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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와 껌 한통

by 데일리아트
사진은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지만 그것만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1435_3172_1949.png 이용순, 비 오는 날(2022)

우리나라에서 지하철이 시작된 것은 70년대이다. 서울의 이 획기적인 대중교통 수단도 운행한 지 반세기가 넘었다. 그리고 그것은 획기적인 것에서 이제는 평범함, 내지는 일반적인 대중교통으로 바뀌었다. 그렇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지하를 오가는, 관객 천만을 넘긴 영화 〈기생충〉의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나는 지하에서 다니는 사람 특유의 냄새'가 풍기는 대열에 속해버렸다.


지하철을 타는 것은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지만, 많은 사람과 만나고 그들의 삶을 엿보는 것이기도 하다. 얼마 전 어떤 나이든 여성이 가방을 임산부석에 놓고 옆자리에 앉아가고 있던 장면도 그렇다. 나이 지긋한 남자가 타더니 가방을 치워 달라'고 말했다. 여자는 '이 자리는 임산부석'이라고 하자 남자는 '가방이 임신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별로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언어 논쟁을 나는 비겁한 웃음으로 바라보았지만 그냥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늘도 나는 여전이 분당에서 서울로 향하는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을 반복해서 타다보면 낯익은 얼굴들이 있다. 지하철에서 불법 판매행위를 하는 사람들과 껌 몇 통을 들고 구걸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다. 오늘도 예외 없이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껌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모자를 눌러쓰고 모른 체하고 있을 때, 내 옆자리에 젊은 여성이 만원 한 장을 말아서 할머니의 손에 쥐어 주고는 껌 한통을 집어 든다. 할머니는 메고 있던 가방에서 껌 두통을 꺼내어 여성에게 전해 주고는 이내 사라졌다. 나는 이런 현상이 내 옆에서 벌어지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여 다시 내가 만원을 꺼내 그 여성에게 주고 껌 한통을 받아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소심한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마도 내 옆자리의 여성이 만원지폐를 작게 말아서 건넨 것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슬며시 전달하려는 배려였으리라.


문득 두 장면을 연결해 보았다. 임산부석에 가방을 올려둔 나이든 여성과 그 자리에 앉으려는 남자, 껌 한 통을 받고 굳이 만원을 집어주던 여자와 가방을 뒤적여 두 통을 더 챙겨주고 떠나는 할머니. 그리고 이들 네 명이 연출해낸 두 장면을 목격한 나.


나는 만원 지폐를 작아보이게 말아준 여인의 이미지가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나 스스로에게, 사진가인 나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사진은 저런 장면을 찍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진은 저런 사람들의 마음을 찍는 것이다. '사진은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지만 그것만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스스로에게 대답했다.


나는 미국의 경제대공황 시절의 사진가 도로시 랭(Dorothea Lange 1985-1965)의 작품들을 기억했다. 이주민 엄마와 딸, 빵을 받기위해 줄서는 사람들 등. 그 흑백사진에서 보이는 고단함을 넘어서는 따스함. 100년이 다 되어가는 그의 사진들을 볼때마다 반복되는 감동을 숨길 수가 없다. 슬픔으로 가득한 이미지 속에서 한올 한올 그려내는 작가의 사진. 눈물 가득한 현실 너머의 사람을 향한 애정을 그 사진가는 외면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 한 장면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며칠 전에 있었던 지하철의 다른 사건과 대비시켜서.


필자는 오늘의 기억을 마음속에 가지고 가려고 한다. 그 사람의 기억도, 그리고 부끄러운 나의 기억도. 그래서 훗날 내 이미지 속에 그것을 부활시키고 싶다. 이런 생각은 30여 년 전에도 들었다. 그때 나는 애리조나의 그랜드캐니언을 처음으로 여행하고 있었다. 그때 사진을 찍는 것이 의미 없음을 알았다. 그 기억을 훗날 다른 대상을 통해서 살리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한다. 결국에는 그런 기억과 사고가 모여 지금의 내가, 지금의 내 생각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그리고 사진이 표현의 영역이니까 이것이 결국은 옳은 것이었으리라는.


너무 흔하게 자신의 작품인데 타자의 영역에서 낯선 플레이를 하는 작품을 수시로 대한다. 그런 이유로 전시장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이 땅이 참 척박하기에. 오늘은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를 보고 왔다. 그 시절 존경했던 사진가 낸 골딘...


2024년 늦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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