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의 '기다림'이란 그림을 보면 봄기운이 만연한 어느 집 뒷뜰 버드나무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여인의 초조함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다. 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에서, 또 왼쪽 발을 살포시 들고 있는 모습에서 여인의 초조함이 보인다.
(왼쪽) 신윤복의 기다림, 18세기 후반, 28.2 X 35.3cm, 소장처 미상(오른쪽) 신윤복의 기다림 그림 앞의 인형작가 박정임의 인형으로 만든 '기다림' (2011 서울인형전시회)
신윤복은 우리에게 여기까지만 보여주고 있다. 그 이후는 우리 감상자들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다.
님을 기다리는 것일까?
여인이 기다리는 사람은 승려로 추정된다. 여인의 뒷춤에 들려있는 것은 '송낙'으로 승려가 평상시에 납의(衲衣)와 함께 착용하는 모자이다. ]
그렇다면 이 여인은 누구일까? 노류장화(路柳牆花)란 말이 있다. 길가의 버드나무와 담장 밑의 꽃이란 뜻으로 기생을 의미하며 신윤복은 그림에 버드나무를 그려넣어 이 여인이 기생임을 말해주고 있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승려와 기생은 신분이 낮은 계층이었다. 동병상련의 두 사람이 만남을 가졌고 승려가 모자를 두고 갔고 그 모자를 돌려준다는 핑계로 여인은 승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종합해보면, 이 그림은 스님을 사랑하고 있는 기생이 집 뒤뜰에 나와 행여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이 오시지 않을까 기다리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전부터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석탄주란 술이 항상 떠올랐다.
석탄주는 그 맛이 달고 향기로워 입에 머금고 차마 삼키기가 아깝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석탄주,惜呑香 (애석할 석/삼킬 탄/술 주))
삼키기가 아깝고 또 줄어드는게 안타까운 술이란 의미인데 저 여인과 승려가 만나 석탄주를 같이 마시는걸 계속 상상하게 된다. 그러면서 술이 줄어드는걸 안타까워 하며, 즉 시간이 흐르는걸 안타까워 하며 둘이 마셨을 술. 그리고 다시 같이 마시고 싶지만 오지않는 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안타까운 여인의 마음.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이런 이유때문에 필자로 하여금 석탄주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다.
석탄주는 '임원경제지', '양주방', '음식방문', '술방문' 등에도 많은 문헌에 그 기록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대중화된 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알코올 함량이 13~15% 정도이며, 일반 술에 비해 당도가 2배 가까이 높아 송편, 한과, 고기찜류 등의 음식과 잘 어울리며 여성들이 마시기에도 적합하다.
석탄주는 일반명사라 누구든 석탄주란 이름의 술을 만들고 또 판매할 수 있다. 현재도 몇종류의 석탄주가 시중에서 판매중이지만 만들기가 쉽지않아 그 종류는 많지않다.
하심당 석탄주, 지평주조의 푼주, 미담양조장의 미담 석탄주, 양온서 온의 석탄주 온, 이백양조장의 석탄주가 현재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석탄주 들이다.
(왼쪽부터) 양온서 온의 석탄주 온, 미담양조장의 미담 석탄주, 지평주조의 푼주, 아백양조장의 석탄주, 하심당의 석탄주 (2)
그중 오랜 역사를 가진 석탄주가 하나 있으니 전남 담양의 하심당 석탄주가 그것이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에 있는 홍주송씨 이요당파 광길 종가에서 대대로 내려온 제주 (祭酒)로 담양의 찹쌀과 물, 누룩만을 이용해 빚는다.
일제시대를 거치며 잊혀졌지만 다행히도 석탄주의 자세한 한글 제조법이 홍주송씨 집안에 문헌으로 내려온 덕분에 홍주송씨 집안의 제삿술로 명맥을 이어왔다.
150년 된 종가 고택 하심당(下心堂)에서 한옥 체험을 진행하던 송영종 대표는 숙박객에게 석탄주를 맛보여주곤 했는데 한번 맛본 이들이 계속 판매 요청을 하여 송 대표는 석탄주를 상품화하기로 했다. 송 대표는 좋은 재료에서 좋은 술맛이 난다는 신념으로 직접 농사를 지은 찹쌀을 이용해 석탄주를 빚고 있다.
(위) 전남 담양소재 하심당(下心堂)(아래) 석탄주를 빚고있는 송영종 대표
하심당의 석탄주는 죽으로 밑술을 만들고 덧술 과정에서 물을 더 첨가하지 않기에 발효 과정 중 자칫 상하기 쉬워 만들기가 어렵다. 찹쌀만을 이용해 과일 향이 매력적인 석탄주를 만들기까지의 송 대표의 정성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송대표의 자제들이 하심당과 석탄주의 대를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안타까워 하는 상황에서 석탄주를 마시면 안타까움이 배가 될 것 같지만 석탄주가 주는 입안의 행복때문에 잠시나마 그 안타까움이 반감되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신종근의 미술과 술 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석탄주 (惜呑酒)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