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을 밤 2차 서울 야행, 정동에서
오늘은 《서울 야행》이 있는 날이다. 지난번 1차 서울 야행은 청계천이었고, 오늘 진행하는 2차 서울 야행은 정동이다. 데일리아트는 서울의 문화 예술 명소를 답사하는 서울 야행 행사를 지난달부터 진행했다. 회원이면 누구나 참석 가능한 무료 행사이다. 집결지 대한문 앞은 늘 붐비는 곳이다. 지하철 시청역 1번이나 2번 출구로 나오면 덕수궁(경운궁)으로 들어가는 대한문이 눈 앞이다. 워낙 널찍해서 약속 장소로 많이 알려져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래서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분 좋게 상기되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건네줄 꽃다발을 들고 있는 연인도 보이고, 어딘가를 가기 위해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시원한 초가을 저녁, 무더운 여름을 건강하게 보낸 사람들만이 누리는 호사이다. 그것도 오늘은 불금이 아닌가?
낮에는 수문장 교대식으로 외국인들이 붐빈다. '어, 이게 맞나?' 덕수궁(경운궁)은 대한제국의 법궁이기 때문에 사실 수문장 교대식을 한다면 신식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등장해야 한다. 칼이 아닌 소총을 들고 교대식을 해야 옳다는 지적이 전부터 있었는데 고쳐지질 않는다. 이곳은 대한제국이 설립될 때부터 늘 붐볐던 곳이다. 『독립신문』 주관의 '만민공동회'로 모여 나라의 나갈 방향을 논하기도 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의 갑작스런 승하로 많은 백성들이 몰려와 이곳에서 곡을 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공원으로 사용되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붉은 악마들이 모여 '대~한민국!'을 연호하더니, 지금은 이념성 강한 집회가 열리기도 한다. 오늘은 평온하다. 한여름을 달궜던 더위는 가셨다. 기후 위기로 지구가 몸살을 앓는다고 하지만 지금은 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좋은, 정말 일 년 중 몇 번 돌아오지 않는 좋은 날이다.
6시 조금 넘어 해설이 시작되었다.
오늘 모인 사람들은 총 열한 명이다. 지난번 1차 청계천 답사에도 열한 명이 왔는데, 2명 빼고는 다 다른 사람이다. 데일리아트의 독자층이 넓어졌다는 증거일까?
오늘의 해설자는 대한항공에서 35년을 근무하고 곧 퇴직하는 이종욱 연구원이다. 어찌 한 직장에서 35년을 근무했을까? 그는 홍보실에 근무하면서 회사에서 가까운 정동과 덕수궁의 역사를 파고 들었다. 유명한 미술사학자가 쓴 서울 답사기의 오류도 잡아내는 정동 전문가이다. 본업이 홍보맨인데 어떨 때는 출입 기자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며 정동을 순례한다. 평일에는 하루도 빠짐 없이 지인들에게 글을 남긴다. 데일리아트에도 '일상의 리흘라'라는 칼럼을 쓰는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많은 사진 자료를 태블릿에 담아 설명을 시작한다.
어떻게 매일 글을 쓰냐고 물어보면 '영업 비밀'이라고 가르쳐 주지 않는 '심보 나쁜 사람'이다. 그런데 더 대단한 것은 주말에는 하루도 빠짐 없이 달리기를 한다. 그것도 장장 10km이다. 건강도 잘 챙기는 참 '얄미운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은 그의 나이를 종잡을 수 없다. 정년 퇴직한다해서 나이가 세상에 공개됐다. 아직 20년은 더 해도 될텐데...
행사를 주관하는 나는 열심히 내가 모르는 회원이 혹 온 것이 아닌가 두리번거리고 일일이 서울 야행 행사에 왔느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드디어 이종욱 연구원의 소개가 끝나고 본격적인 해설이 시작되었다.
"저쪽에 보이는 환구단에서 고종이 즉위를 할 때는 대한문이 이곳이 아니라 시청 앞 잔디였어요. 1970년에는 대한문이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어요" 설명이 한참이다. 듣고 있던 사람들이 신기해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은 나이가 좀 된 부부도 참석했고 상지대 김선회 교수, 브릿지경제 전용배 국장, 본지 칼럼니스트들도 참석했다. 얼마 전에 그리스 여행을 다녀와 본지에 '한복 디자이너의 그리스 일주' 여행기를 쓰는 한복 디자이너 김영미 원장도 참석했다.
장소 이동. 영국대사관 앞에서. 옆을 보니 세실극장이다. 시끄러운 곳에서 이곳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참 호젓하다, 젊은 남녀가 오면 무조건 일이 잘 될 것 같은, 모든 조건이 완벽한 곳아다.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안쪽으로 들어가니 더 조용하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이다. "이 성당은 성공회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건물 위에서 바라보면 십자가 형태인데..." 설명이 이어진다. 그런데 참가들이 집중을 안 한다. 초저녁 가을 날씨가 환상적이고 성당 경관이 너무 좋은 탓이다. 화창한 날 공부하기 싫은 학생을 교실에 잡아놓은 격이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참가자,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이종욱 연구원.
이종욱 연구원이 해설을 하는데 사람들은 듣지 않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그래도 해설 준비한 사람은 줄줄줄. 며칠전 그리스를 다녀온 김영미 원장이 그리스보다 이곳 경치가 더 아름답단다.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행사를 주관하는 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단체 사진 한 장 찍자고. 남는거는 사진 한 장 인데, 그런데 사진이 실물보다 더 잘 나왔다.
11명 참석. 저는 사진 찍느라 없어요.
'고종의 길'에 들어서서 나무로 이어진 데크를 따라가니 덕수궁 관내에 진입한다. 덕수궁은 연중 야간 관람을 시민에게 제공한다. 5대 궁궐 중 야간 관람을 계속하는 곳은 덕수궁뿐이다. 영국대사관에서 길을 개방하지 않아 '고종의 길'은 덕수궁을 통과한다. 덕수궁 경내에 생긴 나무 데크 길을 가야 한다. 덕수궁 입장료가 천 원인데 이 데크를 넘어가면 천원을 번다고 어느 참가자 농 섞인 얘기를 하는데 덕수궁 경내에 직원이 째려본다. 어림도 없는 소리라는 듯이.
밤이 어스름하게 찾아 온다. 돌담길에 설치된 조명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제 호젓한 덕수궁 돌담길로 들어섰다. 미국대사관저가 있는 길이다. 오늘 어느 참가자는 생전 처음 이곳에 왔단다. 그래서 어디 사느냐고 물으니 분당이란다.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데.
오늘 오려다가 여러가지 이유로 오지 못한 사람들이 이 길을 보면 얼마나 후회할까. 참 아쉽게 느껴졌다. 사실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걷고 싶은 길로 정평이 난 곳이다. 1920년대 초반까지 덕수궁 부속 건물인 선원전이 있었다. 선원전은 역대 왕들의 어진을 보관하고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지금 선원전 복원 계획이 잡혀 있다. 옛 경기여고 자리이다. 선원전을 들어오는 문을 영성문이라 했다. 그래서 이곳은 '영성문 고개'라고 했는데 속칭 '사랑의 언덕길'이라 불려 왔다. 소설가 정비석이 1954년에 쓴 소설 『자유부인』에도 소개된 길이다. 1921년부터 조성된 이 길은 드높은 돌담과 울창한 나무들로 서울에서 많은 연인들이 찾았던 곳이다. '하비브 하우스'라고 부르는 미 대사관 밖으로 나무가 우거졌고 덕수궁에서 넘어온 나무들이 무성해서 참 호젓한 길이다. 사랑의 밀어를 나누려는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종욱 연구원은 시청역에서 정동교회로 올라가는 돌담길을 걸으면 사랑하는 남녀가 헤어진다는 유래를 설명했다. 시립미술관 자리에는 이혼하려는 부부들이 찾는 가정법원이 있기도 했다. 둘이 왔다가 이혼 도장 찍고 각자 헤어져 가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배재와 이화의 남녀 학생들이 가방을 메고 같이 돌담길을 걸어 등교하다가, 정동교회 앞에서 각기 자기 학교로 갈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신아일보 자리 건물 1층 식당의 라이브 공연
정동교회에서 구 러시아공사관 쪽으로 가는데 신아일보 건물 식당에서 라이브 공연이 한창이다. 아 ! 낮에는 이런 광경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정동은 밤에 와야 하나 보다.
준명전 앞에서. 밤이 무르익어 간다.
을사늑약의 현장인 준명전에 오니 이제 캄캄한 밤이다. 닫힌 문 앞에서 을사늑약의 부당성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한다. 이제는 참가자들이 조용히 경청한다. 너무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1904년 덕수궁에 큰 불이 나서 왕실을 준명전으로 옮겼다. 이토 히로부미의 겁박에 의해 이루어진 을사늑약의 현장은 준명전 1층 왼쪽 방이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헤이그 밀사를 보냈다는데 누가 보냈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야기를 듣고 정동길을 나와 경향신문 우측 위로 올라서니 '구 러시아 공사관'이 나온다. 아관파천으로 고종과 순종은 1896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그것을 주도한 사람이 엄비라 불리던 순헌황귀비이다. 역사의 현장은 긴 종탑 부분만 남기고 6·25 전쟁 때 사라졌다. 숨가빴을 역사의 현장인데 초가을의 저녁 바람은 너무도 한가롭게 시원하다. 넓은 광장에 비추는 야간 조명이 낭만의 밤을 선사한다. 눈까지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종욱 연구원은 아관파천 당시의 상황을 실감 나게 설명한다. 사진 속 엄비는 그리 예쁜 용모는 아닌데 그의 결단력을 고종이 높이 산 것일까. 엄비는 경비의 눈을 따돌리기 위해 한 달 동안 경복궁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행하(왕이 내리는 돈)를 주면서 빈 가마로 들락거리다가 당일에 고종과 순종을 태우고 궁궐을 유유히 빠져 나와 이곳에 왔단다. 이곳에서 엄비는 영친왕을 가졌다. 1년 후 대한제국의 법궁인 덕수궁으로 옮기고 영친왕을 낳았다. 그래서 영친왕은 대한제국이 출범한 1897년 생이다. 아관파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고종과 엄비. 험한 시절, 가난한 날의 행복일까?
구 러시아공사관에서 설명을 듣는 참가자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니 초가을밤 완전 호강하는 느낌이다. 배재학당에 들러 개화기 학생들 이야기와 이 학교 출신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시인 김소월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어느덧 한 시간 반이나 흘렀다. 배에서는 연신 꼬르륵 소리. 배재학당에 들렀으니 저녁은 배재반점으로 가자. 몇 가지 요리와 짜장면, 볶음밥 등을 취향대로 시켰다. 오늘 수고한 이종욱 연구원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며 준비한 케이크를 내왔다. " 은퇴 축하합니다. 은퇴 축하 합니다." 그는 9월 30일 마지막 출근을 한다. 오늘 해설을 맡아 수고한 이종욱 연구원의 퇴임과 제2의 인생 출발을 진정으로 축하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앞으로의 인생 스케줄을 조금 쉬면서 잡겠다고 한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앞날을 걱정하지 마세요. '누구를 위해서 종은 울리나? 종은 그대를 위해서 울린답니다.'
배재반점에서 뒤풀이.
35년의 직장생활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