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소 개인전 《무제(Untitled)》 전시 전경 /출처: 우손갤러리
우손갤러리 서울은 오는 6월 21일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독자적 지형을 개척해온 작가 최병소의 개인전 《무제 Untitled》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작가의 조형 언어를 집약적으로 조망하는 자리다. 신문, 잡지, 인쇄물 등 일상 매체를 기반으로 한 ‘긋기’와 ‘지우기’ 행위 중심의 작업 30여 점을 소개한다.
최병소 개인전 《무제(Untitled)》 전시 전경 /출처: 우손갤러리
1943년 대구 출생의 최병소는 중앙대학교와 계명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1970년대 후반 대구 현대미술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그는 회화의 조형성과 의미 구조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실험을 이어왔으며, 대중매체에 긋고 지우는 반복적 수행을 통해 회화의 개념적 지평을 넓혀왔다.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 연작인 〈무제〉 시리즈를 중심으로 드로잉, 회화, 콜라주, 사진 작업은 물론 6미터 길이의 대형 설치, 제작 과정이 담긴 비디오 영상까지 다채로운 형식의 작업을 선보인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신문 지면 위를 촘촘히 덮고 긋는 행위를 통해 생성된 비정형적 표면이다. 이 물성은 숯이나 금속을 연상시키는 시각적 밀도를 지니며, 정보를 제거함으로서 오히려 새로운 시각 질서를 구축한다. 작가의 말처럼 “지우는 것은 생각을 비우고, 생각 이전의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며, 이는 ‘무(無)’의 평면 위에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제안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최병소의 작업은 한국 단색화와 일정한 형식적 유사성을 띠지만, 그 개념적 지향은 분명히 다르다. 그는 회화의 표면을 채우는 대신 삭제와 중첩의 행위를 통해 언어 구조와 정보 매체에 대한 비판적 개입을 시도했다. 1970~80년대 주요 단색화 전시에도 참여했으나, 철심을 바닥에 배열하거나 썩는 고등어를 설치하는 초기 실험 작업 등은 그가 전통적 회화의 경계를 일찍이 넘어섰음을 입증했다.
최병소 개인전 《무제(Untitled)》 전시 전경 /출처: 우손갤러리
이번 전시는 최병소의 예술이 단순한 형식적 차별성을 넘어, 회화와 매체를 둘러싼 제도적 조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긋기와 지우기의 반복은 단순한 수행을 넘어 정보의 제거, 권위의 해체, 시각 질서의 재구성을 향한 행위다. 이는 전통적 표상에서 벗어나 비표상적 조형 언어로 회화의 개념적 확장을 모색하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과도 맞닿는다.
우손갤러리가 마련한 이번 전시는 '제거'와 '반복'이라는 행위가 어떻게 예술의 새로운 질서를 구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사유를 유도한다. 반세기에 걸쳐 지속된 한 예술가의 작업 세계는 오늘날 미술이 언어 너머의 층위를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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