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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Oct 19. 2021

안전교육 시작,지금까지는 서막에 불과했다

-외항사 승무원 트레이닝 safety 트레이닝

    1주간의 first aid 트레이닝이 끝나고, 본격적인 안전교육 SEP과정이 시작되었다. 커리큘럼에서도 총 2주간이 예정되어 있는 이 트레이닝은 승무원 트레이닝의 메인이자 핵심적인 훈련이었다.

비행을 하며 생길 수 있는 비상상황에 대비해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매뉴얼, 승무원의 역할들에 대해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배우는 과정이었다.

 

안전교육을 맡은 인스트럭터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굉장히 가차없는 군인같은 스타일이었고, 굉장히 스파르타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일단 그 두꺼운 매뉴얼 북에 익숙해지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전부 영어로 된 책의 내용을 모조리 외워야 했고, 비행에서만 쓰이는 약어들 역시 모조리 외워야 하다니... 어릴 때 암기력이 나름 좋은편 이라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이건 정말이지 도무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몇 번을 노트에 쓰고 머리에 집어넣으려 안간힘을 썼다.

특히나 언어의 장벽이 컸던 탓인지,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아무리 집중해서 열심히 들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결국 우리 한국인 동기들은 범위를 나눠 번역해서 공유하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말이 번역이지 그 방대한 매뉴얼 북의 항공용어를 번역하는건 굉장히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이럴때 모국어가 영어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숙소에는 공부할 곳이 마땅치 않아 침대에 앉아 공부 하다가 불을 켜고 그대로 잠들어버리기 일쑤였고, 아예 일치감치 저녁을 먹고 조금 자다가 다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공부를 하는등 패턴을 바꿔보며 열정적으로 공부했던 거 같다. 아마 고3수험생 이후로 이렇게 열정적으로 공부한적은 없었는데, 그 후로 10년이 더 흐른 서른의 내가 다시 수험생이 된 기분이었다. 더구나 수능보다도 더 간절했던 건, 이 시험에 떨어지면 내가 지금까지 준비한 3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루하루 수업이 진행될수록 내용 점점 더 어려워지는것만 같았고, 밤샘공부를 계속했던 탓에 체력 역시 떨어져가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건 한식을 먹을 수 없었던 거였다. 우리가 머물던 호텔의 식당은 늘 같은 말레이시아식 메뉴밖에 없었고, 한국에서 들고 온 라면이나 햇반은 이미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언제든 먹을수 있던 따뜻한 국밥과 삼겹살이 너무 그리웠다. 더군다나 말레이시아는 무슬림국가라 맛있는 돼지고기를 먹을수 있는곳이 거의 없다. 더군다나 우리의 숙소가 공항주변 외딴곳에 있는터라 시내까지 나가기에는 시간적으로도 무리였다. 도저히 참다참다 못한 동기 몇 명과 함께 주말에 공항에 가서 푸드코트에 있는 한식당을 발견하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비록 한국에서의 맛은 아니지만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지.           


시간이 흘러 최종 필기시험 전 실기시험이 진행되었고, 첫 실기 시험은 수영테스트였다. 초등학교때 수영을 배워서 물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는 편인데도, 트레이닝 센터의 풀은 수심만 2미터가넘었다..아무리 구명조끼를 입고 진행되기는 하지만 내 키보다 높은 수심의 물은 어쩐지 겁이 났다. 그리고 혼자서 하는 수영뿐만 아니라, 비행기가 바다에 비상추락한 응급 상황시 승객을 바다에서 구해야 하는 시뮬레이션에서는 승객역할을 하는 동기를 데리고 50미터를 수영해서 가야했다. 그래봤자 나와 같은 여자동기들이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겠냐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물에서 사람을 데리고 수영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목적지에 도달한 후 물에서 나오자 이미 기진맥진 상태였다. 그나마 나는 수영을 배웠던 덕분에 일찍 끝날 수 있었지만 수영을 잘 못하는 동기들은 꽤나 장시간 물에서 고군분투를 했어야 했다.


그리고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시험으로 진행되었는데 함께 단합하지 않으면 절대 통과할수 없는 시험이었다. 모두 물에 뛰어들어 원을 그리고 함께 구호를 외치며 리더의 지시에 따르는 시험이었는데, 정말 악소리가 날정도로 구호를 외쳤던 거 같다. 역할을 담당하는 한명이라도 실수하면 다시 재시험을 봐야 하는 시험이라 모두들 서로를 격려하며 무사히 시험을 마쳤다. 승무원은 안전보안요원이라는 사실을 또다시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특히나 기억에 남던 실기 시험중 파이어 어세스는 실제로 불을 끄는 테스트인데, 기내에서 발생할수 있는 화재에 대비해 우리가 소방관의 역할을 해야하기에 이 역시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테스트였다.

매뉴얼에서 배운대로 실기에 임하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불길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소화기를 분사하는 각도와 시간 역시 정확해야 했고 실제로 불이라고 생각하니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동기들 모두 무사히 통과했고, 그렇게 여러 실기 시험들을 마치 게임의 스테이지를 하나씩 클리어하고나자, 드디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마지막 파이널 시험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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