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올미아트스페이스,
'도화서 터' 갤러리 올미아트스페이스에서 마련
이순구 작가의 아트 토크 이후' DGA디아 글로벌학교' 학생들과 함께 한 이순구 작가
23일 오후 2시 인사동 갤러리 올미아트스페이스에 어린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DGA디아글로벌학교 학생들이다. 학생들과 함께 온 교장 선생님과 미술 교사, 그리고 일반 관람객들까지 30여 개의 의자가 갤러리에 빼곡하게 찼다. 갤러리 벽면에는 이순구 작가의 작품 '웃는 사람'의 그림이 걸려 있다. 웃는 사람들이 전시된 갤러리에 학생들의 웃음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림과 사람이 '웃음'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소통하듯이.
이순구 작가와 함께하는 아트 토크는 쉽고 유쾌하게 진행됐다. 그림에서 뿜어 오는 긍정 에너지와 밝음. 그림이 쉽기도 하고 보면 볼수록 재미있다. 그는 왜 이런 웃는 그림만 그리는 걸까? 그에게 궁금한 점이 참 많다.
아트 토크 후에는 관람객들과 재미있는 질문과 답변의 시간이 주어졌고 한 시간 정도의 아트토크는 끝을 맺었다. 갤러리 올미아트스페이스의 황순미 대표는 "작품만으로 관람자에게 다가서는 것이 한계가 있어서 아트 토크를 마련했다"고 한다. 앞으로 갤러리 올미아트스페이스는 작가와의 대담 프로그램을 자주 만들어 소통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다음은 사회를 맡은 올미아트스페이스의 김효정 큐레이터가 진행한 아트 토크 중 일부이다.
이순구, '웃음꽃 가족', 2024, 캔버스에 유채, 90.9*72.7cm
이순구, '웃음꽃-찬란', 2024, 캔버스에 유채, 90.9*72.7cm
- 선생님 반갑습니다. 왜 선생님은 사람의 웃는 모습만 그리시는지요?
전에는 일반 회화 작품을 많이 그렸습니다. 화가로 활동하면서 정말 변하지 않는 소재가 무엇일까? 세월이 흘러도 남녀노소가 다 좋아하는 소재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아빠, 엄마의 그림을 종이에 그린 것을 우연히 보았어요. 그런데 이 녀석이 아빠 엄마의 눈과 얼굴밖에 없는 그림을 그리더군요. 그런데 그 낙서와 같은 그림이 너무 좋았습니다. 순간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의 그림에 착안하여 입을 그리고 웃는 모습을 그렸더니, 이것이 내가 찾던 변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되더군요. 아무리 세상이 고달파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 웃는 모습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요?
아트 토크 전경
- 그렇군요. 왜 선생님이 그리는 인물의 그림에는 코가 없나요?
이런 질문은 주로 어른이 하지 않아요.(웃음) 어린이들이 이런 질문을 자주 하는데요. 그림에는 코가 없어도 자세히 보면 사람의 얼굴이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어릴 적에 나라 전체 캠페인으로 '스마일 운동'을 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 굳어서 '스마일 뱃지'라도 달고 다니며 서로 좀 웃자는 운동이었습니다. 그 뱃지에도 코가 없어요. 웃음을 극대화 시킨 도안인데 나는 단순한 이미지와 사실적인 이미지의 중간 정도의 스타일 그림입니다.
사실 사람이 웃는데 코는 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머리카락도 그리지 않았어요. 사람의 웃는 모습을 극대화하다 보니 얼굴에 주로 입을 크게 그렸습니다. 자연스럽게 코는 생략되었습니다. 저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그림을 보며 자기화를 합니다. 어떤 할머니가 내 그림을 보더니 자신의 손주와 닮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더 닮게 그리기 위해 머리카락을 넣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왔습니다. 코를 생략하니 화면이 비어서 그 자리에 나비와 꽃, 열매를 그리기도하고. 지금은 그것도 많이 생략합니다.
- 그림을 그리다가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은데요. 소개 좀 해 주시죠.
학교를 졸업하고 1990년 개인전을 했습니다.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학교 한쪽 편을 빌려서 전시를 했어요. 종이 살 돈이 없어서 합판에 그림도 그리고 해서 어렵게 전시를 열었어요. 그런데 교수님이 양주를 들고 왔습니다. 축하의 꽃다발이 아니라 축하주를 나누자는 의미지요. 전시장 문을 닫고 술을 먹고 놀았습니다. 아마도 내 안에 그런 낭만이 숨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어떤 학생이 내 그림을 보고 싶어하더군요. 나중에 그 학생 소식을 들으니 큰 병에 걸린 학생이었습니다. 학생은 얼마 못살고 세상을 떴는데, 유족들이 와서 아들이 좋아했던 그림이라고 한 점 사갔습니다. 참 가슴 아픈 기억이기도 하면서 나의 그림이 그 학생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많이 아프셨는데 내가 해 드릴 것이 없어서 웃는 모습이 담긴 엽서를 그려 드렸더니 웃으면서 갈 때마다 그림을 칭찬해 주더군요. 저에게 격려가 많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그림을 보고 암투병 환자들이 기운을 얻고 가기도 해요. 그림 엽서를 머리맡에 두고 부적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웃음이 주는 긍정 에너지를 받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보람을 느낍니다.
이순구 작가
- 선생님의 그림은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웃는 그림을 그릴 것인가요?
더 깊이 있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요. 대학에서 만화 전공자들에게 15년을 강의했습니다. 나는 서양화 전공자인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만화과 학생들에게는 만화를 회화처럼 그려보라고 하고, 회화과 학생들 지도할 때는 만화의 절제된 것을 배워 그리라고 말합니다. 만화에서 짧은 몇 줄의 그림을 '카툰'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웃음도 자아내게 하고 비판적인 기능도 합니다. 내 그림도 앞으로 깊이 연구해서 웃음뿐 아니라 더 깊은 인간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어요.
- 그림에 원색을 많이 쓰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림에서 색채는 인물과 배경을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웃을 때 사람의 입 속 모습은 사실 검은 색입니다. 그래서 입 안을 검게 그리니 너무 무섭게 되더군요. 그래서 밝게 그리다 보니 원색을 많이 사용합니다. 만화는 냉장고 안에 코끼리를 넣을 수 있을 만큼 상상력이 전제되는 예술입니다. 나도 상상력이 많은 작가가 되고 싶어요. 20세기 초반 변기를 갖다 놓고 예술이라고 한 시기도 있었어요. 80년대는 설치 미술이 굉장히 각광을 받기도 했고요. 그런것들이 미술사의 흐름을 한 번씩 바꿔 놓기도했지요.
웃음을 천박하게 대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중세까지 유럽에서는 웃지 못하게 할 정도였지요. 유머를 사회악이라고까지 했습니다.역사의 변천이란 것이 굉장히 복잡합니다. 그러나 웃음은 현대 사회의 한 코드입니다. 저는 영원할 수 있는 주제는 '순수한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