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공간을 찾아서 ③] 대하소설『토지』

by 데일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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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참판 댁'으로 들어서는 입구의 박경리토지문학비 /사진: 한이수

우리나라 사람 중 대하소설 『토지』를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권수로 24권, 총 5부 25편이나 되는 막대한 양의 소설을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어쩌면 소설을 완독한 사람보다도 읽다가 포기한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원고지만 31,200매, 등장인물만 600여 명이다. 등장인물에 대한 통계도 조사자마다 다 다르다. 박경리는 토지를 1969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1994년 8월 15일까지 장장 25년간 썼다. 44세에 시작한 글쓰기는 68세에 끝이 났다. 첫 문장은 '1897년의 한가위'로 시작하고 마지막 문장은 서희의 딸이 해당화를 들고 "어머니, 이, 이 일본이 항복을 했다 합니다"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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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문학관 전시자료 /사진: 한이수

소설 첫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1897년이다. 1897년은 대한제국이 수립되던 시기이고, 들불처럼 일어났던 동학농민혁명이 차츰 잦아들던 시기다. 나라가 일본에 의해 강점되고 식민 시기를 거쳐 1945년 해방 때까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변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기를 소설로 엮었으니, 소설의 분량이 많아지는 것도 이해할 만은 하다. 해방 이후 5년이 지나서 우리나라는 6·25라는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갔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토지의 시간적 배경이 되던 시대는 현대사에 벌어질 수많은 역사적 단초가 얽히고설킨 때이기도 하다.

작가는 특정인을 주인공으로 삼지는 않은 듯하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소설에, 전면에 내세운다. 책을 보지 않아도 서희, 길상이, 윤씨 부인 등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쯤은 많이 안다. 세 번이나드라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979년, 1987년, 2004년 텔레비전에서 나올 때마다 큰 화제가 되었다.

책으로, 드라마로 토지를 좋아한 사람들은 경상남도 하동, 이 먼 데까지 오기 시작했다. 소설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무작정 책 한 권 들고 물어물어 온 사람들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물론 소설이 권수를 더할수록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만주까지 확대되지만, 소설이 시작하는 1부와 맨 마지막은 평사리가 주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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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리 들판의 '부부송' /사진: 한이수

박경리가 『토지』 무대를 평사리로 잡은 것은 전라도 사투리를 잘 몰라서였다. 박경리는 경남 통영 사람이라 경상도 사투리가 입에 붙었다. 그런데 경상남도 쪽은 땅이 넓은 진주라 해도 천석지기가 고작이다. 그래서 땅은 전라도와 비슷하게 넓은 평야가 있는 곳, 게다가 소설의 전개상 중요 거점이 될 지리산이 가깝고, 아름다운 섬진강이 흐르는 땅을 찾다보니 평사리로 정한 것이다. 어떻게 이곳까지 온 것일까? 불화를 졸업 논문으로 쓰는 딸을 도와주기 위해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장소를 눈여겨보았다. 그러나 정작 소설을 쓰는 동안에 한 번도 이곳에 들리지 않았다. 그는 소설의 출간을 끝내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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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리 들판 /사진: 한이수

"지도 한 장 들고 찾아본 적이 없는 악양면 평사리. 이곳에 토지 기둥을 세운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연치고는 너무도 신기하여 과연 박 아무개의 의도라 할 수 있겠는지. 아마도 그는 누군가의 도구가 아니었을까. 전신이 떨렸다. 30년이 지난 뒤에 작품의 현장에서 나는 비로소 토지를 실감했다. 서러움이었다. 세상에서 태어나 삶을 잇는 서러움이었다. 악양 평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에서는 볼 수 없는 호수의 수면같이 아름답고 광활하며 비옥한 땅이다. 그 땅 서편인가? 골격이 굵은 지리산 한 자락이 들어와 있었다. 지리산이 한과 눈물과 핏빛 수난의 역사적 현장이라면 악양은 풍요를 약속한 이상향이다. 두 곳이 맞물린 형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가? 고난의 역정을 밟고 가는 수없는 무리. 이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라면 이상향을 꿈꾸고 지향하며 가는 것 또한 우리네 삶의 갈망이다. 그리고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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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참판 댁 전경 /사진: 한이수

소설만 읽어보고 무작정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하동군은 마침내 큰 결심을 했다. 배경이 되는 이곳 평사리, 소설 속에나 등장하는 '최참판 댁'을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토지』 때문에 하동 땅 평사리를 찾는 사람들을 그냥 돌려 보낼수 없다는 안타까운 마음과 인구는 줄고 내세울 관광자원이 없다는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동군 석민아 공무원이 '최참판 댁' 건립을 제안해서, 경남도청 예산 담당관 윤상기 공무원에게 예산을 부탁하여 도비 10억을 지원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정구용 하동군수가 군비 30억 원으로 부지 3천 평을 구입해, 2001년 소설 속 최참판 댁을 재현했다.

정작 박경리 선생은 이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참 특이하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의 사비라도 보탤 만한데,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 이곳의 아름다운 경관과 환경이 파괴된다는 짧은 이유에서였다.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다른 문학관이 하루에 100명도 찾지 않는 곳이 수두룩한데 이곳에는 하루 평균 천 명이상이나 다녀갔다. 봄, 가을 여행 철에는 문학기행을 하는 학생들과 관람객으로 땅바닥이 보이지를 않는다고 한다.

평사리를 찾은 5월 중순, 날씨는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했다. 이미 봄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은 분위기. 원래 이곳 하동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소개된 바 있다. 구례에서 하동까지 이어지는 섬진강변. 코로나가 시작되기 몇 년전인가? 이곳에 온 적이 있다. 섬진강변을 따라 벚꽃이 지천으로 피었을 때, 정말 세상인지 선계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의 풍광이었다. 하동 끝, 화개장터 너머 쌍계사 주변에는 노란 산수유가 마을을 노랗게 물들여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색의 향연이 펼쳐졌다. 섬진강의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는 평사리를 더욱 빛나게 했다. 3월 말에서 4월초, 이때에만 맛볼 수 있는 굴이 있다. 벚꽃이 피는 시기에만 맛 본다는 손바닥만한 '벚굴'이 식객들의 구미를 돋군다.

박경리와 관계된 문학관은 전국에 세 개나 된다. 하동의 '박경리문학관',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서울 생활을 접고 원주에서 살았던 공간은 '박경리문학공원'으로 변했다. 작가가 생전 거주하던 옛집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문학공원을 조성했다. 박경리가 태어난 통영에는 '박경리기념관'이 있다.

이곳 박경리문학관에는 토지와 관련된 자료가 많다. 문학관 앞 원고지 형태의 검은 돌판에 박경리 선생의 글이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답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 이상의 진실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까지 껴안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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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의 유품 /사진: 한이수

문득 박경리 선생의 생전 어록이 생각났다. '비애(슬픔)를 모르는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선생은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에게 버림 받았고, 남편을 전쟁통에 잃었다. 외동딸 김영주 여사와 결혼한 사위인 민주투사 김지하로 인해 평생 마음고생하고 살았다. 아니, 자신의 외아들도 사고로 잃지 않았나. 고통은 박경리에게 인생을 함께 붙들고 사는 친구와 같았다. 그는 인간이 아무리 힘들어도 마지막으로 지킬 것이 있는데, 그건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그런 고통이 인간에 대한 존엄, 생명에 대한 외경까지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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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내의 부조 작품 /사진: 한이수

문학관 한편에 〈토지 흙으로 춤추다〉는 김봉준의 작품이 걸려있다. 토지를 소재로 한 조각부조다. 소설 속에서 여인들과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주목하여 그들의 삶을 흙, 물, 불의 원초적 질료로 사용한 작품이다.

문학관 맞은 편에는 '최참판 댁'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그러나 세 번의 드라마 중 2004년에 방송한 것만 이곳에서 촬영했다. 『토지』 외에도 〈미스터 선샤인〉 등 수많은 영화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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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평사리 /사진: 한이수

최참판 댁에서 평사리를 굽어보니 비가 와서인지 안개와 구름이 땅을 더욱 충만하게 한다. 섬진강을 굽어 흐르는 이 땅 위에서 서희와 길상이는 사랑을 나누었고, 최참판댁 머슴들은 윤씨부인의 독려 속에서 너른 땅을 경작했다.

왜 소설의 제목이 '토지'일까? 빼앗긴 토지, 조그마한 땅덩어리라도 차지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 아닌가? 토지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풀가지, 모든 생명들. 이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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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문학관 내부 /사진: 한이수

박경리는 1993년판 토지 서문에 이렇게 썼다.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애잔하다. 바람에 드러눕는 풀잎이며 눈 실린 나뭇가지에 홀로 앉아 우짖는 작은 새, 억조창생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과 애잔함이 충만된 이 엄청난 공간에 대한 인식과 그것의 일사불란한 법칙 앞에서 나는 비로소 털고 일어섰다. 내게 『토지』가 더 특별한 이유다."

최참판댁 위에는 하동군에서 운영하는 한옥호텔이 있다. 사전예약으로 운영하는데 평일에는 하루에 6만원이면 이용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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