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테크 가면 쓴 폰지 사기 ②]
갤러리K는 투자자들에게 미술품 임대 사업을 통해 연 7~9%의 수익을 약속하며, 원금 보장을 내세워 투자금을 유치해 왔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계약 이행이 중단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폰지 사기(Ponz詐欺, 실제 이윤 창출 없이 나중에 들어온 투자자의 돈을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으로 나누어 주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 사기) 의혹이 제기되었고, 피해액은 약 1,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지훈 법무법인 심앤이 변호사에 따르면, 현재 갤러리K를 상대로 고소를 의뢰한 피해자만 100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본지는 이 사건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심층 취재에 나섰다. 우리가 이 문제에 발벗고 나서는 이유는 미술품을 통한 투자 사기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미술품이 제 3의 투자처가 되면서 발생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로 인해 더 이상 투자자와 작가들이 손해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편집자 주)
지난 5월 J씨는 10년 동안 알고 지내던 보험설계사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미술품에 투자하면 투자 원금을 보장받는 건 물론, 연 8% 수준의 수수료를 매달 지급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트딜러가 된 해당 보험설계사에 대한 오랜 신뢰가 있었기에 J씨는 의심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특히 '호당 가격을 보장받은 한국미술협회 소속의 유명 작가'라는 설명이 신뢰를 더욱 확고히 했다. 결국 J씨는 1억 원을 투자했지만 몇 달 후 뉴스에서 해당 업체의 대표가 해외로 도피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이후 해당 보험설계사와의 연락도 끊기게 됐다. 폰지 사기 의혹을 받고 있는 갤러리K 사태 피해자 J씨의 이야기다.
갤러리K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제휴 작가를 모집해 다수의 작품을 공급받았지만, 일부 작가들에게 수수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논란을 일으켰다. K미술연대에 따르면, 갤러리K로 인해 작가들이 입은 피해액은 자체 추산 약 300억 원에 이른다. 제때 그림 값을 받지 못하여 생활고에 허덕이는 작가들도 많다. 어려운 화가들의 상황을 악용하여 작가와 투자자에게 손해를 입힌 것이다. 일각에서는 갤러리K가 중개한 미술품의 가격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대학생 공모전 사이트에 게시된 '갤러리K 제휴작가 선정 공모전' 포스터
미술업계 관계자들은 미술품 시장에서 특정 작품의 가격이 형성되기 전, 투자자들이 작품의 실제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갤러리K가 악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작품의 판매 가격을 실제 가치보다 과도하게 높게 책정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술품 시장에서는 최근 3년 이내 혹은 최근 3~6개월 내의 낙찰 내역을 참고해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갤러리K는 투자자들에게 유리한 조건만을 강조하며 투자를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본지 취재 결과 2023년 1월부터 2024년 8월 20일까지 갤러리K로부터 수수료를 지급받은 작가는 총 232명이었으며, 지급된 수수료 총액은 세금 공제 기준 약 191억 원이었다. 이 중 1억 원 이상의 수수료를 받은 작가는 48명, 5천만 원 이상 1억 원 미만을 받은 작가는 32명, 1천만 원 이상 5천만 원 미만을 받은 작가는 71명, 그리고 1천만 원 미만의 수수료를 받은 작가는 81명이었다. 갤러리K는 수수료를 3년에 걸쳐 25%에서 30% 수준으로 나누어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갤러리K와 제휴한 작가들 중 가장 많은 수수료를 받은 작가는 약 9억 8천만 원을 지급받았고, 이를 기준으로 하면 약 32억 3천만 원에서 39억 2천만 원의 거래액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최저 수수료를 받은 작가는 13만 원에 불과했고, 100만 원 미만의 수수료를 받은 작가도 15명에 이르렀다.
갤러리K는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와 협약을 맺고, 한국미술협회에서 발행하는 '호당 가격 증명서'를 일부 제휴 작가들에게 발급받아 투자자들에게 홍보했다. 또한 한국미술협회 소속이 아닌 작가의 경우에는 한국미술렌탈협회에서 인증한 호당 가격으로 작품 가치를 책정했다고 홍보했다. 한국미술렌탈협회는 갤러리K 본사와 같은 건물에 위치하고 있으며 김정필 의장이 이사장으로 있던 곳이다.
2021년 6월 22일 갤러리K와 (사)한국미술협회는 한국 미술시장의 발전을 위한 업무 협약(MOU)을 체결했다.
한편 서울옥션이나 케이옥션 등 주요 미술 경매에서 거래된 작품 정보를 제공하는 K-Artprice 플랫폼을 통해 갤러리K와 제휴한 232명의 작가들의 지난 거래 내역을 조사했지만, 해당 작가들의 거래 내역은 확인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업계 관계자는 "3년 전 갤러리K로부터 작가 제휴 문의를 받았으나, 수익 분배 방식과 구조가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해 거절했다"며 "제휴한 작가들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작품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작가들의 상황을 악용한 것이다.
이번 갤러리K 사태는 투자자들을 현혹시키는 허위 광고와 불투명한 수익 구조 등이 결합된 사건으로, 미술 투자 시장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줬다. 이번 일을 계기로 관련 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함께 미술 투자 시장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