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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소설가, 한강

by 데일리아트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소설가,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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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 시각)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을 최종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노벨 위원회 위원장은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작품에서 인간 삶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한편으로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3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4편과 다음 해 서울 신문 신춘 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검은 사슴』,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희랍어 시간』 과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한강은 국내 굴지의 문학상인 이상 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김유정 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2016년에는 『채식주의자』로 세계 최고의 문학상으로 알려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수상하기도 했다. 2023년에는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외국 문학상을 받았다.

정홍수 문학 평론가는 과거 인터뷰에서 한강의 작품이 해외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를 설명하며 “해외에서는 한국 문학을 대체로 분단과 사회문제 등 무거운 주제를 정통 리얼리즘을 통해 풀어낸 문학으로 생각해 왔는데 한강은 섬세한 환상성을 절묘하게 표현한 작품을 써내기 때문에” 해외의 평자들이 주목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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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의 표지.
한강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는 중심 인물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선언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녀의 남편은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처럼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중략) 내 기대에 걸맞게 그녀는 평범한 아내의 역할을 무리 없이 해냈다”라고 말한다. 그가 영혜에게 기대했던 것은 ‘평범한 아내’의 역할이었다. 실제로 영혜는 결혼 생활 5년 동안 그가 바라는 대로 살았다.

그런데 영혜는 ‘고기를 먹는 꿈’을 꾸고 나서 돌연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그녀는 곧바로 냉장고의 모든 고기를 쓰레기통에 넣어버린다.

“하지만 난 무서웠어. 아직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아무도 날 보지 못한 사이 나무 뒤에 웅크려 숨었어.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 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코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 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채식주의자』 中)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는 더 이상 ‘평범한 아내’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그녀는 하루 하루 말라갔으며 남편과의 성관계를 거부했고, 건강을 걱정한 가족들이 육식을 권유하자 “칼을 치켜들고” 자해를 하기까지 한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진 영혜는 남편이 잠든 사이 병원 벤치에 앉아 환자복 상의를 벗어 두고, ‘작은 동박새 한 마리’를 이빨로 물어 뜯어 죽인다.

영혜의 ‘채식주의’ 선언은 표면적으로는 ‘육식’을 겨냥하고 있지만 심층적으로는 ‘세계의 모든 폭력’에 대한 적극적 저항의 일환이다. 소설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폭력은 ‘가부장적 사회’의 억압이요, ‘여성’이기에 겪어야 하는 세계의 불합리함이다. 영혜의 남편이 꿈꿔왔던 ‘평범한 아내’는 가부장 사회에서 주체성을 억압 당한 여성의 모습에 불과했다. 이런 억압 아래서 그녀의 자아는 점점 말라가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래서 그녀의 “결혼한 뒤 아내는 집에서 아예 브래지어를 벗고 지냈다”와 같은 행동은 ‘여성성’만을 강조하며 주체적 삶을 빼앗는 세계에 행해지는 저항의 기점이었다.

그녀는 이제 ‘채식주의 선언’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저항한다. 이 선언은 그녀의 남편이 꿈꿔왔던 ‘평범한 아내’를 배반하면서 이미 완결된 것으로 보이는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아이러니하지만, 영혜를 ‘말라가게 했던’ 채식주의 선언이 결국 그녀의 억압된 자아를 구출해 내어 생명을 불어넣게 했다.

한강이 『채식주의자』를 통해 보여줬던 폭력에 대한 '길고 느린 시선'은 다른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제주 4·3 사건을 겪은 이들에게 행해진 폭력을, 『소년이 온다』에서는 광주 항쟁을 겪은 이들에게 행해진 폭력을, 「몽고반점」에서는 전통적 가치관의 억압에 놓인 자매에게 행해진 폭력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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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홈페이지 캡처
스웨덴 한림원은 이번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를 말하며 그녀의 소설은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각 작품에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다”라고 평가했다. '보이지 않는 규칙'이란 한 개인에게 무심코 행해지는 사회의 관습화된 폭력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인간 삶의 연약함'은 그런 관습화된 폭력의 견고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저항하는 인간의 숭고함일 것이다. 한강의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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