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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밖으로 나온 악녀들 16]

by 데일리아트

나쁜 그녀들 세상을 매혹하다


검사는 또한 산드라가 얼마나 부도덕하고 불성실한 부인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법정에서 산드라가 양성애자라는 사실이 ‘아웃팅’됩니다. 결혼 생활 중 벌어졌던 세 번의 외도 중 두 번은 남편에게 고백했지만, 다른 한 번의 외도는 남편에게 들킵니다. 외도의 상대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인터뷰어였던 조에를 산드라가 유혹했다는 의심으로 이끕니다. 사전에 양해를 받고 녹음한 조에와의 인터뷰 내용은 법정에서 산드라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게다가 산드라가 숨기고 있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사뮈엘이 죽기 전날, 그들은 심각한 부부싸움을 벌였습니다. 사뮈엘은 평소 일상의 대화를 녹음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언쟁 끝에 산드라가 사뮈엘을 때리는 소리가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법정 싸움에서 산드라는 약자입니다. 유명한 소설가였던 그녀의 명예 역시 추락합니다. 수많은 전문가가 등장해서 공방을 거듭합니다.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전문가는 ‘과학적 증거’를 보았을 때 사뮈엘이 자살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주장합니다. 그럼에도 검찰 측은 산드라가 유죄라고 굳게 믿습니다. 죽음 이전에 벌였던 싸움, 산드라에게 내재된 폭력성이 지닌 개연성을 더 크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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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재판을 뒤집을 이는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의 증언은 산드라를 사지로 내몰 수도 있습니다. 법정에 어린아이를 증인으로 내세우는 일은 끔찍합니다. 게다가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증언이라니요. 다니엘은 잠시 산드라를 떠나 홀로 있기를 택합니다. 다니엘을 돌봐주는 법무부 직원이 이렇게 조언합니다. ‘하나를 믿어야 하는데 선택지가 두 개라면 하나를 선택해야지. 판단을 해야 하는데 정보가 부족하면 결정하는 수밖에 없어.’ ‘믿음을 지어내라고요?’ 사실 모든 세상사가 그렇습니다. 이렇게 다니엘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결정을 내립니다.


법정에서 떠올린 다니엘의 기억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혹은 사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뒤섞인 서사인지 관객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다니엘이 자신이 믿는 진실을 불가피하게 선택했다는 사실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영화에서 산드라는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하지만 트뤼에 감독은 사뮈엘의 사인을 알 수 없는 열린 결말로 영화를 끝냅니다. 트리에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법정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역사가 더 이상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 곳입니다.’ 법정은 나의 삶을 해부하지만, 법정이 해부하는 것은 나의 삶 전체가 아닌 일부일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서사는 내게서 분리되고 나의 의견은 묵살됩니다. 우리는 삶의 주체가 되기를 포기하며 법정이라는 공간에서 소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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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산드라는 유명한 소설가, 복잡 미묘한 개성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그녀는 외도를 저지른 배우자이자 양성애자, 남편의 작품을 표절한 작가, 심리적으로 취약했던 남편을 냉담하게 대하는 여성, 아이에게 무심했던 어머니로 규정됩니다. 과연 산드라라는 인물을 이토록 단순하게 규정할 수 있을까요? 그녀의 삶의 조각들은 파편화되고 단순화됩니다. 그녀가 했던 수많은 언행의 일부는 오직 그녀를 유죄로 만들 증거의 일부로 치환됩니다. 산드라와 사뮈엘의 싸움이 그들 부부 관계의 모든 것이 아니듯, 산드라가 저지른 과오가 산드라라는 인물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산드라 역을 맡은 잔드라 휠러의 연기는 압도적입니다. 2024년에 나온 또 한 편의 걸작 ‘존 오브 인테레스트’에서 내면을 알기 힘든 인물을 연기한 직후였습니다. ‘추락의 해부’에서 산드라는 차갑고 냉소적인 표정을 짓다가도 때로 터져 나오는 감정의 폭발을 막지 못합니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산드라가 무죄인 것처럼 연기하라고 잔드라 휠러에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녀가 남편을 죽였나는 휠러의 질문에는 ‘10년 뒤에 알려주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산드라가 남편을 죽였다고 믿지 않습니다. 영화에 드러나는 산드라의 성격으로 미루어볼 때, 그녀가 남편을 살해할 동기와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물론 판단은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입니다. 잔드라 휠러의 캐릭터 분석은 압권입니다. ‘그녀가 살인을 했냐, 안 했냐가 아니라, 한 명의 복잡한 인간으로서 재판정에서 어떻게 대우받았는지에 집중했다.’고 잔드라 휠러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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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는 법정에서 검찰 측이 주장했듯, 외도를 일삼고 남편을 몰아세우는 악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여성의 내면에 악녀가 살고 있듯, 산드라 역시 단지 악녀라고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복잡다단한 내면을 지닌 많은 여성 중 하나일 뿐입니다. 영화는 제76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며 황금종려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비영어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배우는 견공 스눕입니다. 시각장애인 다니엘을 안내하는 스눕의 이름은 염탐한다는 의미입니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스눕은 ‘그 자체로 하나의 관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스눕은 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보더콜리 종인 이 귀여운 견공은 죽음을 앞두고 되살아나는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냅니다. 덕분에 칸 영화제에서 훌륭한 연기를 한 개에게 수여되는 ‘팜도그 상(Palm Dog Award)’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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