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한낱 입김에 불과 합니다."
가수 현철씨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평소 동료 연예인들과 후배들에게 신망이 두터운 터라 모두 안타까워한다.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오랜 무명 생활을 했고 60이 넘어서야 비로소 그 이름이 알려진 터라 더 그러한 것 같다.
이렇듯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게 있다. 많이 배우고 다 쓰지 못할 만큼의 많은 돈을 가져도 세월의 흐름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불로초를 찾아 나섰던 진시황제나 천하를 호령했던 나폴레옹도 최고의 지혜와 부를 가졌던 솔로몬도 피해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음악가였던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물론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인 피카소와 다빈치 역시 희미한 발자국만 남길 뿐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잠시 살았다가 사라지는 풀잎 같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잠시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을 돌이켜 본다. 이 시간 속에는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들과 얻은 것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잃어가고 있는 것들 가운데 한가지는 젊음이다.
젊음은 항상 내 곁에서 떠나지 않을 연인처럼 생각됐다. 지나간 시절은 찬란한 태양처럼 언제나 활력이 넘쳤다. 이 시간 동안은 내가 꿈꾸는 모든 것을 하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월은 시위를 당긴 화살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신체적인 노화가 급속도로 진행됨을 느끼게 된다. 활기찬 발걸음은 황소걸음처럼 느려졌고 계단 오르기도 숨이 차서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만 찾는다.
더구나 약간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나 새벽녘의 재잘거리는 새소리에도 쉽게 단잠이 깬다. 달리기 모든 일이 버겁기만 하다. 언제부턴가 몸을 써서 하는 일들을 마주하게 되면 슬슬 꽁무니 빼기가 바쁘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호랑이를 마주한 것처럼 무섭기만 하다. 시간이 갈수록 눈은 침침해지고 듣고 말하는 것 역시 어눌해지면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난날 모든 걸 가진 것 같았으나 하나둘 내 곁을 떠나간다.
또 하나 잃게 되는 것은 희망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젊음의 한창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이 내가 마음을 먹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일 뿐 모든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사업이며 돈이며 직장이며 이 모든 것들이 손에 잡혀 있는 것처럼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어느새 무지갯빛 찬란했던 희망은 음산한 잿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잃어가는 것 중 하나는 의욕이다. 무엇을 하던 활력이 넘쳐서 불가능은 없어 보였다. 설사 그것이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하는 필리핀의 마리 애나 해구를 탐험하는 것이든 상관없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어떤 목표든 세우기만 하면 모든 것은 이미 되어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처럼 쉬워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을 시작도 하기 전에 겁부터 난다. 과연 할 수가 있을까? "이것 때문에 힘들 텐데"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 나간다. 되는 한가지 이유보다 안되는 아홉 가지 이유를 찾는 것이 빠르다.
그런데도 세월이 가면서 얻어지는 게 있기에 다행스럽다. 이제야 비로소 사람의 모습을 어렴풋이 갖추어 나간다고나 할까? 사물을 바라봄에서 좀 더 신중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점이 달라진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중 얻어지는 것중 몇 가지는 이러하다.
그중 한 가지는 지난날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보이는 것만 볼 줄 알았다.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양 단편적인 시야를 가졌었다. 그러나 이제 보이는 것은 잠깐이며 그것들은 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설사 그러한 것들이 잡혔다 한들 다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보이는 것의 가치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 이를테면 행복과 사랑과 가족과 시간과 같은 무형한 것들의 더 소중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 한 가지는 죽음 이후에 대한 생각이다. 우리 인간이 불안해하는 것 중 하나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이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무게이며 피해 갈 수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죽은 자를 위해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살아생전에 교회나 성당과 사찰을 찾아서 많은 공을 들이기도 한다.
일평생 자신이 목숨처럼 소중히 모으고 지켰던 재물을 종교 단체에 기부하기도 한다. 그 정도로 죽음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짓누르는 커다란 바위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성서를 통해 죽음의 이유와 죽음 이후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명확히 이해함으로 죽음 자체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로 다가오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얻게 된 점은 지난날의 난 또 다른 나 다시 말하면 가면을 쓴 나를 위해 매우 분주했다. 그러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한 지금은 내면의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한다. 조용한 숲속에서 상큼한 향기가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하듯 내면의 작은 속삭임은 새로운 나로 일깨운다는 것이다.
누구나 죽음은 피해 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이제껏 깨닫지 못했던 얻어지는 것들을 찾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혼자만의 여정을 떠나보려 한다.
전도서5:20 "그가 인생의 날들이 지나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리니 참하느님께서 그를 마음의 기쁨에 열중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시편39:5 "당신이 나의 날을 몇 날 안 되게 하셨으니 나의 수명은 당신 앞에서 없으나 마찬가지입니다.진실로 사람은 안정되어 보여도 모두 한낱 입김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