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이스 캐년 Bryce Canyon 트레킹
미 서부 3대 캐년(그랜드, 자이온, 브라이스)은 모두 수억 년 전 해저 퇴적층이 융기 운동으로 솟은 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의한 침식으로 만들어졌으나 그 지형이 아주 다른 형태의 국립공원이다.
그랜드 캐년은 수평 지층을 콜로라도 강이 아래로 깊이 깎은 협곡이고 자이언 캐년은 단단한 지층이 남아서 형성된 색깔 다양한 바위산과 험준한 골짜기. 그러나 브라이스 캐년은 협곡이 아닌 넓은 분지 형태이다.
원래 캐년은 협곡을 뜻하는데 브라이스 캐년은 매우 푹 파인 넓은 분지 형태를 띠고 있다. 하나의 대륙에 이처럼 다양한 지형이 발달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그랜드 캐년 & 자이언 캐년 & 브라이스 캐년
□ 브라이스 캐년 일출
새벽 5시에 일어나 브라이스 포인트 Bryce Point를 향해 출발했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이다. 우리 팀은 캡틴의 권유로 Sun Rise Point로 가지 않고 브라이스 포인트에서 일출을 보기로 했다. 이른 시간이라 관리인이 없는 입구를 지나 달리는데 자동차가 슬쩍 미끄러져서 순간 속으로 잠시 놀랐다. 새벽이라 바닥이 살짝 얼어 빙판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5월보다 훨씬 춥다. 눈과 얼음이 아직 곳곳에 남아 있고 저녁에는 기온이 차갑게 내려간다. 혹 미서부 여행 중 일출을 보려면 계절에 관계없이 따뜻한 긴팔 겉옷은 필수이다.
주차하고 잠시 걸으니 컴컴하나 나무와 산이 어스름 속에 보인다.
아무도 없는 포인트를 향해 우리 일행은 묵묵히 길을 걸었다.
어쩌면 잠이 덜 깨 서일수도.
어제 새벽에 두통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하니
캡틴이 해발 고도가 높아서 나타나는 고산증이라고.
아, 그랬었구나. 여기는 해발 2700m.
해뜨기 직전의 여명이다.
그때의 쌀쌀함과 무게감 있는 분위기가 다시 살아난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새벽 분위기이다.
브라이스 포인트 여명
6시 30분. 드디어 아침 해가 떠오른다.
컴컴한 분지가 서서히 모습을 보인다.
반사되는 빛이 눈부시다.
매일 같은 방향에서 떠오르는 해가 모두 같지 않음을 여기서 경험한다.
브라이스 캐년의 아침이 시작된다.
공원 속 붉은 첨탑(후드 Hoodoo) 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5월에도 눈 모자를 쓰고 있다.
긴 겨울, 낮과 밤의 온도차 때문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서 그럴까.
형형 색색 오밀조밀한 첨탑들.
이런 장관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쌀쌀한 추위에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첨탑에 빠진다.
처음 보는 순간 탄성이 나왔다.
아, 이런 골짜기였구나.
둘레 약 2.5km의 반원 형태 분지 안에 수만 개 바위 첨탑이 빼곡하다.
수만 개의 붉은 바위탑(후두 Hoodoos)은 핑크-붉은색-갈색-보라색으로 보인다.
암석에 포함된 철 성분이 더욱 황홀한 붉은색을 만들었을까.
이렇듯 미묘한 색의 수많은 돌기둥들.
12달 비바람이 만들어낸 풍화를 이런 지형을... 상상도 못 한 모습이다.
사진을 본 기억도 별로 없다.
나는 왜 브라이스 캐년을 몰랐을까. 여태까지.
브라이스 캐년
□ 브라이스 캐년 나바호 루프 트레일 Navajo loop Trail 트레킹
캠핑장으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선셋 포인트 Sunset Point에서 시작하는 나바호 트레일 Navajo Loop Trail에 나섰다.
오늘 중요한 일정은 비교적 짧은 나바호 트레킹이다. 브라이스 캐년은 멋진 포인트(전망대 13개)가 많다. 그리고 초급부터 상급자 코스까지 남녀노소 코스를 골라 즐길 수 있다. 트레일 Trail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면 사슴, 양 등 다양한 동물(160여 종)과 식물(400여 종)도 서식하고 오래전 화석도 있다고 한다. 자이온 캐년처럼 공원 입구부터 길게 도로를 따라 공원 내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브라이스 캐년은 정착한 초기 정착민 브라이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단다. 그의 이름을 땄으나, 그가 이 아름다운 공원을 만든 것은 아니고, 자연이 만들어 준 선물이다. 캐년 중 가장 침식이 활발하여 현재도 고운 흙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다. 그래서 움푹 파인 커다란 분지는 세월과 함께 더욱 커지고 있다고. 처음 시작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트레일이 지그재그로 급경사이다. 겹겹이 붉은 돌기둥 사이로 트레일이 내려다 보인다. 모두 각자 나름대로 일정을 즐기는 스타일이라 처음에는 함께 출발하고 어느새 뿔뿔이 흩어졌다. 먼저 아래로 내려간 팀이 뒤를 올려다보며 인증 사진도 찍으며 쉬엄쉬엄 전진이다.
빼곡히 늘어선 바위탑이 참 신기하다.
아래로 내려 갈수록 조용해지며 뿔뿔이 흩어지고 각자 생각에 잠긴 듯 주변이 조용하다.
말하지 않아도 훌륭한 트레일을 지나고 있음을 모두가 안다.
침식이 활발한 브라이스 캐년
햇살이 비치면 색상이 달라지고 언뜻 보이는 높은 바위(수백 m) 사이에 무너질 듯 위태로운 다리. 그것을 촬영하는지 삼각대에 매달린 진사들이 보인다. 양쪽 절벽을 이어 주는 다리를 매년 찍으면 캐년의 역사적 한 페이지를 완성하는 일이 되리라. 저 다리가 무너지지 않고 얼마나 버틸지. 한참을 구경하다가 나도 멀리서 한컷 눌렀다.
바위 사이 다리 브라이스 캐년 멋진 조각품
햇살이 환하다가 이내 어두워지고 그러다가 갑자기 하늘이 빼꼼하게 열려 눈이 부시다.
그 빼꼼한 햇살에 기대어 자라는 큰 나무들이 참으로 신통하다. 물도 없는 사막인데.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지역이고 부드러운 사암의 침식이 아주 빠르다. 모습을 밖으로 다 드러낸 뿌리, 그래도 살아남아 정해진 수명을 다하리라. 따스한 햇살을 찾아 하늘만 보고 살았나 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지만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서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복잡하게 얽혀 이어지거늘. 이곳 바위는 주어진 자연에 순응하며 평화롭게 삶과 죽음을 이어가는 듯하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아쉬움 없이 갈라지고, 깎이고, 이동하며 미련 없이 순리를 따라 사라져 간다. 언제부턴가 나는 지구상의 현재를 보며 동시에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점차 생로병사를 아니 죽음 자체를 생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막다른 좁은 골목에서 트레일을 계속하지 않고 시간이 넉넉지 않아 다시 뒤돌아 선다.
다시 올라갈 길을 쳐다보니 아이고~ 높다.
점점 무거워지는 다리를 끌고 땀 흘리며 낑낑 올라왔다.
트레킹 기념으로 사진 한 장 남기고 브라이스 캐년과 안녕을 고한다.
햇살에 빛나는 붉은 그들과 이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