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작가 열전 25] '서랍' 속에 숨겨진 마음풍경

by 데일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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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정, '서랍 (Draw Your Mind)' 전시, 포켓테일즈, 2023 /출처: 김옥정

한지 위에 내려앉은 얼룩과 분채의 흐름 속에서, 김옥정 작가는 시간을 감각적으로 수집한다. 그의 화면에는 무심히 스쳐가는 풍경과 일상의 장면들이 반복해서 등장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같지 않다. 산책길의 나무, 장마철의 빗방울, 가만히 기울어진 서랍 속 감정의 잔상까지 작가의 회화는 늘 곁에 머물렀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시선의 결을 따라가는 내밀한 기록에 가깝다. 나무 한 그루의 계절 속 변주에서부터, 한지에 스미는 분채의 탁함에 이르기까지, 작업들은 '관찰'과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 안에는 분명히 드러내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숨기고 싶은 마음의 서랍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서랍을 기울여 들여다보는 순간, 작가의 고유한 감각을 만나게 된다.

이번 인터뷰는 김옥정 작가가 구축해온 내면의 풍경을 찬찬히 살펴볼 기회다. 우리가 미처 마주하지 못했던 감정의 층위를 따라가며, 작가가 그리고 있는 '이야기하는 풍경' 속으로 한 발 더 다가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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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정, 쓰다듬는 나무 - 2021년 9월 4일 (Caressing Tree — 4th of September), 2021 - 2022, 순지에 분채와 콘테, 162.2×260.6cm

- 본인 소개와 함께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 설명해달라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회화 작업을 하고 있는 김옥정 이라고 합니다. 얇은 한지 위에 동양화 채색 피그먼트인 ‘분채’를 사용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변의 풍경, 사물과 사람 등 제가 보고 겪은 대상에서 시작된 이야기에 관심이 있고, 그 물꼬에서 이어지는 생각과 이미지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물에 대해 느꼈던 감정의 덩어리나 우연히 마주친 풍경에 대한 인상 깊음 등 뭉뚱그려진 생각의 덩어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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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정, 간지럽히는 나무 The Forest's Touch, 2024, 순지에 분채로 채색, 197×141cm

- 이야기하는 풍경 시리즈에서 ‘나무’가 작가님을 투영하는 매개체로 느껴졌다. 많은 자연물 중 왜 선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야기하는 풍경 시리즈에 등장하는 나무들은 대부분 제가 산책길에서 혹은 어떤 장소에서 우연히 목격하게 된 일상적이고 평범한 나무들이에요. 특별히 그리고 싶은 대상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제 주변에서 제가 늘 보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그림의 대상이 된거죠. 특히 산책길에서 종종 보던 ‘똑같은’ 나무가 어느 날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여름의 습기를 머금어 젖은 머리카락처럼 축축 쳐져 있는 모습, 시원한 가을 밤 가로등 불빛 아래서 혼자 외로이 흩날리던 모습들, 차가운 겨울의 건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 생명을 다해 곧 부서질 것 같은 모습 처럼요. 이들이 계절과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부분이 저에게 크게 와 닿았어요. 매일 똑같이 그 자리에 있지만 나의 시간과 함께 분명히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것들도 개인의 상황과 감정, 경험 등에 따라 어떨 때에는 전혀 다른 언어로 말을 걸어온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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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정, 검은 방울, 2022, 순지에 분채와 먹, 65.2x4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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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정, 흐릴 듯 개일 듯한 Cloudy or Clear, 2022, 순지에 분채와 먹, 56.5×56.5 cm 크기의 화판 20개

- 자연, 날씨, 등의 소재의 작업이 많다. 특히 <검은 방울>에서 보이는 마름모 꼴의 칸에 검은 점을 찍은 모습이 <흐릴 듯 개일듯한>의 빗방울로도 등장하는데, 비를 그렇게 표현한 이유가 있나?

이 그림은 장마철에 비가 폭풍처럼 내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바뀌는 맑은 하늘에서 시작된 그림입니다. 날씨라는 것은 기분과 감정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그 당시의 저에게는 바닥에 구멍을 낼 듯이 쏟아지던 장대비가 꽤 힘들게 다가왔었습니다. 하늘에서 검은 우울의 물질이 내리는 것 같았어요. 뭔가 찍찍한(?) 검정 곰팡이 같은 것이 마음속에 번지는 느낌이랄까요? 이렇게 느꼈던 감각을 바탕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그림의 화면에서 검은색 번지는 점으로 표현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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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정, 마음 서랍 - 네잎클로버, 달, 한 방울, 구름, 밤하늘, 들판, 2023, 모두 나무판에 분채와 색연필로 채색, 15x10 x 10cm, 15x13x10cm, 15x10x15cm, 13x10 x15cm, 15x15x15cm, 10x15x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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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정, 필수적인 마음 An Essential Heart, 2023, 순지에 분채로 채색, 65.1×53cm

- 마음 서랍 시리즈에 나타난 오브제들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왜 그러한 형태를 선택했으며 전시된 방식의 이유도 궁금하다

‘서랍’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 전시 《서랍 Draw Your Mind》를 준비했을 때,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지만 반대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는, 숨기고 싶지만 또 바라봐 주길 원하는 양가적인 감정이 함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닫혀 있지 않은 서랍의 형태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그래서 사각형의 닫힌 나무조각이 아닌 삼각형의 모양을 한 나무 조각을 떠올리게 되었고, 거기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삼각형의 직각 부분이 벽에 걸리고, 빗변(직각과 마주 보는 면)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작품인데요, 그림은 기울어진 나무에 그려져 있기 때문에 회화처럼 완전히 1:1로 마주 보며 감상할 순 없고, 각도에 따라 약간 고개를 숙이거나 해야 합니다. 완전히 오픈되어 있진 않지만 약간은 바라봐 주길 원하는 아이러니하고도 양가적인 감각을 담아내고자 했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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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정, 매일의 해 (A Sun for Every Day), 2024, 순지에 분채로 채색, 25×25cm의 판넬 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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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정,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날들 — 달 (The Days That Could Be Anything — Moon), 2023, 순지에 분채와 콘테, 130.3 x 97cm

-〈매일의 해〉나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날들〉시리즈와 같이 한 화면에 여러 시점을 담아내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마음 서랍 시리즈에서 시작된 칸을 나누고 그 칸에 무언가를 채우는 것이 변형된 것으로 이해해도 되나? 어떠한 연유에서 제작되었는지와 두 시리즈의 연관성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그 당시에는 몰랐던 소중함이 시간이 지나고 기억이 희미해질 때 분명해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반면에 지우고 싶은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잔상이 더 또렷해지는 아이러니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이병률 시인의 〈지구서랍〉이라는 시를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제가 생각한 사람과 마음에 대한 생각을 ‘서랍’이라는 키워드로 표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물건을 잘 정리하고, 바로바로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서랍’의 용도처럼 사람들이 남겨놓고 가는 지워지지 않는 못된 말과 따뜻하고 소중한 말들을 잘 구분해놓고 싶다는 생각 말이에요.

사람의 마음속에도 물건을 칸칸이 넣을 수 있는 ‘마음 서랍’이 있다면 각 서랍에는 어떤 마음의 모양들이 들어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담은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서랍 시리즈 회화의 화면에는 칸칸이 나눠진 상자 같은 공간이 등장합니다.

〈매일의 해〉는 매일매일 다른 붉은빛을 보여주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해’에 대한 기록을 담은 그림이에요.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정방형의 칸은 무언가를 매일매일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마음 서랍> 시리즈의 칸과는 출발점이 다르긴 합니다. 해 사진을 아카이빙 한 핸드폰의 앨범 그리드와 매일매일 무언가를 기록하는 일기장 같은 의미 등을 담은 것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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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정, 축축한 초록 The Humid Green, 2024, 순지에 분채로 채색, 45.5×53cm

- 주로 바탕지를 한지로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채색을 하는지 궁금하다

제 작업을 실제로 보면 꽤 많은 얼룩과 붓 자국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땀 같은 얼룩을 가진 표면이 마음에 들어요. 제가 분채를 고집해서 쓰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분채라는 피그먼트를 한지 위에 스며들게 하면서 붓 터치를 계속해서 쌓아 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색이 쨍해지기보다 오히려 약간의 탁도를 머금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 순간까지의 붓 터치의 축적에서 나온 얼룩과 그것이 머금은 회색빛의 기운이 저는 참 마음에 듭니다. 제가 그림을 그리는 주제와도 어느 부분 잘 맞는다고 생각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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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느리게 이동하는 Travel Slowly, 2023, 순지에 분채와 콘테, 60.6×50cm (중) 밤과 별 Night and Stars, 2023, 순지에 분채로 채색, 60.6×50cm (우) 쏟아지는 그림자 Falling Shadows, 2023, 순지에 분채와 콘테, 60.6×50cm

- 색을 사용하는 기준이 있나? 혹은 주로 즐겨 쓰는 색이 있나?

저의 그림에는 제가 사용하는 주된 컬러가 있는 것은 아니며, 거의 모든 색을 사용해 보자 라고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요. 색의 채도와 고유함에 대해 엄격하게 대하는 것은 아니라서 많은 색을 섞어 쓰기도 합니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도 얕은 접시에 물과 함께 섞어둔 피그먼트를 전부 펼쳐 놓고 쓰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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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정, 비갠 뒤 구름 (The Clouds After Rain),2022, 순지에 분채로 채색, 130.3x162cm

- 작품제작시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나?

저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는 것 같아요. 그것은 몇 년에 걸쳐 아주 오랜 시간 생각해온 이미지 이거나 생각일 수도 있고, 번개처럼 아주 잠깐이지만 분명한 잔상을 남기고 간 짧은 것들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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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정, 웃는 구름, 2025, 한지에 분채(피그먼트)로 채색, 45.5×53cm

- 작가의 작업이 관람객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원하는가?

요즘엔 제 작업이 ‘하나의 점’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건 무엇과 무엇을 연결하는 점이 될 수도 있고, 언제 어디서든 시작될 수 있는 무언가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무수히 많은 점과 수많은 선이 우연히 만나 의외의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처럼 저의 작업도 그러한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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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스프링 - 언덕, 2022, 순지에 분채로 채색, 가변크기 / 출처: 김옥정 (우)스프링 - 항해, 2022, 순지에 분채로 채색, 가변크기 /출처: 김옥정

- 앞으로 어떤 작업을 계획하고 있나?

최근엔 과거의 사람들이 하늘의 별과 별을 이어 별자리를 찾아 헤맨 것과 한 명의 작가가 텅 빈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의 비슷함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저만의 별자리를 찾는다는 느낌으로 밤하늘과 별이 이어지는 그림을 그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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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정, 쏟아지던 밤( A Showering Night), 2024, 순지에 분채로 채색, 각 60.6×50cm

학력

2017 이화여자대학교 동양화과 졸업

2020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개인전

2023 서랍 Draw Your Mind, 포켓테일즈

2022 모두에게 우산을, 무음산방

단체전

2025 일상의 (귀여운) 모험, 교보아트스페이스

2024 Pit-a-pat, 카린

2023 종이로 만든 거울: 시간조각모음, 성북어린이미술관 꿈자람

2023 JUMPING-OFF POINT, 이유진갤러리

2023 너와 나 자연히 자연, 송파구립 예송미술관

2022 Behind You 100%, 아트랩반

2022 Picturesque, 아트소향

2022 Muddy Forest, 갤러리인

2020 자르고 남은 구름, 중간지점

2020 신록의 영역, 분당 서울대병원

2019 땅따먹기 4P : back and forth agian, 오퍼센트

2019 제강이 춤을 출 때, 중간지점

프로젝트

2021 저마다의 모양 , 성북예술창작터 윈도우 갤러리

선정

2022 서울문화재단 창작예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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