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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Oct 05. 2021

비행기 안에선 우리가 의사고 간호사가 되야하니까

-외항사 승무원 트레이닝 first aid 수업

그루밍 수업에 이어 스피치, 서비스 응대 교육을 받은 후 본격적인 first aid 과정이 시작되었다. 늘 정장을 입고 수업을 들으러 갔던 이전까지와의 수업과 달리 카라티와 청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드레스 코드 공지가 내려오자 드디어 진짜 트레이닝이 시작된 것인가, 실감이 났다.  

    

일단 매뉴얼 책의 두께만 해도 엄청났다. 트레이닝 첫날 이 매뉴얼을 받고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인스트럭터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이 책을 달달 외워야만 너네가 무사히 이 트레이닝을 통과할수 있을거라고 했다.

first aid, 말그대로 응급조치에 대한 수업으로, 기내에서 발생 할수 있는 모든 의료적인 응급상황들을 숙지하고 가장 신속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응급처치를 시행하고 승객을 안전하게 의료진에게 인계하는게 우리 승무원의 가장 중요한 Duty중 하나라고 했다.


일단 너무나 많은 응급상황 케이스에 죄다 영어로 된 병명과 치료법은 매뉴얼 북을 보는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건 마치 무슨 의대나 간호대를 온 느낌이었다. 메디컬 드라마만 봐도 전부다 영어로 얘기하는걸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정말 기초적인 first aid에서도 영어를 모르면 이 과정을 수료할수 없겠구나 싶으니 더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내에서 가장 많이 발생할 수 있는 화상, 질식, 그리고 지병인 당뇨나 심장마비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케이스를 다루면서 증상과 응급처치법을 숙지하고  매수업 챕터가 끝날때마다 테스트를 거쳐야했다.  이제부터는 정말이지 밤을 새면서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모두들 수업이 끝나고 저녁식사후 방에서든 스터디라운지에서든 이 두꺼운 매뉴얼과 씨름하며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정말이지 진짜, 트레이닝이 시작된 거였다.      


그중 실기 평가인 CPR. 이 과정은 분명 한국에서 적십자사에서 주최한 심폐소생술 자격증을 따면서 수료한 과정인데도 영어로 들으니 새로 듣는 것 같았다. 특히나 유아, 어린이, 성인에 따라 방법이 달랐고, 정해진 사이클과 순서대로 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탈락이라고 했다. 이 실기 시험을 위해 우리 동기들 모두는 숙소에서 저마다 베게와 인형을 실험삼아 연습을 하기도 했다. 동기들 모두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수가 생기고 버벅거리자 이게 익숙해져야 갑자기 응급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할수 있다며, 우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얘기하는 인스트럭터의 말에 뭔가 모를 책임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내겐 승무원이란 예쁜 유니폼을 입고 고상하게 서비스를 한다는 이미지가 컸던거 같았다. 하지만 first aid 수업을 통해 승무원이란 승객의 안전을 담당하는 보안요원이며 간호사도, 의사도 되야하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야 한다는 걸 느꼈다. 역시나 아직까지 갈길이 먼 꼬꼬마 예비 승무원은 오늘도 이렇게 한뼘 성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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