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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처럼 Jun 29. 2023

재미만을 위해 사는 세상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세상의 변화는 사람들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일 중독자들이 많아서 일만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득이 늘어나고 근로 시간이 줄어듦으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은 여가를 활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한때 유행하던 유행가 가사 중에 "자 떠나자 동해로"라는 노랫말이 기억난다. 그래서 주말이면 강원도로 가는 길은 항상 승용차들로 북적이고 교통체증을 경험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생활이 좀 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소문난 외국 관광 명소를 찾아 나섬으로 여가를 즐기곤 했다.


이처럼 우리 사람들에겐 생활의 활력소를 찾기 위해 여가를 즐기는 일이 필요하다. 한국관광공사의 발표에 의하면 2022년에 해외에 나간 여행객이 6,554,031명이라고 한다. 이들이 나가서 소비한 돈이 무려 약 170억 달러이고 1인당 2,606달러를 소비했다고 알려준다. 이렇듯 통계가 알려주는 바는 꽤 많은 사람이 여유를 즐기기 위해 외국에 나가는 걸 알 수가 있다. 한 때 동남아의 일부 나라는 한국인들의 씀씀이가 워낙 커서 그 동네를 먹여 살릴 정도가 되기도 했다.


재미를 위해서 라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스포츠인데 2021년 스포츠 산업의 매출이 약 10조 5천억 원이라고 한다. 코로나 기간을 고려하면 이 분야에 소비하는 돈이 실로 엄청난 규모임을 알 수가 있다. 점점 사람들은 평범한 스포츠보다는. 격투기와 번지점프와 카누와 같은 위험하기는 하지만 재미를 위해서 좀 더 자극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스포츠를 선호하는 경향이 늘어만 간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새로 등장하게 되었다. 유튜브 동영상을 자유롭게 즐기게 된 것인데 이 때문에 공중파 방송에서는 좀 보기 힘든 선정적인 내용도 별 제약 없이 무분별하게 시청이 가능하게 되었다. 퇴폐적인 영상들이 사교댄스란 명목으로 대중을 향해 뿌려지고 허용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예전보다 음란물을 보기도 쉬워졌고 본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도 쉬워진 세상이다. 이제 대중들은 타락의 늪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음을 인식하기조차 힘들어진다.


우린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역사가인 동해로 듀랜트의 [문명의 이야기]란 책에 의하면 "그리스가 로마에 의해 정복된 중요한 원인은 그리스 문명의 내부적인 붕괴다"라고 지적한다. 로마의 힘은 가정이었지만 로마의 가정 역시 성적 부도덕으로 문란해졌을 때  그 제국 역시도 쇠퇴하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시대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성서에서 알려주는 노아의 때 대홍수가 있었다고 알려준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흥미를 끌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세상 역시 지금과 같이 너무 타락해서 폭력과 부도덕이 만연한 세상이 된 것을 보시고 한탄하신 하느님께서 물로써 당시 세상을 심판한 역사적 사실이다. (창세기 6:11,12 "그런데 땅은 참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타락해 있었으며 폭력으로 가득 찼다. 하느님께서 땅을 보시니 땅이 타락해 있었다. 모든 육체가 땅에서 타락한 길을 걷고 있었다.")


이렇듯 지난 역사는 우리가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서 살아가며 도덕이 붕괴할 때 당시 사회와 국가까지 멸망할 수 있음을 교훈하고 있다. 오래전에 성서는 인류 사회에 대한 다가올 최종 심판의 때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때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렸던 솔로몬은 자기 경험에 비추어서 이렇게 교훈했다.

(전도서 2:11 "그러나 낸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이루려고 애쓴 모든 수고를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쫓아다니는 것이었고 해 아래는 실제로 가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너무 무미건조한 삶을 살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성서는 창조주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을 틀 잡아 나간다면 이 땅에서 더없는 행복을 누릴 아름다운 미래를 약속하고 있다. 이 약속은 불변의 진리인 성서와 변치 않으시는 창조주의 약속이므로 우리는 신뢰할 수 있다.

시편 37: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풍부한 평화 가운데 더없는 기쁨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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