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2일 공공기관 임직원들과 함께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 태조 이성계가 천명을 받기 위해 기도를 드렸던 임실 상이암에 다녀왔다. 성수산 상이암에 오르는 길목엔 초록빛 숲이 숨을 고르듯 고요하다. 바위틈을 타고 오르는 바람이 오래된 기도 소리를 전한다. 이곳은 단순한 암자가 아닌, 두 왕조의 태조가 꿈을 품고 절실함을 새긴 기도의 성지다.
상이암 오르는 길 /사진: 손안나
임실 상이암은 성수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로, 875년 신라 헌강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이곳은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건국하기 전 기도를 올렸던 장소로 유명하다. 절의 이름이 상이암(上耳庵)인 이유는 이성계가 기도를 마친 후 하늘에서 “앞으로 왕이 될 것이다”라는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상이암이 위치한 성수산은 풍수지리의 정수인 ‘구룡쟁주지지(九龍爭珠之地)’로 불리는 명당이다. ‘구룡쟁주지지(九龍爭珠之地)’는 아홉 마리의 용(龍)이 한 개의 진주를 다투는 형상으로, 왕이 날 수 있는 천하의 길지로 성수산의 아홉 개의 산줄기(용)가 하나의 중심(진주)인 상이암을 향해서 모이는 형국이기에 상이암이 바로 ‘구룡쟁주지지(九龍爭珠之地)’이다.
성수산의 ‘구룡쟁주지지(九龍爭珠之地)’ 지형을 보고 풍수의 대가 도선국사는 '천자봉조지형(天子奉朝之形)'이라 감탄하며 왕건의 아버지 왕륭에게 백일기도를 권했다. 천자봉조지형(天子奉朝之形)이란 천자(황제 혹은 왕)가 조정에 나아가 하늘의 뜻을 받드는 지형적 구조라는 뜻으로 왕이 날 수 있는 명당을 의미한다. 왕건은 그 믿음 하나로 상이암에서 백일기도를 올렸고 마침내 하늘로부터 고려 건국의 계시를 받았다. 왕건은 환희에 찬 마음으로 ‘환희담(歡喜潭)’이라는 글씨를 직접 새겼다고 전해진다. 그 순간은 마치 아홉 용 중 한 마리가 진주를 얻은 구룡쟁주지지의 첫 번째 계시였을 것이다. 고려의 역사는 그렇게 산속의 한 바위에서 시작됐다.
고려 태조 왕건이 썼다고 전해지는 '환이담' /사진: 손안나
그리고 수백 년 뒤, 무학대사의 권유를 받은 고려의 무장 이성계가 같은 산길을 올랐다. 상이암에 들어선 그는 왕건처럼 삼청동 바위 앞에서 백일기도를 올리고, 하늘의 뜻을 받았다. 이성계는 자신이 받은 계시를 바위에 직접 새겼고, 그 자리는 곧 또 다른 용이 진주를 얻은 역사적 순간이 되었다. 두 왕조의 시작이 같은 암자에서, 같은 지형에서 피어났다.
상이암은 단지 명당이 아닌 왕의 운명을 품은 땅이며 민족의 앞날을 예감한 자연의 예언자였다. 이곳이 구룡쟁주지지(九龍爭珠之地)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단순한 지형 해석이 아닌, 실제로 그 기운이 두 왕에게 응답했기 때문이다. 이성계가 기도를 마친 후 심었다는 전설이 깃든 청실배나무에는 왕건과 이성계의 절실했던 기도와 민심을 향한 고뇌가 나무의 뿌리처럼 전해지고 있다. 청실배나무는 한국 고유의 희귀 수종으로 왕조의 기도와 민족의 기억을 품은 생명의 상징이기에 역사적·생태적·민속적 가치가 매우 높은 나무다.
태조 이성계의 삼청동 /사진: 손안나
태조 이성계의 삼청동 /사진: 손안나
구룡쟁주지지를 형상화 한 화백나무 /사진: 손안나
또한, 이곳에는 120년 이상 된 화백나무가 우뚝 서 있는데, 하나의 몸통에서 아홉 개의 가지가 뻗어 나온 모습이 성수산의 ‘구룡쟁주지지(九龍爭珠之地)’ 형국과 연결되어 마치 용이 여의주를 향해 날아가는 형상과 닮아 풍수의 기운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나무를 “왕의 기운을 품은 나무”라고 부르며 왕조의 기도와 자연이 기운이 만나는 상징적 존재로 믿고 있다.
지금도 상이암의 바위들은 입을 다문 채 조용히 역사를 품고 있다. 그러나 바람이 불고, 기도 소리가 흘러나오면 그곳은 다시 한 민족의 운명을 울리는 성지가 될 것이다. 왕조의 시작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성수산의 숲과 기암괴석 사이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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