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g의 기적, 제왕나비 "너도 날 수 있어.

by 데일리아트

7. 1. - 7. 31. 의왕 문화공간《작은 날개 큰 꿈》

능소화가 만개한 여름, 경기도 의왕의 조용한 시골 마을에 지어진 작은 갤러리에서 나비의 여정이 펼쳐지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몸무게 0.45g, 날개를 펼친 길이 10cm 남짓한 제왕나비(Monarch Butter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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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나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북미 대륙을 종단하며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멕시코까지 이동하는 이 나비의 여정은, 생존을 위한 계절 이동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생태적 질문과 조우하는 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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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의왕문화공간 그린캔버스

이번 전시는 뉴욕 공립도서관에서 열린 피터 쿠퍼(Peter Kuper)의 제왕나비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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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쿠퍼 /출처: 피터 쿠퍼 홈페이지

미국을 대표하는 정치 만화가이자 그래픽 노블 작가인 쿠퍼는 이 작은 생명체가 수많은 도시를 지나며 겪는 고난과 풍경을, 마치 여행자의 시선처럼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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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여정, 뉴저지 /사진: 최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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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여정, 웨스트 버지니아 /사진 : 최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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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준비 /사진: 최영식

캐나다의 숲, 뉴저지와 펜실베이니아의 산업지대, 웨스트버지니아의 댐 건설 현장, 플로리다의 농장, 텍사스의 평원을 지나 멕시코의 전나무 숲에 도달하기까지, 그의 작품 속 나비는 도시화, 기후 변화, GMO 농업, 천적과의 싸움 속을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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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듬이 GPS /사진: 최영식

더듬이는 GPS가 되어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고, 그 여정은 마침내 휴식과 번식이 허용되는 숲의 고요에 도달한다.

전시를 기획한 안종복 대표는 단지 그림을 소개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쿠퍼의 시선을 빌려 생태적 메시지를 한국의 관람객들에게도 전하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전시만큼 중요했던 건 ‘어디에서 이 전시를 보여줄 것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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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전 모습 /사진: 의왕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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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갤러리 /출처: 의왕문화공간

선택된 장소는 이런 목적과 놀랍도록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1969년에 지어진 옛 한옥 건물은 오랫동안 시골 농부의 생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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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공간 /사진 : 최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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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서까래 /사진: 최영식

이후 리모델링을 통해 갤러리로 탈바꿈했지만, 천장의 서까래와 대들보, 흙벽과 마루는 그대로 남아 있다. 창밖으로는 나비가 날고, 여름의 능소화가 담장을 타고 흐른다. 그야말로 자연이 관람객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제왕나비의 여정을 담은 그림들이 이 벽에 걸리는 순간, 공간과 전시가 완벽히 어우러진다. 장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나비의 도착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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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옆 밭 /사진: 최영식

갤러리 바깥은 여전히 전원의 일상을 품고 있다. 농사 짓는 소리, 마을 사람들의 발자국, 흐르는 바람. 안 대표는 “이 공간이 본래부터 자연 속에서 생명을 품던 장소였기에, 나비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전시는 지역민의 참여와 함께 한다. 어린이들과 함께 제왕나비를 세밀화로 그려보는 드로잉 프로그램, 명상과 요가 워크숍 등 관람객의 감각을 깨우는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되어 있다. 그 속에서 관람객은 이 작은 생명체의 여정을 단지 ‘감상’이 아니라 ‘동행’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묻게 된다. 0.45g의 무게로 9,000km를 날아가는 나비가 맞닥뜨리는 세상은 과연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쿠퍼는 전시 말미에 이렇게 대답한다.

“지혜는 나비이지, 우울한 맹금류가 아닙니다.”

힘과 통제가 아닌, 섬세한 날갯짓과 길 찾음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라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문득 한 권의 동화가 떠올랐다.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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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희망을' /출처: 예스24

알에서 깨어난 줄무늬 애벌레가 "지금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며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그는 언젠가 꼭대기에 무엇인가 있을 거라 믿고 애벌레 기둥을 기어오르지만, 결국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는다. 대신 그는 다시 내려와, 고요한 변화를 택한다. 그리고 늙은 애벌레에게 듣게 된다. “우린 나비가 될 수 있어.”

이 말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다. 기어오르는 세계가 아닌, 날아오를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삶의 전환이다. 이 상징적 변화는, 생태계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제왕나비의 삶과 닮아 있다.

“너는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어. 우리 모두가 너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거란다!”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전시의 마지막 인상과 묘하게 겹쳐졌다. 갤러리 안에 걸려 있던 수많은 나비의 비행 경로, 미국의 산업 도시와 농경지를 통과해 마침내 멕시코의 전나무 숲에 다다르는 제왕나비의 여정,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 그 모든 순간들이 이 한 줄 문장에 들어있다.

제왕나비의 무게는 0.45g이다. 너무나 가벼운, 그러나 너무나 무거운 존재.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너도 날 수 있어. 우리는 모두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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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에서 나비로 /사진: 최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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