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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시대 읽기 ⑪] 지금 이 마을에서는 축제가

by 데일리아트

7. 31. - 8. 3. 기장갯마을축제, 영화 개봉 60주년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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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갯마을 포스터 /출처: 한국영화데이버베이스

1965년 김수용 감독의 영화 〈갯마을〉 보고 있으면 흑백화면 뒤로 갯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작품 배경이 되는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야기가 갯바람에 실려 불어온다. 파도와 사투를 벌이는 어부들의 거친 몸, 바다에서 남편을 잃은 여인들의 눈물과 노랫가락이 처량하기 보다는 원시적 건강미가 넘친다. 그래서 영화는 어시장에서 파닥거리는 고기처럼 생명력이 넘쳐흐른다.

줄거리는 23살 먹은 새색시 해순의 남편 성구가 출항 후 돌아오지 못하면서 시작된다. 성구를 포함한 어촌 마을의 남성들은 조를 이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거친 파도에 희생이 되었다. 20여 가구에 불과한 마을 아낙들 중 많은 여인들이 과부다. 이들의 남편도 모두 이렇게 바다의 재물이 되어 혼자 산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고독하지도 나약하지도 않다. 그들은 삶을 긍정하며 서로 위로하고 살아간다. 과부들의 원색적인 거친 입담이 오히려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오영수가 1953년에 발표한 원작 「갯마을」을 원작으로 김수용이 영화로 만들었다. 원작은 20여 페이지의 짧은 단편소설이지만, 다 읽고 나면 진한 여운이 맴도는 것은 이런 넘치는 생명력이 소설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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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감독이 연기지도를 하고 있다. 좌로부터 김수용, 황정순(시어머니), 고은아, 신영균(상수 역), 누워있는 사람이 이낙훈(시동생) /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영화포스터에는 '여성문예영화'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영화를 통해 문예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를 받았다. 문예영화가 무엇인가? 영화 제작사에서 돈을 벌려는 방편으로 외화를 마구잡이로 수입하자, 정부는 세 가지 장르의 영화를 만들면 외화를 수입하도록 허가했다. 문예영화, 반공영화, 계몽영화다. 문예영화는 우리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한 토속적인 소재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외화를 수입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만든 면도 있지만, 어차피 편수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야 해서 감독들이 흥행 부담 없이 도전한 장르이기도 했다. 문예영화는 이후 자극적 소재를 찾는 영화계에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1970-80년대 텔레비전으로 옮겨가 '베스트 셀러극장' 의 형태로 지속되기도 했다.

올해로 개봉된 지 만 60년이나 지났지만 〈갯마을〉은 여성들의 어촌에 사는 여인들의 삶을 한 편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묘사했다. 어촌 마을의 풍광은 원작가가 '자신의 신앙은 고향'이라고 말한 것 처럼 고향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누구든 언젠가 다시 돌아가는 고향. 오죽했으면 남자따라 떠난 과부 해순이도 이곳을 못잊어 다시 돌아올까? 영화 속 작은 어촌의 아름다운 풍광, 무녀들의 의 굿 등 토속적 이미지가 유려하게 화면을 타고 흘러 이 영화를 ‘문예영화’의 대명사라로 평가한다. 김소희의 창과 굿 장면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 몫했다.

원작과 영화는 내용상 조금 다르다. 원작에서는 해순이를 범하고 살림을 차린 상수가 징용으로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고, 시간적 배경도 일제 강점기 후반으로 설정했다. 영화에서는 시대를 가늠할 뚜렸한 단서가 보이지 않고, 상수가 갯마을을 떠난 후, 산에서 산삼을 캐러 다니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것으로 설정했다.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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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된 해순이 마을의 과부 아낙네들과 어울리는 장면, 해순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주인공 해순이(고은아 분)는 물질을 잘하는 제주도 출신의 어머니가 낳은 갯마을의 처녀다. 작은 갯마을의 성실한 청년 성구에게 시집간 지 석 달 만에 청상과부가 된다. 남편 성구가 마을 사람과 조를 이뤄 출어를 나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마을에는 이렇게 혼자된 과부들이 즐비하다 보니 과부 된 것이 흉이되지 않는다. 홀로된 과부들은 질퍽한 입담으로 고독을 달래고 서로를 위로하며 보듬고 살아간다. 사실은 시어머니로 분한 황정순도 젊은 시절 과부가 되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과부된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지만 남편의 첫 제사를 치른 후에 떠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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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순(고은아 분)은 상수(신영균 분)의 구애에 마음을 연다.

이 마을 멸치를 잡는 후리막에서 사는 뜨내기 상수(신영균 분)가 해순이를 넘본다. 죽은 성구의 동생 성호(이낙훈 분)도 맘 속에는 혼자된 형수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 상수는 멸치후리질로 지쳐 잠이든 해순이 방에 몰래 침입해 해순이를 범하고, 자랑삼아 동네에 소문을 낸다.

이를 눈치챈 시동생 성호는 상수에게 주먹질을한다. 차라리 형수와 함께 동네를 떠나라고 한다. 상수는 "해순이 내캉 살자!"며 해순을 꼬셔 갯마을을 떠난다.

해순과 상수는 장돌뱅이 생활을 하다가 심마니인 친구 김가를 따라 산으로 들어간다. 상수가 산삼을 발견하나 김가의 교활한 술책에 걸려 산삼을 뺏앗긴다. 해순은 떠돌이 생활이 싫어졌고 점점 바다가 그리워진다. 벼랑에서 산삼을 발견한 상수는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다. 해순은 모든 것에 절망하고 갯마을로 돌아온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딸처럼 반기고, 마을 과부들도 해순이를 다시 보듬어 준다.

영화로 시대 읽기

장소의 배경-기장군 일광해수욕장

장소의 배경은 부산시 기장군이다. 지금도 기장군에서 나는 멸치가 유명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 지금은 일광 해수욕장으로 변했다. 해수욕장 주변은 멸치 맛집이 즐비하다. 소설에서는 첫 부분과 끝 부분에 소설의 배경이 어딘지를 가늠하게 하는 단서가 나온다. 첫 부분에서는 이 지역을 'H'라는 조그만 갯마을로 표현해 정확한 마을 이름을 특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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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갯마을'의 실제 배경 일광 해수욕장 모습 /출처: 헬로tv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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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갯마을'의 스틸 컷 /출처: 헬로tv뉴스

"서(西)로 멀리 기차 소리를 바람결에 들으며, 어쩌면 동해 파도가 돌각담 밑을 찰싹대는 H라는 조그만 갯마을이 있다. 더깨더깨 굴딱지가 붙은 모 없는 돌로 담을 쌓고, 낡은 삿갓 모양 옹기종기 엎딘 초가가 스무 집 될까 말까?" (소설 「갯마을」 첫 문장)

그러나 소설의 끝 부분에서는 장소를 가늠하게 하는 단서가 정확하게 등장한다.

"해순이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아낙네들은 해순이를 앞세우고 후리막으로 달려갔다. 맨발에 식은 모래가 해순이는 오장육부에 간지럽도록 시원했다. 달음산 마루에 초아흐레 달이 걸렸다. 달그림자를 따라 멸치 떼가 들었다."( 소설 「갯마을」 마지막 문장)

여기서 등장하는 달음산은 부산시 기장군 일광읍에 소재한 고도 588m의 산이다. 기장군 중앙에 솟아 있어서 '기장 8경' 가운데 '제 1경'이 되는 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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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갯마을 축제

영화는 올해로 개봉 60주년이 된다. 영화의 배경지인 기장군은 영화를 소재로 축제를 만들었다. '기장갯마을축제'다. 지역 주민의 영화 사랑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축제는 1995년 처음 시작해서 지역의 문화콘텐츠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2025년 올해는 영화 개봉 60년을 맞아 7월 31일부터 8월 3일까지 일광해수욕장 일원에서 많은 행사가 열린다. 축제프로그램을 찾아보니 멸치잡이 그물 당기기 체험, 맨손으로 고기 잡기, 조약돌 찾기 등 영화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많다. 이런 축제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영화를 통한 관광 산업이 발전해 지역인들에게 고른 혜택이 돌아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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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 문학비 /출처: 기장군청 홈페이지

오영수와 그의 아들 오윤

원작을 쓴 오영수는 우리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설가다. 150편이나 되는 그의 작품이 토속적이고 전통적 이야기에 기반을 두어 우리 문단사에 크게 기여한 부분이 크다. 그리고 그는 작가 조연현과 1955년 현대문학을 만들어 편집자로서 많은 일을 했다. 오영수는 경남 언양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미술학교를 나왔다. 해방 후에는 경남여고에서 국어뿐 아니라 미술 선생도 겸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이 그의 아들인 민중미술가 오윤이다.

오윤은 어릴 적부터 예술가들이 문지방을 닳도록 집에 오는 보고 자랐다. 집안의 이런 분위기 탓인지 오윤의 작품에는 인간의 희노애락과 민중에 대한 따듯함, 그들을 대변하는 서사가 주류를 이룬다. 오윤은 서울대 미대에서 오수환을 만나 판화 작업에도 열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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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오경환·윤광주, 테라코타 벽화(32m×3.4m) 1974, 서울 종로 4가 우리은행 지점

오수환과 오윤이 어울려 벽화 제작회사를 만들었고, 친구 임세택이 상업은행장인 부친을 설득해 은행지점에 벽을 장식하는 조형물을 만들었다. 지금 종로 4가 네거리 우리은행(옛 상업은행) 전면에는 이들이 제작한 황토색의 테라코타가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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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칼노래, 1970, 판화, 31.8X25.2cm / 출처: 오윤전집

오윤의 누나 오숙희(1939-)는 서울대 미대 친구인 김지하 등과도 친해, 동생에게 김지하를 소개해 준다. 김지하는 오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민중미술그룹'현실과 발언'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오윤이 작업한 창비 시선의 〈칼 노래〉는 지금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김수용감독

김수용 감독은 2023년 우리곁을 떠났다. 1958년 <공처가>로 데뷔한 이후 1999년 <침향>에 이르기 까지 109편의 영화를 만든 다작의 감독이다.

그는 <혈맥>(1963)을 비롯한 <저 하늘에도 슬픔이>,<갯마을>(이상 1965), <만선>, <산불>,<안개>, <사격장의 아이들>(이상 1967), <도시로 간 처녀>(1981) 등에서 신상옥, 김기영, 유현목 및 이만희, 이성구 감독 등과 더불어 196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를 이끌었다.

김수용은 문학적 감성으로 문예영화의 기틀을 마련했고 형식미로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 <사격장의 아이들>, <물보라>(1980), <도시로 간 처녀> 등은 사회와 현실에 대한 그의 인식이 어떤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https://youtu.be/BwbQgeavk-Y

출처: 유튜브 한국고전영화ㄱ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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