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이야기
프라하로 온 첫 번째 날을 기억한다. 정확히는 그때의 냄새를 기억한다. 한국과 다른 흙냄새와 공기 냄새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밤공기였고 새벽이었다. 그때 나의 통장에는 백만원 남짓한 돈이 있었다. 그리고 학자금 빚과 생활비 대출 빚 정도가 나의 자신이었다. 지금이야 빚은 사라졌고 과거와 비교하면 그 어느 때보다도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유럽에서 프라하에서 십 년 가까이 살면서 놀란 건 '일'을 하지 않아도,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않아도 부모의 용돈과 부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는 점이었다.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한달에 수백의 월세부터 용돈까지 줄 수 있는 누군가의 아들 딸들이 이렇게 많다는 점에 놀랐다.
십대 때부터 용돈의 개념이 아니라 생존의 개념으로 돈을 벌어야 했던 나와 주변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산 그런 사람들을 보며 느낀 점은 질투 같은 것이 아니었다. 계층이었다. 말로만 듣던 '계층'이란 개념을 느꼈다. 아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
그런,
체념 같은 질감의 무언가였다.
첫날이 지나고 며칠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체념은 어떻게 되었을까
잠시 꺼내어 그것을 바라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질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기화된 감정처럼
어느 순간 모조리 흩어져버린 듯하다
돌이켜보면 극복한 건 아닌 거 같다. 아니 처음부터 극복할 것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고 있고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었을 뿐이다. 트램을 오를 때마다, 버스를 오를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한다. 그들 모두 그들만의 세상과 세계를 가지고 있다. 나 역시 그들 중 한 명이며 그들처럼 나의 세계와 나의 세상을 가지고 있다. 모두 자기만의 세상을 몸과 마음으로 지고서 살아간다. 누군가의 것이 무겁고 누군가의 것이 가벼울 리 없다.
그 어린 시절, 중학생 때부터 전단지 알바를 하며 생존을 위해 살아갔던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생존을 위해서 살고 있다. 다만 조금은 느슨해졌을 뿐. 이점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때때로 생각한다, 나도 가난으로 물든 환경이 아닌 적어도 경제적으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친다
나는 거기에 살고 있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