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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4. 2024

영화

[사진가의 펜으로 보는 세상]

기다림에 관하여, 2023

나는 사진을 찍을 때 동행인이 있는 것에 극도의 불편함을 느낀다. 그것은 사진을 찍는 행위가 나와 대상의 직관적 대화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에 누군가가 개입한다는 것은 대상과의 단절 또는 왜곡을 뜻한다. 그러나 영화를 볼 때는 다르다. 극장이 어두워지면 옆에 누가 있는가에 관계 없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잘 다른 친구들과도 극장을 가긴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혼자 가는 편이기는 하다. 나는 극장을 자주 찾는 편이다. 대략 일주일에 두 편쯤이니까 일 년이면 백 편은 되지 않을까. 다행히도 서울에는 내가 다니기 좋은 극장이 몇몇이 있다. 그러니 나의 남는 시간을 소비하기에 좋은 여건에 놓여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가끔 영화는 뜻하지 않게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한다.



하마구치 류스케(Hamaguchi Ryuske, 1978-)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영화는 2021년 말에 개봉했다. 조금 늦게 극장에서 그 영화를 마주했으며 감동적인 세 시간을 보냈다. 한국을 좋아하는 이 천재적인 감독은 그 이유로 한국인 배우도 많이 쓰고 또 한국에서의 촬영 분량도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의 중간에 유명한 연극인 사무엘 베케트의 반연극으로 많이 알려진 <고도를 기다리며>의 연기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이것이 나를 완전히 80년대의 그 시절을 회상하게 만들었다.



1985년 나는 이 연극을 극단 산울림 소극장에서 임영웅 선생의 연출로 감상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너무 어려서 그 어려운 내용을 수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사진가로서 나는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과 교류하고 표현하고 싶어졌다. 마침 아침 안개 테마의 사진을 진행할 무렵이었기에 그 연극에서 받았던 영감을 내 사진에 불어 넣었다.



나는 아네스 바르다(Agnes Varda, 1928-2019)의 영화를 좋아하여 거의 대부분의 작품을 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 JR이라는 사진가와 함께 포토 트럭으로 프랑스 전역을 다니며 만들어 낸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50년 이상의 나이차가 나는 이들의 대단한 조화의 경이, 바르다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이야기하고 사랑하고 삶의 소중함을 전개시켜 나가는 장면들, 특히 각 장소에서의 만남의 이야기를 담은 엄청난 설치 사진 작품들은 감동적이었다.



이 영화에서 아네스 바르다가 장 뤽 고다르라는 누벨바그 영화의 거장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괴팍한 고다르는 문 앞에 쪽지를 붙여 만남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이 또한 영화의 내용이다. 장 뤽 고다르( Jean Luc Godard, 1930-2022)는 실은 프랑소와 트뤼포(Francois Truffaut, 1932-1984)와 더불어 누벨바그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 받는 감독이다. 그는 '세상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으며 영화는 영화라는 이름이 붙은 특유의 매체로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함'을 말했다. 나는 이 구절에서 언제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로티누스(Plotinus)의 무형상은 형상의 발자취에 불과하다는 말을 떠올린다. 그러니 고다르의 영화는 눈으로 인식해서 가슴으로 풀어내야 하는 영화의 시작이라 하겠다. 그는 2022년 스위스에서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그때 91세였다. 그러나 그는 고통스러운 어떤 병을 가진 상태는 아니었다. 인간의 삶은 늘 통증 가운데 있으며 통증이 멈추면 권태로움이 오는 것 아닐까. 아마도 천재적 예술가였던 그는 그가 세상에서 할 일들을 다 마쳤음을 알리는 선택이 그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서울에서 개인전을 갖는 중이다. 이제 작품을 철수하고 다시 내일로 떠나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여러 극장에서 나를 유혹하는 프로그램들이 이메일을 통해서 날아온다. 아마도 내일로 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인가 보다. 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잠든 것처럼 눈을 감았던,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기형도 시인을 생각한다. 그 시인에게 영화는 무엇이었을까.



사진: 기다림에 관하여, 2023년



** 위에 언급했던 극단 산울림의 창립자인 임영웅 선생께서 지난 5월 4일 별세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연극이 끝난 이후 선생님과 나누었던 대화가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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