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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4. 2024

화가 에세이 [최윤정 화가의 '별을 떠나며']

기고

앞으로 30년 후, 2052년의 어느 날
예술은 우리가 놓인 삶의 조건을 직면하게 해준다


2052년 12월 1일, Y는 어린 시절부터 가끔씩 찾았던 양양 해수욕장의 바닷가에서 검은 파도를 바라보며 서있다. 기름이 둥둥 떠 있는 검은 파도가 쓸려올 때마다 마스크를 뚫는 매캐한 가스가 코를 찌르지만,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풍경이라는 생각을 하니 좀 더 머물고 싶었다.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이렇게 기온이 높은 날이면 저 파도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뛰어 들어 허기가 질 때까지 웃고 헤엄치며 즐겼던 곳이다. 파도를 타고 웃음이 전파되었고, 삶의 열기가 넘실거렸다. 파도는 그 자체로 생명이었다. Y의 오랜 기억 속에 있는 풍경이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살아 있는 동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Y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무엇을 해도 또래 친구들보다 빨리 지쳤다. 좀 신나게 놀면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 그는 이후 며칠 간 온몸이 쑤셔서 꼼짝하지 못했다. Y는 지인들 사이에서 소문난 약골이었다. 그런 그는 세상의 모든 작물이 말라 죽고 대부분의 동물들이 사라지고,주위 친구들과 가족들이 유명을 달리하는 동안, 계속해서 통증을 호소하며 힘들어했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눈에 띄게 약한 Y는 이상하리만큼 질기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는 동안 살아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지막 방주의 한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운이 좋은 것인지 더 혹독한 고통에 갇혀 살아야 하는 지독한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 Y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방주에 몸을 싣고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내일이면 내 평생의 안식처를 떠나야 한다. 모든 추억을 이 별에 남겨두고 떠난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같은 것은 없다.


Y는 30년 전이 좋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절이었다. 그가 사는 한국에는 유난히 산이 많아서 눈을 돌리면 어디든 녹음이 우거져 있었다. 먹거리가 넘쳐나서 어린이들은 음식을 두고 서로 싸우는 일이 없었다. 누구나 충분히 먹어도 남을 만큼 음식을 차리고 남는 것은 버렸으니까. 집집마다 냉장고에는 상해서 버리는 식재료가 먹어서 없애는 것보다 많았다. 값싸고 좋은 물건도 많아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색상별로 한 번에 여러 개 사는 것을 별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용하던 물건이 싫증나면 버리고 새 물건을 사서 쓰곤 하였다. 낡은 것을 찾아 보기 힘든 반짝이는 세상이었다. 그 때는 그 모든 것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하는 삶의 권리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저 파도는 칙칙한 검은 빛을 띄며 악취와 가스를 실어 날랐을까. 일렁이는 바다는 파도를 타고 죽음을 전파한다. 엄청난 쓰레기를 머금은 파도는 이 별의 모든 존재를 집어삼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생각해보 면 참 많이 버리고 살았다.


Y는 생각한다. 그가 집을 버린 것인지 집이 그를 버린 것인지. 무엇이 진실일까.

최윤정, pop kids #121, 53×53cm, oil on panel,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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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우리의 환경이다. eco의 어원은 house를 뜻하고 이로부터 우리 삶에서 다양한 부분의 생태계를 뜻하는 여러 단어가 파생되었다. economy와 ecology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환경(집)이다. 기후 환경의 위기를 맞아 과학계에서 다양한 종이 멸종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상식이다. 이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우리 모두가 집을 잃어버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집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는 지구는 존재하되 우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의 지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이 존재할 수 없는 지구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있을지,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잘 지켜갈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 현재는 많은 국가와 산업체들이 각자 지금의 경제 환경을 지키면서 지구의 생태 환경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며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시점이다.


거대한 지구라는 집에 대한 문제를 이 별에 사는 모두가 공유하면서 여러 나라들은 분쟁 중이다. 종교적 신념, 영토 점령 등의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삶의 중심이 되었던 집에서 스스로 이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또는 강제로 내쫓기는 상황에 내몰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모든 문제를 안고 우리는 살아간다. 우리 모두가 이 별에서 강제로 내쫓길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폭탄을 안고 계속 분쟁 중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계속 진행될 것이다. 우리는 멈출 수 없는 숙명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자본주의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에너지로하는 성장을 전제로 존속 가능한 시스템이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는 지구의 산림과 해양 등의 생태 시스템을 파괴한다. 우리는 경제 환경과 생태 환경이라는 두 기둥의 건재를 지키며 우리의 집이 집으로 계속 존재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SF영화에서 보았던 극소수의 우주 이주가 강행되어 인간의 유전자를 이어가게 될 것인가? 70억 인구가 우주의 어딘가로 이주할 수 있는 미래는 올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아니 30년 후면 지구의 인구는 90억이 넘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상상은 이제 더 이상 허무맹랑한 망상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컴퓨터와 기계 등의 기술 발전으로 많은 일의 처리가 급속도로 이루어짐에 따라 인간이 느끼는 시간 또한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또한 빠르게 진행된다. 빠른 변화는 더 많은 소비를 유도한다. 뒤처지는 것은 곧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는 듯 도시의 많은 사람들은 트렌드를 무시하면서는 살 수 없는 환경에 적응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어떤 예술은 우리가 놓인 삶의 조건을 직면하게 해 준다. 그 다음에 어떤 고민을 할지 말지는 각자의 몫이다.


최윤정, pop kids #120, 200×200cm, oil on canvas, 2022


https://youtu.be/JKUW-uIkM-I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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