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나무 이야기 ⑩] - 찔레꽃 이야기

by 데일리아트

김홍도의 선면협접도(扇面頰蝶圖)


5월은 장미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현대 장미는 보면 볼수록 그 화려함에 푹 빠지게 되는 매력이 있지만, 햇살 가득 머금은 자연의 한 귀퉁이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의 토종 들장미인 찔레나무는 은은한 향기와 더불어 흰색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어울리는 꽃입니다.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절기인 입하(立夏) 무렵에 찔레꽃이 피기 시작하는데요. 이 은은한 향기를 가만히 두기엔 아쉬워 우리 선조들은 그림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오늘은 찔레꽃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조선시대 화원화가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가 1782년 38세 되었을 때 부채 겉면에 나비를 그려 넣은 초충도(草蟲圖)입니다. 폭이 자그마치 74cm나 됩니다. 여기에 부챗살을 붙이면 무게가 만만치 않을 것이기에 부채질하다 오히려 더 더워질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꽃으로 날아드는 나비를 소재로 제작된 선면화(扇面畵·부채 위에 그린 그림)로, 경물(景物)이 대단히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세 마리의 나비가 오른쪽 아래의 하얀 꽃을 향하여 날아가고 있습니다. 녹색 잎 사이사이에 핀 꽃은 우리와 친숙한 찔레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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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협접도(蛺蝶圖), 1782, 종이에 담채, 29.0x74.0cm, 국립중앙박물관


조경 분야에서 식물의 생태적 특성과 자생지를 이해하는 일은 공간을 설득력 있게 구성하는 핵심인데요. 특히 찔레꽃은 야외 공간의 자연스러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자생화로, 그 미학적 가치 또한 적지 않습니다. 김홍도의 부채 그림 속 찔레꽃은, 식물 묘사와 생육 환경까지 세심히 관찰된 드문 예입니다. 한 폭의 부채에 담긴 식물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홍도는 이 그림에서 찔레꽃의 식물학적 특징을 매우 정확하게 포착했습니다. 다섯 장의 새하얀 꽃잎은 중앙의 암술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수술이 방사형으로 둘러싸며 바람막이처럼 펼쳐집니다. 잎은 타원형으로 가장자리에 뚜렷한 톱니가 있으며, 잎자루 하나에 보통 다섯 장씩 배열됩니다. 또렷한 잎맥과 더불어 어린줄기에 난 짧은 가시는 찔레꽃이라는 종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이는 오늘날 식물도감에 실려 있어도 손색없는 수준입니다.


식재의 관점에서 찔레꽃은 강한 햇빛과 배수가 좋은 양지바른 장소를 선호합니다. 따라서 조경에서 활용할 경우, 숲의 가장자리나 돌무더기, 배면 경계 공간 등 자연스러운 야생미를 살릴 수 있는 위치에 식재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림 속 찔레꽃 무리는 이미 오래된 군락으로 보이며, 고사한 가지와 함께 돌무더기 사이에 뿌리내린 모습이 실제 자생지와 흡사합니다. 이는 단순한 꽃 그림이 아니라, 서식지 생태까지 반영된 사실적 묘사인 것입니다.


이 찔레꽃은 조선시대에는 ‘질리(蒺梨)’, ‘질려(蒺藜)’라 이두로 표기되었으며, 한자로는 야장미(野薔薇), 야당(野棠), 매괴(玫瑰) 등으로도 불렸습니다. 가을에 붉게 익는 열매는 ‘영실(營實)’이라 하여 약재로 사용되었으며, 전통 정원 식물보다는 야외 식생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는 ‘임인추사능사(壬寅秋士能寫)’라는 글귀가 있어, 김홍도가 38세이던 1782년 가을에 이 그림을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꽃의 개화 시기가 5~6월인데도 불구하고, 그림은 가을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인데요. 이는 현장 스케치라기보다는 기억을 더듬어 그렸거나, 혹은 따로 두었던 습작을 바탕으로 완성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부채 그림의 여백에 김홍도의 스승 강세황을 비롯해 석초(石蕉) 정안복(鄭顔復) 등이 적은 감탄하는 내용의 화평(畵評)이 적혀 있어 이 작품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입니다. 찔레꽃 한 송이가 화가의 관찰력과 생태 감각, 조형미와 식물학적 정밀함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미감으로 재탄생한 순간입니다. 자연을 모방한 조경이 진정한 자연성을 획득하는 길은, 이렇게 한 송이 들꽃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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蝶粉疑可粘手(접분의가점수) 나비 가루가 손에 묻을까 의심스럽다.


人工之足奪天造(인공지족탈천조) 사람의 재주가 족히 하늘의 조화를 빼앗아


乃至於是耶(내지어시야) 이에 이르렀구나!


技覽驚歎(기람경탄) 재주가 놀랍고 감탄하게 하니


爲題一語(위제일어) 한마디 적는다.


豹菴評(표암평) 표암(강세황)이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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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른쪽에 초서로 석초 정안복이 평한 글은 이렇습니다.


蝶之斜翻張翅(접지사번장시) 나비가 비스듬히 날며 날개를 부풀리는 것은


猶可彷彿(유가방불) 가히 비슷하게 할 수 있으나


而色之得於天者(이색지득어천자) 색이 자연에서 얻은 듯


乃能狀之(내능장지) 이처럼 나타내니


神在筆端(신재필단) 붓 끝에 신이 있구나.


石樵評(석초평) 석초(정안복)가 평한다.


꽃과 나비는 예부터 그림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조선 문인들은 집에 꽃밭을 만들어 꽃을 심고 가꾸는 일을 즐겼는데요. 꽃을 키우는 일은 마음을 닦고 덕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꽃을 감상 대상으로 여기면서, 진기한 꽃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고, 아울러 꽃 그림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을 겁니다.


그림에는 세 마리의 나비가 찔레꽃 주변을 날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호랑나비, 작은멋쟁이나비, 왕오색나비입니다. 그림처럼 꽃 위에 벌이나 나비가 있는 건 향기가 예사롭지 않거나 꿀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석초는 나비가 비스듬히 왕성하게 나는 모습을 "붓 끝에 신이 있네(神在筆端)"라고 극찬했으니, 나비의 비행을 감상하면서 찔레꽃의 달콤한 향기를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전통적으로 나비는 즐거움과 행복, 자유로운 연애, 남녀 화합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나비가 80세 노인을 뜻하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 장수를 비는 의미로도 쓰여졌습니다. 나비를 뜻하는 한자 '蝶(접)'은 80세 노인을 뜻하는 한자 '耋(질)'과 중국어 발음(dié)과 같아서 부귀와 장수를 상징하고, 변태(變蛻)를 거듭하므로 성장과 발전의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찔레'라는 명칭은 ‘찌르다’라는 동사의 어간 '찌르-'에 접미사 ‘-에’가 붙은 이름으로, 나무줄기에 가시가 많아 ‘찔리는 나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꽃은 매년 5월쯤 전국의 산기슭과 계고, 들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철쭉 철이 지났는데 산에 하얀색 작은 꽃이 덤불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게 보이면 거의 찔레꽃이라고 보면 됩니다.


꽃의 외형은 작고 수수하지만 향이 은은하면서도 여운이 깊게 남는 아주 특이한 매력을 가진 들장미입니다. 찔레의 여린 줄기(지름 5mm 내외)를 꺾어다 껍질을 벗기고 씹어 먹으면 의외로 전혀 쓴맛이 나지 않습니다. 사각한 더덕을 씹어 먹는 정도의 쓴맛인데 살짝 단맛도 있고 물기도 있어서 질겅질겅 씹어 삼키기 좋습니다. 비타민과 각종 미량 원소가 들어있는 찔레순은 어린이의 성장 발육에 도움이 됩니다.


남부지방에서는 해당화를 찔레나무라고도 하는데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으로 시작하는 가요에 나오는 붉은 찔레는 해당화가 아닐까 합니다. 찔레꽃이 필 무렵에는 모내기가 한창인 시기로 안타깝게도 이 시기에 흔히 가뭄이 잘 듭니다. 그래서 이때의 가뭄을 '찔레꽃 가뭄'이라고도 합니다. 서양에서는 찔레 뿌리로 만든 담배 파이프가 유명한데 최고급 남성용품의 대명사로 꼽히는 던힐의 창업주 앨프리드 던힐은 35세 때인 1907년 런던 듀크가(街)에 담배 가게를 열면서 찔레 뿌리로 아름답게 수가공한 파이프를 만들어냄으로써 명성을 떨치는 계기를 잡았다고 합니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를 목놓아 부르는 소리꾼 장사익의 <찔레꽃>을 들으면 삶의 애환이 깊게 느껴져 마음이 처연해집니다.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에 대한 헌사로 들립니다. 5월 20일은 '벌의 날'입니다. 성가시고 하찮게 보아온 찔레꽃에 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꽃은 벌에게, 벌은 꽃에게, 서로에게서 삶을 얻고, 희망을 심어가는 따스함이 온 들녘에 퍼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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