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나의 작품 - 화가 홍일화 ③] 나무의

by 데일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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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 풍경

나무는 우리에게 세 가지 길을 열어준다. 하나는 하늘로 향한 가지, 하나는 대지로 깊이 내려가는 뿌리, 그리고 하나는 그 그늘 아래 앉는 내 마음이다.

나무는 인간에게 말없는 스승이다. 인간이 태어나기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인간이 떠난 후에도 침묵 속에 존재할 것이다. 나무는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눈다. 잎은 공기를 정화하고, 열매는 배고픈 자에게 나뭇가지 째 내어준다. 심지어 죽어서는 불이 되어 따뜻함을 남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존재하며 베푸는 삶,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배워야 할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나무는 계절이 바뀌면 잎을 떨구고, 바람이 불면 가지를 내어준다. 모든 고통과 변화 앞에서도 저항하지 않는다. 때로는 폭풍에 쓰러져도 뿌리 하나에서 다시 싹을 틔운다. 인간은 고통을 두려워하고 상실에 매달리지만, 나무는 고요하게 수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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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머무는 풍경

시끄러운 세상에서 나무의 가르침은 속삭이듯 다가온다. 버텨라, 그러나 움켜쥐지 말고. 살아라, 그러나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주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뿌리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깊은 곳에서 지탱해주는 뿌리처럼, 인간도 자신의 본성과 관계, 기억이라는 땅 속의 유산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무는 말이 없지만, 그 침묵은 수천 권의 책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하고 있다.

인간은 직선에 집착한다. 그것은 속도와 효율, 통제를 상징한다. 도로는 땅을 가르고, 건물은 하늘을 찌르듯 수직으로 솟아오른다. 그러나 그런 직선 안에는 생명이 머물 틈이 없다. 직선은 곧 명령이고, 틀이고, 강제이다. 반면 나무의 선은 유연하고 자유롭다. 한 그루의 나무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가지는 결코 직선으로 뻗지 않는다. 빛을 따라, 바람을 느끼며, 스스로의 방향을 고르며 자라난다. 하나하나의 선이 다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그 복잡함 속에 자연의 진실이 숨어 있다. 인간의 설계가 지우는 다양성과 불완전함을 나무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아름다움으로 바꾼다. 구불거리는 줄기, 뒤틀린 가지, 갈라진 껍질조차 시간의 흔적으로 존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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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에서 보이는 숲 사이의 빛

이런 나무의 곡선은 인간에게 진정한 ‘자기다움’을 일깨운다. 정해진 틀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어긋난 길도, 굽은 선도, 모두 생명의 일부이며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알려준다. 어린아이가 크레용으로 종이를 넘나들며 그리는 곡선처럼, 나무는 창조의 자유를 보여준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나무를 닮고자 하고, 철학자는 나무 아래서 사유하며, 시인은 그 곁에서 말을 잊는다. 인간의 세계가 점점 직선과 수직으로 굳어질수록, 나무는 더욱 귀중한 존재가 된다. 나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억지로 다듬어진 선이 아니라 스스로 흘러가듯 자라난 삶의 선 안에 있다는 것을 숲에 들어가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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