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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Aug 14. 2020

감정노동자들을 위한 변호

-손님, 여기서 진상 부리지 말고 나가세요

 얼마 전, 구두를 사러간 매장에서 한 아주머니가 상표택을 떼어놓고 환불을 해달라는 얼토당토안한 컴플레인을 하는 모습을 봤다. 직원은 상표가 뜯어진 상품은 환불이 불가하다며 계속해서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거의 15분이상을 입씨름을 하다가 결국 아주머니의 진상에 지친 직원이 질린 얼굴로 이번만은 해드리겠다며 힘없이 환불해주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내가 더 답답하고 화가 났다. 대체 저 직원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저렇게 혼을 빼놓을 정도로 사람을 괴롭히는 걸까. 왜 고객이 왕이어야 하는 이 시대착오적인 생각들이 낳은, 감정노동자들을 향한 학대는 아직도 이렇게 버젓이도 일어나고 있는걸까.




내 첫 직장은 공항이었다.

내 직업은 공항을 안내하는 서비스직이었고, 하루에 몇만명이 오가는 공항에서는 정말이지 다양한 인간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컴플레인이 많았던 건 온갖 항공사 승객들이었다. 비행기를 놓쳐도 우리탓, 비행기가 지연되도 우리탓, 댁네 비행기를 지연시킨건 내가 아닌데도 나는 그 수많은 컴플레인들에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를 100번은 외쳐가며 굽신굽신 사과를 해야했다. 욕을 안들으면 다행이었다. 내 자존감이 떨어지는건 말할 것도 없었다.      


 첫 직장을 가진다는 건 첫 단추를 꿰는 것과 같은 것, 나는 그 다음직장도 서비스직의 계보를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서비스직의 꽃(혹은 끝판왕) 승무원으로 일하게 되었고, 나는 여전히 감정노동자로서 컴플레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컴플레인 역시 비행기 지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그 당시 새벽비행을 마치고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인 후 다시 그날 저녁에 출근을 한 터라 이미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 얼른 비행이 끝나고 너무나 쉬고 싶었던 그날, 비행기가 난데없이 지연이 되었다. 기체결함이 그 이유였고, 안전과 관련된 문제다 보니 무리하게 출발할수 없다는게 기장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미 승객은 비행기에 모두 탑승한 상태였고 3시간 이상을 비행기 안에서 대기해야했다.

시계는 새벽 4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 거의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던 그때, 한 한국인 아주머니 승객이 나를 불렀다. 한국인 승무원을 찾고 있다고 영어로 말을 거는데 한국어로 무슨일이시냐고 묻자 그때부터 악몽같은 컴플레인이 시작되었다.     


‘비행기가 3시간동안 지연되서 기다려야 하면 승무원이 승객에게 물을 줘야겠어요~안줘야겠어요?’라고 나를 가르치듯이 묻는 아주머니의 말투는 겉으론 교양있는 척, 굉장히 공격적이었다.

우리 회사는 저가항공사라 티켓에 물이나 담요등 기타 서비스가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물은 구매해야 하는게 규정이었다. 간혹 승객이 급하게 약을 먹어야 하거나 응급상황을 제외하고는 물을 판매해야 하기에 죄송하지만 물은 구매하셔야 한다고 얘기하자 언성이 더욱 더 높아졌다. 내가 지금 비행기 지연된거도 화나 죽겠는데 물까지 사먹어야겠냐고 소리를 높이는 아주머니를 일단은 기다려달라고, 사무장에게 여쭤보겠다고 겨우겨우 진정시켰다.


사실, 비행기가 지연될 때 우리 입장에서도 물을 제공하면 컴플레인도 줄어들기 때문에 차라리 물을 제공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 역시 모두 돈과 관련된 문제다 보니 책임을 져야했고, 그렇기 때문에 섣불리 물을 제공할 수 없는 게 우리의 입장이었다. 회사에서도 제대로 이런 지연에 의한 보상 제도가 마련되어있지 않은것도 문제였다.


  결국 일단 물을 제공해서 일단 화를 가라앉히자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자 이제와서 이미 자기네들이 물을 샀고, 이거 산거 아까우니까 당장 환불해달라고. 이미 다 마신 물병을 건네며 얼른 환불하라고 억지를 부리는 손님을 보는 순간 힘이 탁 풀렸다. 이미 사용하고 소진된 제품에 대한 환불을 해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구매한 물에 하자가 있는것도 아니었다. 손님, 이미 다 드신 물은 환불을 해드릴 수가 없다고,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드실 수 있는 물을 한컵 제공해드리는거라고. 그러자 옆에 있는 아들로 보이는 승객의 한마디.

‘됐어요, 컴플레인 레터 쓰면 되니까. 근데 적어도 비행기 지연되는거 미안해하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누가들으면 내가 비행기 지연시킨줄 알겠네요 고객님. 저도 지연되서 너무너무 힘들거든요, 새벽에 비행에서 돌아와 잠도 제대로 자지못하고 출근해서 쓰러질거 같거든요, 억울한 마음을 꾹꾹 눌러담으며 안전과 관련된 문제라 조금만 더 양해 부탁드린다며 또다시 죄송하다고 말해야했다.


이미 제대로 쉬지 못한 몸은 거의 필사적인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현기증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미 지연사과방송을 10번도 더한 터라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입이 닳도록 했는데도 그렇게 죄송하다는 소리가 듣고 싶을까. 그 진상승객 때문에 늘 가는 루트였는데도 유독 길었고 너무나 지쳤던 비행이었다.     

  



이상하게도 한국사람들은 외국항공사 비행기를 타면 유독 한국인 승무원들에게 더 막대하는 느낌이 든다.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면서 말이 통하는 한국사람에게는 컴플레인도 더욱 강도가 세지는 느낌이다. 특히나 진상을 부리고 언성을 높이면 다 해결될거라 생각하는 그 마인드가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 타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는 것도 힘든데 같은 한국사람들에게서 컴플레인을 받게되면 더 힘이 빠진다.

감정노동자로 지난 9년 동안 일하며 특히 여성 감정노동자로서 억울했던 순간들은 남자직원이 오면 그들의 태도가 돌변한다는 사실이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랬다. 진상들이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스타일이 많기 때문에 약해 보이는 순간 더더욱 휘말리는건 어쩔 수 없는 공식과도 같았다. 특히나 조용하고 얌전해 보인다는 인상을 가진 나로서는 진상들에게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얼마 전 한국 저가항공사를 타자 승무원들에게 폭언을 삼가달라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콜센터에서도 안내원 연결 직전 가족같은 직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달라는 당부방송이 나오는걸 종종 듣게 되는데 그나마 한국에서는 감정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움직임들이 보이지만 여전히 진상들은 곳곳에 존재하는 것 같다.


컴플레인은 주로 안되는 것들을 되게 해달라는 막무가내식 요구인 경우가 많다. 직원의 입장에서는 회사의 규정 때문에 안된다고 말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그걸 유연성이 없네, 융통성이 없다는 말로 감정적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해서 그들이 원하는 걸 얻게 되는 것이 다반수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회사는 고객의 편이기 때문에. 실컷 직원인 내가 안된다고 했는데 상사가 결국 된다고 그 요구를 들어줄때의 허탈감이란...결국 그 컴플레인으로 인해 욕받이가 되는 것도 모자라 사과해야하는 쪽 모두 감정노동자가 되는 셈이다.

     

너무나 식상한 말이겠지만 서비스직, 감정노동자들 역시 감정이 존재하는 사람이다. 차라리 일할때는 로봇처럼 아무 감정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서비스직도 너무나 사람이기에, 폭언이나 막무가내의 요구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내가 서비스직에 종사하며 들었던 폭언이나, 억지요구들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와 상처는 시간이 지나서 무슨 말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더라도 그 때의 비참한 느낌은 생생하다.

특히나 고객 앞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없어서 무조건 사과하고 그 화를 속으로 삭혀야 하다보니 그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게다가 사람이 학대를 계속 받다보면은 자존감이 낮아지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어지고 그 상황에 순응하게 된다고 한다. 이 얼마나 슬픈일인가, 사회생활, 서비스직이라는 이름하에 이런 정신적 학대를 당하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될까.       


요즘은 대기업 같은 곳에선 감정노동자들을 위한 상담이나 심리치료도 진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정신과나 심리상담을 받으려고 해도 그 비용을 무시못하는 게 사실이다.

정서적인 상처는 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 티가 나지 않지만, 실은 가장 사람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무시무시한 상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더욱 적절한 케어가 필요하다고 본다.      


 가장 시급한 것은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야 하는 점이다. 법이나 신고제도를 더욱더 강화해서 그들을 보호해 줘야 하는 것, 회사에서도 컴플레인에 대처하는 방식들이 보다 직원들의 입장을 배려하도록, 그리고 케어받을 수 있는 복지제도를 만들 것 , 그리고 감정노동자들 또한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감정노동자들이 진상손님으로 인해 당한 학대를 피하지 못하고 참아내야 했을 , 적절히 위로받을  있는 케어가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자신들이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소연 할수 있는 사람들이 꼭 필요하다. 사회생활 다 그렇지뭐- 유난떨지 말고 조금만 더 참아. 라고 어줍잖은 훈계를 하는 사람말고, 진짜 힘들었겠다며 공감하며 얘기를 들어주기만이라도 하는 사람. 다행히도 나는 주변에 너무나 좋은 사람들로 인해 위로받으며 그동안의 힘든 시간을 버텨왔던 것 같다.


그리고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기회를 꼭 줘야 한다는 것. 타인이 깎아내린 자존감의 데미지는 생각보다 크다. 그래서 취미든 운동이든 여행이든 뭐든 나를 아껴주는 시간은 정말이지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엔 감정노동자로서 지친 날이면 가장 좋아하는 빠른 피아노곡을 손가락이 부서지도록 치거나, 맛있는걸 먹으러 가서 실컷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바보의 날’을 정해 생각을 비우고 푹 쉰 적도 많았다.  



얼마 전 스타벅스에서도 만났던, 컴플레인에 지쳐서 축 처진 어깨를 한 직원의 뒷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정말 할수만 있다면 토닥여 주고 싶었다. 나도 저런 감정노동자였음을, 그래서 너무나 그 마음을 이해함을.     



그리고 그 진상손님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여주고 싶다.

고객님, 여기서 진상부리지 말고 나가세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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