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창영 Sep 11. 2018

전정기관염

전정기관염    

1.    

그날도 어머니의 콩나물시루를 시장까지 날라다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극성이던 더위가 한풀 꺾인 새벽은 코끝으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갔고, 하늘도 모처럼 푸르렀다. 

“아! 이제 가을이구나.”

혼자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어머니를 차에 모시고 콩나물을 싣고 시장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자리까지 콩나물을 날라다 주고는 매일 그러하듯 근처 시장 길거리 카페에 앉았다. 매일 그러하듯 주인 마담은 냉 율무 한잔을 타주었다. 담배를 한 개비 물며 늘 그러하듯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런데 늘 그러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갑자기 텔레비전의 글자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다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며 율무를 한 모금 마시는데 흔들리던 글자는 아예 보이지 않았고, 화면 속의 사람도 흔들거렸다. 급기야는 모든 게 빙빙 돌기 시작했다. 순간 무언가 내 몸에 심상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시장 길 카페에 있는데 아무래도 내 몸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요. 좀 와주어야겠어요.”

그렇게 전화를 하고는 바로 옆으로 쓰러졌다. 그리고는 구토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고 ‘지구가 정말 돌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반쯤은 정신이 나간 상태가 되었다. 누군가가 119에 전화를 했다. 처음 증세가 시작된 지 30여분이 흘러 119 구급대가 도착했다. 그 30여분의 시간은 무척 길게 느껴졌고,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119구급차를 타고 근처에 있는 세민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세민병원 응급실에서는 큰 병원으로 가기를 권했다. ‘말로만 듣던 작은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옮길 정도로 심각한 병이구나.’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향한 곳이 울산대학교 병원 응급실이었다. 가는 도중에도 머리는 빙빙 돌고 구토도 계속 되어 괴로웠다. 평소 15분이면 가는 거리가 오늘따라 1시간은 더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2.

울산대학교 병원에 도착하니 역시 큰 병원은 달랐다. 먼저 증세를 보고 전정기관의 감염을 의심하였다. 그래도 모르니 MRI를 찍자고 했다. 응급실에서 계속 구토를 하면서 기다리니 간호사가 링겔을 팔에다 꽂아주었다. 그 링겔을 맞으니 올리는 것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어지러워 무척 고통스러웠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아직 죽을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죽으면 어쩌지’하는 생각과 ‘이 고통이 멈추지 않으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응급실에서 계속 누어있는데, 암 환자의 고통이 생각났다. 며칠 전 남편이 아내를 죽인 사건을 인터넷을 통해 본 것이 떠올랐다. 아내는 너무 고통스럽고 나을 가망이 없어 남편에게 차라리 죽여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계속적인 고통 속에 있는 아내가 불쌍해 남편은 차에다 연탄을 피워 아내를 죽게 했다고 한다. 그 기사를 읽고 아내와 남편을 욕했었다. 정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를 생각하며, 하지만 내가 극심한 고통 속에 있다 보니 아내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참을 수 없는 끔찍한 고통, 나을 가망성도 없는 고통이 지속된다는 것은 정말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참혹한 형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3.

응급실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의사가 와서 MRI는 문제가 없고 전정기관염이라는 말을 하였다. MRI상에 약간 의심나는 부분이 있지만, 이것은 아마도 촬영 시 흔들려서 그런 것 같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확한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처방을 받고 응급병동에 입원을 하였다. 그 와중에 아내는 일을 하러 갔어야 했기 때문에 후배 명근이가 와서 내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다. 너무도 고마운 일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려울 때 모른 척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려울 때 진정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나에게는 진정한 친구라는 생각을 했다. 5층 병실에 들어가니 나 외에도 4명의 환자가 더 있었다. 그들 모두는 나처럼 응급실을 거쳐 입원한 사람이었다. 첫날은 너무 힘들었고, 잠 잘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하지만 새벽에 환자 한 명이 숨을 극심하게 몰아쉬는 것이 들렸다. 산소통을 의지해 숨을 쉬는 81세 된 노인이었는데, 식도가 망가졌다고 했다. 그 분은 내가 입원한 5일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고, 잠도 누워서 자지 못했다. 그리고 항상 숨을 격하게 몰아쉬었는데, 숨만 제대로 쉬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느끼게 되었다.    

4.

둘째 날이 되자 속은 많이 안정이 되어 식사를 죽에서 밥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어지름증은 여전히 지속되어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평생 처음으로 휠체어라는 것을 타보기도 했다. 그리고 제대로 걸을 수만 있어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응급동에서 이비인후과까지는 꽤 먼 거리였기에 아내가 꼼짝 못 하고 나에게 붙어 있었다. 아프기 전까지는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이번 일로 하여 병은 불시에 찾아오는 것이며, 항상 대비를 해야 함을 느꼈다.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 한 명이 수술을 받고 병실을 옮겼다. 여전히 할아버지는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었다. 내 옆 치대에 누워있는 환자는 나와 나이가 같았는데 그도 나처러 실려 왔다고 한다. 그런데 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또 다른 환자 한 명은 술을 먹고 넘어져 다쳤다는데 얼굴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내 고통이 세상에서 제일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병실에 오니 내 고통은 고통도 아닌 것 같았다. 셋째 날이 되자 좀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속도 완전히 안정이 된 것 같았다. 의사는 이 병은 시간이 지나야 낫는 병이라고 하며 꾸준히 몸 관리를 하라고 했다.     

5.

넷째 날, 며칠 사이 많은 분들이 면회를 왔다갔다. 명근이는 물론이고 울산대학병원에서 수간호사로 일하는 명근이 처는 여러 모로 신경을 써주었다.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둘째 형수가 왔다. 어머니는 많이 놀라셨다. 그래도 멀쩡해 보이는 아들을 보고 안도를 하는 것 같았다. 둘째 아들이 다니는 교회에 청년회에서도 면회를 오고, 우리 부부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면회를 왔다. 다들 감사하다.

그리고 5일째가 되는 날 퇴원을 했다. 아직까지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야 낫는 병이기에 집에서 안정을 취하기로 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내가 있었던 병실에는 나를 포함해 총 5명이 입원을 했었는데, 나를 제외한 4명은 모두 수술을 받으러 갔고 나만 멀쩡하게 걸어 나왔다. 그들이 쓰러질 때는 큰병이 아니길 바랐던 나의 심정과 꼭 같았으리라. 그런데 나는 운이 좋게도 병이 호전되어 퇴원을 했고 그들은 아직 병원에 있다. 나의 일이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명에 관련된 일은 사람의 소관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예전에 쓴 시다.    

병원    

그 병원 9층에는 

분만실이 있고    

그 병원 지하에는 

영안실이 있다.    

어떤 이는 실려 와서 

걸어 나가고    

어떤 이는 걸어와서 

실려 나간다.    

분만실을 걸어 나오는 

어떤 아기도 없고    

영안실로 걸어 들어가는 

어떤 시체도 없다.

작가의 이전글 하루 3KG 살빼기 도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