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원철 Aug 11. 2017

자기주도 학습

지난번, 「광장」을 읽고 감상을 다시 쓰게 되면서 놀란 점이 많았다. 그것은 아마 중고등학교 때 '수능이나 각종 시험에 잘 나오는 한국 근현대소설'로서「광장」을 읽은 것과 '내가 읽어야 할 개연성'을 느껴서 「광장」을 읽은 것의 차이라고 할 것이다. 사실 학교 근처에서 사는 참고서나 문제집에 「광장」 같은 소설이 실릴 경우 백이면 백 소설의 줄거리와 전체적인 주제 요약, 특정 단어나 문장에서 사용된 문학적 기교 설명, 문제풀이 등이 추가로 딸려 나온다. 1점이 중요한 학생들, 아니 학생이었던 우리들은 그 참고서에 수록된 내용을 때로는 달달 외워가면서 숙지하였다.


그런데 그 안에 「광장」을 읽은 나 자신의 의견이 들어갈 자리가 있을까?


1점을 위한다는 관점으로 소설을 처음 접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참고서에 쓰인 소설의 주제나 문학적 기교에 대한 설명 등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만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광장」의 주제는 '남북한 간의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빚어진 청춘의 비극'이라는 똑같은 답이 나오고, 심한 경우 주인공인 '이명준'은 '중립국 맨' 정도로 캐릭터의 희화화가 벌어지고 만다. 사실 「광장」을 시험문제로 출제할 때 지문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부분이 이명준이 남과 북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고 "중립국."만을 묵묵히 외치는 그 부분일 테니까. 그 "중립국."이라는 답이 나오기까지 이명준이 남과 북의 사회 내부에서 느낀 소외, 모순, 그리고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던 '은혜'를 잃는 등 그가 중립국을 선택하기까지 거쳐온 과정은 나오지 않게 된다. 결국 이명준은 '중립국 맨'이 되어버리고 만다. 고득점을 좇아 달달 외우다 보면 생기는 부작용이다. 


나는 이번에 「광장」을 다시 읽으면서 소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뀌었다. 바로 '이명준'이 '변 선생'이나 아버지에게 자신이 느낀 남과 북의 사회의 실상을 격정적으로 토로하는 부분인데, 워낙 그의 격정이 인상적이고 오랜 시간이 지난 현대에도 그가 토로한 모순점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껴서 그 부분만 따로 내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스크랩'해두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인 데다가 집에 스캐너 같은 장비가 없어서 책을 보고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은 다음 작가의 서랍에 저장해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보니 나는 적어도 「광장」에 한해서는 나 자신의 의견이 약간 생겼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또 하나의 사례를 알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옥루몽」이다. 「옥루몽」은「구운몽」이 참고서에 실릴 때 한 문장 정도로만 가볍게 언급된다. 

... 이러한 소설을 '몽자류 소설'이라고 하며, 아류적 작품으로 「옥루몽」, 「옥련몽」등이 존재한다.

결국 「옥루몽」은 '구운몽 짝퉁' 정도의 위치로 격하되기 일쑤다. 당시, 우연히 학교 도서실에서「옥루몽」을 구해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읽었는데, 오타가 많아서 조금 어려웠지만, 「옥루몽」만의 재미 포인트도 알 수 있었다. 「옥루몽」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암투적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당파 간의 권력 투쟁이나 여인들 사이의 싸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차별화된 부분을 자신이 찾는 과정을 거치게 되니 「옥루몽」은 단순한 「구운몽」의 아류작이 아니라


「옥루몽」은 「옥루몽」, 「구운몽」은 「구운몽」 정도로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어떤 계기가 되었든 간에, 자신이 무언가를 읽고 나름의 해석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이 써놓은 서평이나 해설에 나도 모르게 동조하게 되고, 읽은 것에 대한 진정한 일면을 보지 못하게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것은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의 어두운 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때 「옥루몽」을 읽고 그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그것을 구체화시켜준 경험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광장」을 읽으면서이다. 그래서 나는 그 두 작품에 감사한다.


p.s 최인훈의「광장」이 수록된 단행본에는 동 작가가 쓴「구운몽」도 같이 수록되어 있다. 나는 아직 최인훈의「구운몽」에 대해서 감상문을 쓸 정도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정리가 된다면 감상문을 올리게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이명준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