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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Aug 06. 2024

가시 섬

[숲에서 태어난 아이 ①]

화가 홍일화의 단편 소설, 그림으로 못다 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냅니다
홍일화 작가

화가 홍일화의 단편 소설을 연재합니다. 홍일화는  제주도 곶자왈에서 살 때 아름다운 숲의 모습에 매료되어 숲의 신비로움을 작품으로 많이 남겼습니다. 그는 그 숲의  서사를 그림뿐 아니라 글로도  표현했습니다. 숲의 화가 홍일화가 그림 속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글로 풀어냅니다. 데일리아트는 홍일화 작가의 글을 십여  편에 걸쳐 소개할 예정입니다. 글 중간에 제주도 곶자왈을 표현한 작가의 그림은 덤입니다. 글 게재를 허락한 홍일화 화가에게 감사를 전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1장 가시섬》


작은 섬이 있었다.


그 섬엔 섬을  뒤덮을 정도의  숲이 있었다. 하지만 숲 속의  나무들은 높이  자랄 수가 없었다. 화산재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바닥이 돌투성이여서 울퉁불퉁하고 매우 거칠었다. 바닥의 돌들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이리저리 쪼개진 채로 날카롭게 굳어 있었다.


나무는 이런 돌 틈 사이로 뿌리를 내리는 데 온 힘을 다 쓰다 보니 정작 위로 올라갈 여력이 없었다. 하천이 발달하지 않았고 빗물도 돌 위에 고이지 못한 채 대부분 지하로 내려갔다. 나무는  살기 위해  겨우겨우 힘을  내 뿌리로  돌을 꼭 움켜쥐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도 허무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살기 위해선 돌 사이로 뿌리를 내리거나, 돌을 최대한 꽉 움켜잡아야만 했다. 이렇게 뿌리에만 힘을 주다보니 뿌리는 점점 두꺼워져만 갔고 모양도 울퉁불퉁해져 숲의 바닥을 뿌리로 가득 메웠다.


나무는 위로 자랄 힘이 없었다. 섬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바람이 섬으로 많은 다양한 종류의 씨앗을 가지고 왔지만 섬에는 흙이 없었기에 식물들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어만 갔다. 


그나마 운이 좋아 나뭇가지 위에 자리를 잡거나 아니면 쓰러져 죽은 고목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얇고 나약한 뿌리나마 힘겹게 내릴 수 있었다. 백서향, 방울난초, 바람꽃... 등이 나무에 붙어서 살아갈 수 있었다. 

홍일화, 곶자왈 풍경

나무는 이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렇게 같이 살아갔다. 나무는 돌을 잡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쓰다 보니 매일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고 주변을 둘러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이 외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나뭇가지에 터를 내린 작은 풀들은 나무의 친구가 되어 주었고 다른 세상의 소식들을 전해 주며 나무들을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나무와 작은 풀들은 꽃을 피우며 서로 사이좋게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었다.


열악하지만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그런데 섬에서 가까운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이 일어난 나라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섬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밤이 되면 너무 추워 사람들은 부둥켜 앉아 겨우 버틸 뿐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숲의 나무를 하나, 둘 베기 시작하면서 땔감으로 사용했다. 나무를 잘라 움막도 지었다.


나무에 붙어살던 식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나무와 같이 죽어갔다. 나무와 풀들이 점점 줄어들자 사람들은 나무와 식물이 없으면 이 섬에서 오래도록 숨어 살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무가 죽지 않을 만큼만 잘라 사용하는 법을 연구했다.

곶자왈은 태양의 빛도 가둘 만큼 깊은 숲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람들은 죽지 않을 만큼만 남겨놓고 계속해서 잘라 내며 작은 섬에 터전을 마련했다. 나무는  딱 죽지  못할  만큼만  남겨진  상태에서만  자라고 잘리고를  반복하며  두려움 속에 목숨을 겨우 연명해 갔다.


(종가시나무) “무서워. 매일매일 겁이 나고, 또 언제 잘려나갈까 두려워.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폭나무) “방법이 있었으면 우리가 가만히 있었겠어? 모두 불안한 건 마찬가지야.” 


(푸조나무) “왜? 그런데... 요정들은 아무것도 안해?”


(구실잣밤나무) “그러고 보니 요정들이 안보인 지 꽤 됐는데... 모두 다 어디로 간 거지?”


(센달나무) “더 이상 높이 자랄 이유가 없잖아. 자라면 또 잘려나갈 텐데... 언제까지 오늘, 내일 하면서 버티고 두려워만 할 거야.”


(아왜나무) “요정이 없으면 땅한테라도 얘기해 봐야지. 요정들은 자기들끼리 어디 놀러갔나 보지. 책임감도 없이...”


나무들의 푸념 섞인 핀잔이 계속되자 팽나무가 나무들을 대표하여 땅에게 말했다. 


(팽나무)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살아갈 이유가 없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게 도와줘.”


땅은 이 섬의 모든 역사를 기억한다. 또한 이런 식으로 자연이 망가져 가는 것을 그대로만 볼 수 없었다. 섬은 바람이 잠시  머무는 동안에  섬의 나무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도움을  청했다. 며칠 후 바람은 그동안 섬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씨앗을 가져와 상처가 많은 나무들 위에 뿌려주었다. 씨앗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나무에 꼭 붙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다양한 방향으로 서로서로 엇갈려 나무를 감아 올라갔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다 갈 길을 잃어 떨어진 가지들은 살길을 찾아 가장 가까운 다른 나무를  찾거나  자신이  붙어 있던  나무로  다시  돌아가려  힘썼다. 그렇게  나무에  서로 다른 형태로 엉겨 붙어 자란 식물들과  어느새 나무의 형태를 띤 덩굴가지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덤불이 되었고 몸속의 가시들을 밖으로 꺼내었다.

가시딸기, 으름덩굴, 산유자나무...가 서로 모여 새로운 터전을 만들었다. 가시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들은 접근하기를 꺼려했다.


(때죽나무) “가시! 제법 효과가 좋은데... 이러면 계속해서 더 가시를 만들어 내야지.” 


나무는 바람에게 더 많은 가시덤불 씨앗을 부탁했고 바람은 더 단단하고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덤불 씨앗을 가져다주었다. 가시덤불이 울창해지자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이제 안전한 터전이 만들어졌다.


뿔뿔이 흩어져 숨어있던 동박새, 팔색조, 알락할미새... 등 작은 새들과 황조롱이, 참매, 솔부엉이 등 가시덤불을 드나들 수 있는 제법 큰 새들로 뒤따라 왔다. 유혈목이, 비바리뱀, 무당  개구리  등 양서류와  파충류  그리고  등줄쥐, 집박쥐, 노루와  오소리, 족제비 등 다양한 동물들도 가시덤불 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새들이 가시 덤불속으로 이동할 때 너무 예쁘기에 사람들의 장식물로 사용되어 멸종 위기에 놓였던 대흥란, 차걸이란, 으름난초... 씨앗을 덤불 속으로 옮겨 주었다. 덤불 속에 있는 식물과 동물들은 활기차고 기분 좋은 나날을 보내며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덜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섬에 점점 가시덤불이 많아지자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덤불과 사람의 싸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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