는 아주 긴 어둠의 시대를 지나야 했다. 지난 9년간도 어둠의 시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새벽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시작된 균열은 거대한 붕괴를 낳았고, 다시금 새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면서 「광장」도 다시금 생명력을 얻었다고 본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이명준이 '변 선생'이나 '아버지'에게 토로한 사회의 실상들을 필사해보았는데, 그가 토로한 사회의 어둠은 놀랄 만큼 지금의 사회와 닮아 있었다. 옮겨 적으면서 전율이 일었다. 그가 토로한 해방 전후의 사회의 실상이 2017년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큰 틀에서 바뀌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사회에서 갑질과 폭력은 예나 지금이나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시장 뒤편의 어둠과 착취도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특히 놀란 부분은 그가 '문화의 광장'을 토로할 때였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떠오른 건 나뿐일까? 아니면 논리의 비약일까? 그리고 그가 북한 사회의 실상을 아버지에게 토로한 부분은 사실 '북한'을 '회사'라는 단어로 치환해도 성립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불러왔다. 그가 말한 '무거운 공기'는 당시의 북한이나 지금의 회사나 똑같지 않을까? 위대한 선구자들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행동으로 혁신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똑같지 않을까? 그저 양 떼들처럼 이리저리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들도 똑같지 않을까? 이런 전율을 필사 내내 느꼈다.


그런 어둠 가운데서 이명준은 첫 번째 소중한 것을 잃었다. 이명준이 갈구해왔던 것은 '공헌의 체감'이라고 생각한다. '공헌의 체감'이란 자신의 힘이 주변이나 세상을 점차 좋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믿음과, 그 믿음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이명준은 남한과 북한, 양 측의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던 '공헌의 체감'을 채우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무력감'만이 들어차가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무력한 감정. 쉽게 말하면 그는 '꿈'을 잃은 것이다. 꿈을 잃은 이명준은 애정을 갈구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하게 되었다.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사랑에 가장 가까이 간 사람은 북한에서 만난 '은혜'였지만, 그는 전쟁 속에서 죽고 말았다. 그리고 은혜가 죽은 순간, 이명준도 사실상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었다. 두 번째,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으니까. 


이명준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가 과거에 품었던 꿈과 공헌의 체감은 현실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잃어버리고, 그 자리에 무력감만이 들어차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과도 제대로 된 애정이나 유대를 나누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SNS의 힘으로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이명준의 '은혜'처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려운 시대. 결국 변태식을 구타하는 이명준처럼 폭력으로만 삶이나 유대를 확인하려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명준과 같은 최후를 맞는다. 


「광장」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아직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오지 못하고 길을 잃은 사람이다. 나는 이명준보다도 더욱, 애정이나 유대를 타인과 나누는 데 서투른 사람이다. 그것도 거의 선천적으로. 하지만, 나는 이명준처럼 '공헌의 체감'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다. 내가 가진 능력을 올바른 방식으로 사용해 주변이나 사회를 조금이나마 더 좋게 만들어가고 싶은 꿈이 아직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뭘 할 수 있나...'하는 무력감도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무력감에 지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한다. 변태식을 구타하고 싶지도 않고, 바다에 몸을 던져버리고 싶지도 않다. 그러기에 나는 볼품이 없고 비루하게 살더라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나를 세우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광장」은 내게 경고를 하고 있기도 하다. 자신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거라고.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근 10년 만에 나는 이 책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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