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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Oct 07. 2024

어둠과 빛, 그리고 조화 - 부산비엔날레의 메시지





명지대학교(총장 유병진) 문화유산연구소에서 주최한 《2024 부산비엔날레》 탐방에 명지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참여했다. 부산비엔날레는 1981년 ‘부산청년비엔날레’로 시작해 ‘바다미술제’와 ‘부산야외조각대전’이 추가되며 성장했다. 1998년과 2000년에는 ‘부산국제아트페스티발(PICAF)’로 전시가 열렸고, 이후 ‘부산비엔날레’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2024 부산비엔날레》는 "어둠에서 보기(Seeing in the Dark)"라는 주제로 8월 17일부터 10월 26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부산현대미술관, 부산근현대역사관, 한성1918, 초량재 등 여러 장소에서 펼쳐진다.

그런데 잠깐, '어둠에서 본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그냥 전등 끄고 그림을 보자는 건 아닐 텐데. 바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자는 얘기다. 익숙하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를 상상해 보라는 말이다. 어둠 속에서 당당히 길을 찾는 법, 그게 바로 이번 비엔날레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피하지 말고, 어둠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자! 이러한 점에서 젊은 대학생들에게 가장 적합한 비엔날레를 찾아온 것이다.


이번 전시의 상징은 ‘의지의 수레바퀴’다. 이는 해적선의 타륜과 불교의 팔정도를 결합한 상징을 표현한 것이다. 언뜻 보면 해적과 불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 두 상징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매우 흥미롭다.

해적 유토피아는 정부나 자본의 영향이 없는 자유로운 공동체를 말한다. 다들 평등하게 협의하고 결정하는 사회.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이 해적 사회가 유럽 계몽주의의 긍정적 측면을 대표한다고까지 말했을 정도다. 불교의 도량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낮추고 함께 규칙을 만들어가는 곳인데, 해적 유토피아와 마찬가지로 억압적 시스템을 벗어나려는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어둠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깨워 보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프레드 모튼(Fred Moten)과 스테파노 하니(Stefano Harney)가 말한 ‘도망자 계몽주의’라는 개념을 빌려와, 감시 사회 속에서도 자유를 찾아가는 예술적 실천을 제안한다. 어둠 속에 숨겨진 길을 발견하는 이 느낌은 충분히 경험해 볼 만하다. 해적 유토피아와 불교 도량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현대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길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열쇠다.

“어둠 속에서 도망치지 말고,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라!” 그 길을 해적과 불교가 알려줄 테니 한번 따라가 보자.


부산현대미술관 전경
《2024 부산비엔날레》의 메인 전시장인 부산현대미술관은 지하와 지상 1, 2층의 전시관에 대형 작품들과 관객 참여형 작품들을 전시 중이다.



정유진, 망망대해로, 2024.
1층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정유진 작가의 설치 작품, <망망대해로>(2024)는 난파된 해적선을 비유하여 현대의 불안정한 현실을 상징한다. 17세기 해적 프랑수아 롤로네(François l'Olonnais)는 폭풍우에 난파한 후, 배의 잔해로 보트를 만들어 항해를 계속할지, 아니면 남을지를 부하들과 민주적으로 결정했다. 해적선은 과거에 억압받던 이들에게 해방의 공간이었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그마저도 난파시킨 것 같다. <망망대해로>에서 파괴된 벽과 흔적은 새로운 항해를 위한 보트로 변모하고, 흔들리는 바닥은 끝없는 파도처럼 현실을 요동치게 하며, 상상의 항해를 자극한다.


송천,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2024.
<망망대해로> 옆에 전시된 송천 스님의 작품 <관음과 마리아 - 진리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2024)는 관세음보살과 성모 마리아를 '진리'로 해석한 작품이다. 송천 스님은 진리를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며 어둠에서 밝은 곳으로 인도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촛불 또는 물방울을 연상시키는 ‘주형광배’는 생명, 지혜, 사랑, 평화 등의 가치를 상징하며, 관세음보살의 화려함과 성모 마리아의 간결함이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통해 경외심을 드러낸다. 교리와 사상은 다르지만, 고귀한 삶을 향한 목표는 같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타링 파디, 메메디 사와/허수아비, 2024.
인도네시아 작가 타링 파디의 작품 <메메디 사와/허수아비>(2024)는 정부의 농산물 가격 정책에 대한 항의를 담은 대형 그림과 농민을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카셀 도큐멘타에서도 전시된 바 있어, 전 세계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품으로 주목받는다.



응우옌 프엉린·트엉 꾸에치, 출처 없는 물: 채찍&칼, 2024.
작품을 둘러보던 중 부산비엔날레 스태프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을 물어보니, 많은 이들이 2층에 전시된 <출처 없는 물: 채찍&칼>(2024)을 추천했다. 이 설치 작품은 응우옌 프엉린과 트엉 꾸에치 두 작가의 협업 작품으로, 기계 팔이 천천히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공간의 빛이 달라지며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부드럽게 날아오르는 채찍과 날카롭게 떨어지는 칼은 폭력과 회복, 충돌과 순환이라는 주제를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관객들은 이 반복적인 움직임 속에서 작품의 움직임을 흥미롭게 경험할 수 있으니, 이 작품을 놓치지 말고 꼭 감상해 보길 바란다.

부산근현대역사관 전경.
또 다른 전시장, 부산근현대역사관 내 ‘금고미술관’은 과거 한국은행 부산 본부의 금고를 개조해 만든 독특한 전시 공간이다. 이 미술관은 옛 건물의 특유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공간적 경험을 제공한다.


금고미술관 내 금고

금고미술관 내 금고
특히 '금고'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미적 체험은 다른 미술관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독특한 요소다.

지시 한(Zishi Han), 허물, 2024.
‘금고미술관’은 비엔날레의 주제인 ‘어둠에서 보기’에 맞춰, 어둠 속에서 작품을 감상하도록 설치했다. 어둠이라는 환경은 관람객이 작품을 더 깊이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구헌주, 무궁화해적단, 2024.

구헌주, 무궁화해적단, 2024.


전시장 복도에 해적을 패러디한 구헌주의 <무궁화해적단>(2024)이 가장 인기가 있다. 민주주의는 역사 속의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해적들의 얼굴이 익숙하다. 이들은 진짜 해적이었을까?

익숙한 해적들과 함께  ‘금고미술관’의 독특한 점은 지역의 노인들이 전시 안내를 맡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민들이 비엔날레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일상과 예술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안내하는 노년 세대와 관람하는 젊은 세대 간의 대화를 통해 '조화'라는 전시 주제가 작품과 공간 속에서 구현된다.

6·25 당시 부산 피난민, 출처: 우리문화신문
부산은 6·25 당시 피난민과 토착민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의 활력을 유지한 도시다. 이러한 부산의 역사적 배경은 비엔날레의 주제인 ‘자유로운 공동체’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전쟁 속에서도 활력을 잃지 않았던 부산의 역사는, 이번 비엔날레가 어둠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주제와 잘 맞아떨어진다.

관객들은 비엔날레 전시장을 돌며 서로 다른 이념적 배경을 지닌 해적선과 불교 도량이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작품 속에서 발견한다. 이러한 '비판적 축제'의 경험을 통해 젊은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깊은 이해를 얻고, 다양한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가능성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하루 동안 해적이 되어 어둠 속에서 빛을 찾던 흥미로운 경험을 뒤로한 채 서울행 KTX에 오른다. 독자들도 한 번쯤 해적의 꿈을 꾸어 보시기를 바란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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