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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꽃... 그리고 詩

by 데일리아트


봄, 꽃, 시


붙들어두고 싶은 한 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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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핀 벚꽃.(출처 : kg 모빌리티)


긴 겨울이 끝나간다. 이러다 하루아침에 봄이 성큼 다가올 것만 같다. 그러니 지금부터 봄을 맞이할 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야 한다. 어느 날 바깥에 나갔는데,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봄은 성큼 다가온 것처럼 성큼 물러날 테니. 물론 이해인 시인의 시처럼 “우리 서로 / 사랑하면 / 언제라도 봄 / 겨울에도 봄 / 여름에도 봄 / 가을에도 봄 / 어디에나 / 봄이 있네” 라고는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금방 지나간 봄을 무척이나 그리워하며 읊조리고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시인의 봄을 향한 지난한 사랑만은 진실하니, 우리도 올 봄엔 사랑함으로 미리 봄에 가 있자. 어떻게? 척박한 가슴에 ‘꽃’을 주제로 한 ‘시’를 심는 것으로. 봄과 꽃 그리고 시라니, 이 얼마나 붙들어두고 싶은 한 글자들인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꽃」)


꽃’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는 단언 김춘수의「꽃」이다. 화자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봄은 오지 않는다. 그런데 화자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피고, 봄이 온다. 그리고 화자는 꿈꾼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자신에게 봄이 왔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봄이 왔으면 좋겠다고. 시인이 꿈꾸는 세상은 각자가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는 세상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너무도 타인에게 무관심하다. 이름도 모르는 대상이 도처에 있다. 아니 어쩌면,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대상’으로써도 존재하지 못하는 ‘A’들이 가득하다. ‘초연결’ 사회에 있지만 깊은 고립을 느끼는 현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지금 당장 옆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보라. 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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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꽃나무 이미지(출처: 우리 문화 신문)



활짝 핀 꽃나무 아래서 / 우리는 만나서 웃었다


눈이 꽃잎이었고 / 이마가 꽃잎이었고


입술이 꽃잎이었다 / 우리는 술을 마셨다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 사진을 찍고


그날 그렇게 우리는 / 헤어졌다


돌아와 사진을 빼보니 / 꽃잎만 찍혀 있었다.


(나태주,「꽃잎」)


위의 시 속 연인은 꽃잎에 파묻혀있지만 “눈물을 글썽” 인다. 왜? 이들은 찰나를 사는 꽃잎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순간뿐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눈이 꽃잎이었고 / 이마가 꽃잎이었고/ 입술이 꽃잎이었다” 라는 시구는, 이목구비가 꽃처럼 아름답다는 표현인 동시에 서로가 꽃잎처럼 금방 지고 말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집으로 돌아온 화자는 꽃잎 속에서 찍은 사진을 빼본다.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졌다. “돌아와 사진을 빼보니/ 꽃잎만 찍혀 있었다.” 아 이토록 짧은 찰나. 사랑한다고 말할까, 말까 부끄러워하는 찰나. 전화 한번 걸까, 말까 고민하는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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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집,『수선화에게』의 표지.(출처 : 교보문고)



마음속에 박힌 못을 뽑아 /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마음속에 박힌 말뚝을 뽑아 /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꽃이 인간의 눈물이라면 /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이 인간의 꿈이라면 /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호승,「꽃」)


당연한 이야기지만, 못은 ‘박는다’라고 쓰지만 꽃은 ‘심는다’라고 쓴다. 꽃은 못과 달리 자라기 때문이다. 화자는 “마음속에 박힌 못을 뽑아 /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그리고 “말뚝을 뽑아 /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나. 못인가, 꽃인가. 못이라면 얼른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 아름다운 꽃을 심자. 그리고 “눈물”과 “꿈”을 물과 비료처럼 아낌없이 쏟아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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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들의 애환이 담긴 가사로 주목 받은 '10cm'의 '봄이 좋냐'의 앨범 표지.



꽃이 / 너라고 생각하니


세상에 / 안 예쁜 꽃이 없다


꽃이 / 너라고 생각하니


세상에 / 미운 꽃도 없다.


(윤보영,「꽃」)


참 재미난 시다. 시를 읽으며 어느 봄날 사랑에 빠진 한 남자를 떠올려봤다. 그리고 동시에 옆에선 막 이별 통보를 받은 다른 남자를 떠올려봤다. 그리고 두 남자는 나란히 걷는다. 거리에는 벚꽃잎이 흩날리고, 향기로운 꽃내음이 풍긴다. 사랑에 빠진 한 남자는 이렇게 흥얼댄다. “봄봄봄 봄이 왔어요 / 그대여 너를 처음 본 순간 / 나는 바로 알았지 / 그대여 나와 함께 해주오 / 이 봄이 가기 전에”(로이킴,<봄봄봄> 中) 그리고 그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이별에 빠진 남자는.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 /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 니네도 떨어져라 몽땅 망해라”(10cm <봄이 좋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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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할 날을 기다리는 꽃봉오리.(출처 : pxhere)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있으랴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이제 막 고개를 내민 꽃을 보면 노심초사하게 된다. 저 여린 생명이 비바람을 견뎌낼 수 있을지, 혹 만개하기도 전에 다 져버리면 어쩌나 하고. 그런데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꽃은 보란 듯이 피어난다. 비바람을 온몸으로 견디고 환하게 피어난다. 당신도 지금 비바람 속에 있는가. 봄을 기다리는 여린 꽃을 떠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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