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일리아트 Jul 19. 2024

전북 여행지 추천② - 이곳에 가면 신선이 된다.

새로운 만남 새만금- 고군산군도 여행


모든것이 눈부셔  찬란한 봄 !  하루하루 만물의 변화가 우리를 손짓 한다. 어디를 가볼까? 막상 떠나려 하니  어디를 가야할지 망설여 진다. 전라북도에서 저평가된 지역의 역사와 문화, 관광의 컨텐츠를 개발하고 있는 손안나 역사 문화 해설사가 독자들에게 전북의 명소를 소개한다. 말로만 듣던 새만금, 해설사만이 아는 새만금의  가볼 만한 곳을  알아보자. -편집자 주


[새로운 만남 새만금- 고군산군도 여행]


새만금 지역인 군산, 김제, 부안은 유서 깊은 역사와 특별한 해양문화 그리고 자연이 아름다운 지역입니다. 새만금 인근 3개 지역의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자원을 소개하는 작업을 '새로운 만남 새만금'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만남 새만금' 프로젝트 두 번째 이야기는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의 중심섬 선유도(仙遊島)입니다.


선유도(仙遊島)는 신선이 놀러 올 만큼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여 피서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던 곳입니다.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 군산에서 배를 타고 3시간 넘게 배 멀미에 시달리며 놀러갔던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합니다. 해수욕장의 즐거운 추억보다는 배 멀미의 추억만 남아 있는데요. 새만금 방조제 덕분에 선유도는 접근성이 좋아져 바다가 그리울 땐 훌쩍 다녀오기 좋은 곳이 되었습니다.

송나라 사신 서긍 일행의 여정

선유도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 그리고 일본열도를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이 송나라 사신 서긍이 1123년에 남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입니다. 선화봉사고려도경은 서긍이 고려에 사신으로 와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선화봉사고려도경 덕분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12세기를 살았던 고려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서긍이 남긴 고려도경에는 송나라의 수도인 변경(개봉)을 떠나 고려의 수도인 개경에 도착할 때까지의 여정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삼국사기’를 편찬한 고려의 문신 김부식이 주관해 군산도(지금의 선유도)의 숭산행궁에서 국가 차원의 대규모 영접행사를 치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궁은 왕이 궁궐이 아닌 곳에서 지내기 위한 건물로 현재까지는 정조 때 건설된 화성이 유일했는데요. 선유도에 고려시대 행궁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2013년부터 숭산행궁으로 추정되는 곳을 집중 시굴 조사한 결과 건물의 기단석과 적심시설, 담장시설 등을 확인했고, 고려시대 최고의 기술로 제작된 청자양각도철문원형향로(靑磁陽刻??文圓形香爐)와 청자상감국화문합(靑磁象嵌菊花紋盒)의 조각 등을 수거했다고 해요. 이는 고려시대 선유도에는 송나라의 사신단을 영접할 수 있는 규모의 시설과 인력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선유도 초분공원사진 출처: 향토문화전자대전

선유도에는 초분공원이 있습니다. 초분이란 섬이나 해안지방에서 내려오는 전통의 장례풍속으로 섬 주민 중에 상이 낫을 경우 바로 매장하지 않고 관을 2, 3년간 돌축대나 평상에 올려 놓고 이엉으로 덮어 두었다가 육탈이 된 후에 뼈만 추려서 매장하는 이중장례를 말합니다. 고구려에서는 "집안 내에 죽은 자를 빈(殯,장사 지내기 전에 시신을 관에 넣어 일정한 장소에 안치하는 행위 )하고 3년이 지나면 길일을 택하여 장례를 치른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고, 백제의 무령왕은 죽은 지 2년이 지난 후에 왕릉에 묻었다고 해요. 또한 지석묘나 백제 초기의 옹관묘 등도 그 구조 상 뼈만을 묻은 복장제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우리의 전통 장례는 복장제였을 가능성이 높은데요. 고유의 이중장례가 다양한 외래 장례 방식이 도입되면서 육지에서는 사라졌는데 지역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서남해의 해안이나 도서 지역에서는 오늘날까지 전승되었습니다. 특히 전라도 지역의 초분은 씻김굿과 연결되어 있어서 학술적으로도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어쩌면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 장례법을 선유도에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선유도를 찾는다면 꼭 한 번 찾아봐야 할 장소입니다.

선유도의 랜드마크 망주봉(望主蜂)


망주봉(望主峰) 기슭에 있는 안전과 풍어를 빌던 신당 오룡묘

선유도의 랜드마크인 망주봉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옛날 옛날 오랜 옛날, 간신들의 모함으로 선유도에 귀양 온 한 신하가 있었습니다. 이 신하는 귀양을 떠나던 날 다시 불러 주겠다고 한 임금님의 약속을 믿고 매일 바위산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하였다고 해요. 하지만 임금님은 끝내 신하를 다시 부르지 않았는데요. 신하의 임금님을 향한 그리움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그가 늘 오르던 봉우리에 망주봉(望主蜂)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망주봉의 하일라이트는 한여름 장마철에 망주봉에서 떨어지는 폭포인데요. 사람들은 이 망주폭포를 임금님을 그리워 하는 신하의 눈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망주봉 기슭에는 선유도 연안을 항해하던 뱃사람들은 해로의 안전을 기원하고, 어로 생활을 하던 도서민들은 풍어를 빌었던 오룡묘가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강진에서 청기와를 싣고 개경으로 가던 배가 선유도 근해에서 심한 풍랑을 만나 오룡묘 앞바다에 정박하였는데요. 꿈에 오룡묘의 용신이 나타나 청기와 다섯 장을 오룡묘 지붕 위에 올려놓으면 풍랑이 가라앉을 것이라고 했답니다. 이에 선원들은 용신의 말대로 오룡묘 지붕에 청기와 다섯 장을 올렸는데요. 용신의 말처럼 풍랑이 멎어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입니다.

이때 지붕에 올렸던 청기와는 8ㆍ15광복 이후에 도난당해 지금은 없다고 해요. 과거에는 매년 당산제(堂山祭)와 3년마다 별신제(別神祭)를 지냈으나, 지금은 모두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오룡묘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오룡묘는 고려시대부터 영험한 기도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손 모양의 소원등대


선유도 팬션 & 카페 '선유도에 물들다' 입간판

과거 뱃사람들이 안전과 풍어를 오룡묘에서 빌었다면 요즘 사람들은 기도하는 손 모양을 하고 있는 소원등대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선유 3구 유람선 선착장 끝부분에 있는 소원등대는 강렬한 붉은 색과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양으로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이며 인생샷 명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5월 연휴에는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선유도에 물들어 바다 한 잔 하시라 권해드립니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7

작가의 이전글 제주 현지인들이 꼬불쳐 둔 찐 맛집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