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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好同樂 ⑦] 그리움을 나누는 아름다운 공동체

by 데일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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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3일 인사동 '갤러리 은' 회원전에 참여한 회원들

지난 7월 23일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이색적인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 이름이 너무도 평범해서 오히려 특이한《아름다운 여행 》전이다. 50여 명의 아마추어 회원들의 전시였다. 아마추어라 하기에 수준이 높아 보였고, 전시하는 사람 중에 유명인들이 많았다. '사랑꾼' 최수종 하희라 부부도 있었고, 배우 이태란도 작품을 내놨다. 이들은 청담동의 한 화실 동호인들이다. 화실 이름은 전시 제목과 같은 '아름다운 화실'.

10년째 회원전을 열고 있다는데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지? 이들은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했다. 아름다운 화실 유송대표와 일정을 잡고 무작정 청담동의 '아름다운 화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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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갤러리를 운영하는 유송대표와 아내 서양화가 하소영 부부의 젊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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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에서 커플로 만난 아내 서양화가 하소영. 아내는 그림 인생을 함께하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집무실에는 학창시절부터 '유명한 캠퍼스 커플'이었던 부부의 젊은 시절 사진이 걸려있다. 이들은 대학 졸업 후 학원운영, 부부화가, 갤러리 운영을 함께 인생의 고락을 함께했다. 칼이 아닌 붓을 든 인생의 동지다. 언제 찍은 거냐고 물어보니 홍익대 4학년 실기실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두 사람의 풋풋함이 화실의 분위기를 싱그럽게 했다.

유송대표는 홍대 서양화과 졸업 후 30년 동안 대치동, 강남구청 등지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했다. 입시 교육을 오래하다 보니 회의감이 들어 전업 작가 생활도 4, 5년 했다. 우리나라에서 화가들이 온전한 예술가로 살아남기는 참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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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작가로 참여한 탤런트 하희라( 그 옆이 사랑꾼 최수종)와 함께한 유송 대표

나이 50대에 접어들면서 내가 잘 살아온 것인가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돈을 버는 것은 두 번째 문제. 내가 무언가 배우고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젊은 시절의 막연한 생각들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나는 무엇하며 살 것인가? 생각하다 보니 '그럼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화실이었어요. 고령화되면서 인구는 줄지만, 실버산업이 유행할 것이고 미술은 나이 들어도 할 수 있을 거 같아 화실을 차리게 된 것이죠. 화실을 여니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어요. 보통 사람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로망이 있지 않나요?"

예체능 중에 미술은 보통 초등학교 3학년 정도에 다 끝나지만 사람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한다. 그런데 보통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을 본을 잘 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 유송 대표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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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품에 진심인 회원들. 이들은 마음 속 모든 것을 캔버스 위에 쏟아 낸다.

"하늘은 파란색이 아닌데 사람들의 생각에 파랗다고 생각해요. 노랑 검은색으로 그리면 혼나죠. 초등학교 교실에 걸리는 그림 한두 명 외에는 다 포기합니다. 일반인이 그림 접근이 너무 어렵습니다. 똑같이 못 그린다는 것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유송 대표는 그림의 어원은 '그리움'이라고 주장한다. 먼저 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유학간 아들을 그리워 하는데, 그런 것을 그리는 것이 그림이라는 것이다. 머릿 속, 가슴 속, 전달하고픈 그림움을 표현하는 화실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미술 동호인들이 화실에 모여드는 데 일반적 화실과 똑 같이 하고 싶지는 않아서 처음부터 회원전을 열었어요. 그러나 회원들끼리의 전시가 아니라 잘나가는 작가들과 컬래버로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런데 프로 작가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어요. 내가 어떤 작가인데 아마추어와 같이 전시를 하냐고 하더군요."

그런데 놀랍게도 회원들이 컬렉터가 되었다. 화실 회원들은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 좋고, 작가들은 그림 팔기 힘든데 회원들이 컬렉터가 되어 전업 작가들의 그림을 사니 작품 홍보도 되고 판매도 되어 서로 윈윈이 된 것이다.

9회 전시까지는 작가들이 '아름다운 여행 전'을 안 하느냐? 다음 '아름다운 전시'에 초대해 달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공존하는 진정한 의미의 미술 행사가 되었다. 새로운 일을 하다 보면 어렵지만, 생각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것이 유송 대표의 지론이다. 회원들은 유송 대표와 화실을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화실을 여러군데 다녔어요. 이곳이 여덟 번째의 화실입니다. 내가 그리고 싶어 화실을 찾는데. 어느 정도 되면 원장이 개입해서 참견하기 시작해요. 내 그림이 되지 않는 것이죠. 원장이 참견해서 그리면 원장의 그림이지 내 그림이 아니잖아요. 우리 원장님은 회원들의 그림에 터치를 안 합니다. 나는 그것이 좋아요. 나는 원장님을 최고의 미술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분입니다." (김경숙 회원 한국체육대학 교수)

이 화실과 다른 화실의 다른 점에 대해서 한 회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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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실에서 자신의 그림에 여념이 없는 이옥란 회원

"그림이란 것이 정답이 없잖아요. 아름다운 화실에서는 자신의 그림이 존중과 지지를 받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죠. 늘 원장 선생님이 하는 말이 '그냥 마음대로 해보세요' 랍니다. 어떤 스타일을 강요하기보다는 나 스스로 내 그림체를 찾을 수 있도록 지도 해주셔서 백인백색을 갖게 된다는 점이 일반 화실과 확연히 다른 점이 아닐지 생각해요. " (이옥란 회원)

이 화실에서 오래 다닌 한 회원은 "같이 그림 그리면서 같은 고민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어요. 아트투어나 전시회 나들이, 간식타임, 와인파티, 정기회식 등등 어울릴 기회가 많다보니 회원들이 친구같고 언니, 동생처럼 느껴져서 화실 가는 것이 너무 즐거워요" (최혜경 회원)

어떤 사람들이 참석하는지 기자의 질문에 유송대표는 이렇게 대답한다.

"정치인들은 외에 다 있습니다.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 탤런트도 있고요. 일반인들도 있습니다. 화실 단톡방에는 150여 명이 있는데 10년 동안 꾸준히 나오는 사람이 배우 하희라 씨입니다. 집이 강북인데 일주일에 한 번은 나와서 그림을 그리고 갑니다. 한 달에 평균적으로 50여 명이 나와 그림을 그립니다. 10년 동안 아름다운 화실을 거쳐간 화원은 1천여 명정도 됩니다. 그 중 아마추어 15명 정도가 개인전을 열었어요. 15명 작가를 배출한 셈이죠.

이들을 어떻게 지도하는 것일까?

" '처음 그려봐요' '그림에 재주가 없어요'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제가 뭐라 하면 '모든 재주는 잠재되어 있다'고 말을 해요. 사람들은 양육 받고 교육 받는데 익숙해지면서, 자기에게 잠재되어 있는 미술이라는 재주는 꺼내놓지 못하고 사장시킵니다. 그래서 '숨어있는 잠재력과 재주를 꺼내서 사용해 보세요' 말합니다. 나의 역할은 누구에게나 모두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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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실 한 켠에 있는 BLgallery

예능은 배우는 게 아니다. 미술은 다른 예능에 비해서 발현이 조금 늦게 될 뿐이다. 미술에는 신동이라는 표현이 없다. 체육 신동, 음악 신동은 있어도 미술은 신동은 없다. 미술은 머리와 의식 수준과 같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이 50이 되어야 중견 작가가 나오는 것이다. 문득 이름이 왜 '아름다운 화실'이고 전시 제목이 《아름다운 여행》 전인지도 궁금했다.

"전에 60-70대 남성을 레슨을 한 적이 있어요. 그분들이 매주 오셔서 2, 3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겁니다. 그래서 화실이름을 '아름다운 화실'로 지었어요. 화실이름을 아름답다고 지으니 제 입에서 '아름답다'는 말를 많이 하게 되더군요.“

《아름다운 여행》전은 어떻게 지어진 것일까?

"나는 화실에 항상 있고 회원들은 돌아가면서 오죠. 회원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갑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편이죠. 그래서 꼭 나는 내가 여행하고 있다는 착각이 듭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우주가 온다'는 것인데, 저쪽의 벽면 갤러리 이름도 BLgallery(beautiful life,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이들은 그림 그리는 것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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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으로 음악 공연도 감상하면서 회원간 친목을 다진다.

"성수동의 '할아버지 공장'이라는 카페에서 공연을 했어요. 100호 그림을 즉석에서 그리기도 하고 공연과 음악도 같이 즐겼습니다. 브라바 아트 뮤지엄에서 문화융합 프로그램을 4회 정도 했습니다. 화실 회원중에서 15명 정도가 개인전을 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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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이세현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한 아트투어

회원들과 함께 아트 투어도 진행했다. 파주에 있는 김태호 작가들 작업실을 방문해 작가들의 작품 이야기도 듣는다. 함께 그림을 그리고 화실을 방문하니 서로가 끈끈한 친구가 되었다.

일반 화실에서는 하지 않는 일이다. 경기도 이천에 '라드라비 아트 투어'도 했다. 헤어디자이너이자 작가의 전시관을 방문한 것이다. 도슨트의 강의도 듣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회원들에게 도움이 된다하면 실행에 많이 옮겼다. 회원들의 창작 활동에 도움이 된다면 가리지 않고 많은 행사를 기획했다.

문득 유송 대표에게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졌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 수행자가 면벽을 하는 것이 같다고 봅니다. 그림을 그릴 때 좁은 공간에서 그리잖아요. 수행을 하는 것과 같아요. 마음의 찌꺼기를 그림을 통해 풀어내면 마음에 여백이 생기죠.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보면 표정이 달라집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마음을 토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도 하는 것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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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자기 마음 속 이야기를 잘 끄집어 내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그림을 그리고 고통스러운 사람은 고통스러운 그림을 그린다. 자기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가 좋은 그림을 만든다. 재주가 아니라 '용기'다. 그래서 유송 대표는 회원들이 자유롭게 그림 그리는 것을 지켜보다가 칭찬할 시기를 포착한다.

"칭찬하는 시기가 제일 중요합니다. 회원들은 자기가 그림을 잘 그리고 있는지 궁금하거든요. 자신의 마음 속 그리움이 캔버스에 막 표현될 때, 나는 정확하게 칭찬을 합니다."

이 화실은 회원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도록 독려하고, 서로 칭찬하며 아름다움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햔해서 나간다. 그래서 그림도 아름답고 사람들도 아름답다. 인생의 순간들을 자신의 캔버스에 찬란하게 그려가는 인생의 동지들, 그래서 모두 멋진 인생들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떨까?

"오랜동안 그린 회원들을 위해 공유 작업실을 만들려고 합니다. 내후년 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그동안 '아름다운 여행전'에 초대작가로 선정되었던 전업작가 100인과 전국의 미술동호인 200여명을 공모하여 프로와 아마추어가 공존하는 아트페어형식의 미술문화축제의 장을 펼칠 계획을 갖고있습니다."

이런 꿈이 실현되어 그림으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들을 전시장에서 만나기를 기대한다. 유송대표와 아름다운 화실 회원들이 그림으로 함께 동호동락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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