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도, 사람도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고, 내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안 순간 얼마나 가슴 찢어지도록 그리움이 차올랐는지 모릅니다. 늙어가는 화가의 울부짖음이란 그런 것이지요.”
한인현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는 ‘기다림’이다.
기다림, 1994, 혼합제, 65×50cm
심념, 1982, 종이,먹,수채, 26×35cm
6‧25로 가족과 헤어져 홀로 남쪽에 남겨진 한인현. 그의 마음속에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영원히 자라지 않는 한 소년이 살고 있다. 뒷짐 진 손은 이미 다 자란 어른의 손이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은 소년이 먼 곳을 바라보며 서 있다. 화백이 그린 사람들은 대체로 뒤통수가 나오고, 앞이마가 나온 꼴을 하고 있다. 골똘히 생각하는 사내, 아이를 업은 엄마와 아이, 동생을 안고 있는 소년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런 모습이다. 그들은 대체로 긴 팔로 서로를 안아주거나 고민스럽게 턱을 괴고 있다.
간혹 사람의 머리 위가 덜 그려져 있는데, 그것은 무한히 뻗어나가는 사랑이나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왜 슬프고 못생긴 사람만 등장하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말한다. 고통스럽게 보는 사람은 지금 삶이 힘겨운 상태일 것이고 평화롭게 보는 사람은 별다른 고통이 없는 상태일 것이라고. 지금 삶이 힘들어도 평화롭게 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는 평화롭게 보일 것이니, 그러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그림 속 사람들은 그저 한인현의 그리운 기억들이다.
“그 봄날, 나는 사무치게 사람이 그리웠습니다. 내게는 한결같이 따뜻하게 다가왔던 지인들, 친구들이 그리웠고 내게 그림을 그리게 해준 시간들이 한없이 그리웠습니다.”
한화백은 유독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자화상은 가난한 화가에게 더없이 성실한 모델이기도 하거니와 스스로 내면을 복기하고 위로하는 화가다운 치유법이기도 했다.
자화상, 2004, 연필, 21×28.5cm
“나는 늘 감사해하며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무엇이 그리운가. 나는 자화상을 보며 묻습니다. 사람의 향기겠지요. 고향이겠지요. 어머니와 아버지겠지요. 내 꿈을 이루고도 늘 외롭고 고독한 나를 자화상을 통해 확인합니다. 기다림이란 건 그렇게 지독한 병입니다. 그 병에 젖어 하루하루를 삽니다. 병에 젖어 살지만 고통스럽지 않으니 이상한 일입니다.”
한인현의 고향은 바닷가였지만 대부분이 논농사 밭농사를 함께 지었고 주위에는 늘 소가 맴돌았다. 그는 그래서였다고 생각했다. 소의 눈빛을 보면 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힘겨워서 쉬고 싶어하는 눈, 포만감에 젖어 잠자고 싶어하는 눈, 주인의 보살핌이 고마워 아무리 힘든 일도 기꺼이 하겠다고 의욕을 보이는 눈.
화가가 되어서 그는 소를 많이 그렸다. 힘든 일만 거듭하는데도 순박한 눈빛을 간직한 소를 그리다 보면 그 우직함에 마음이 편해졌다.
“나도 모르게 소를 그리는 것은 그런 눈빛이 그리운 세상에 살기 때문일 겁니다. 왜 그 눈빛이 그리울까요.”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도 소의 눈동자가 어른거려 얼른 뒷동산으로 달려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소와 놀아주기도 하고,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동산에 앉아 서산 너머를 바라보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음메 소리를 길게 끄는 소와 함께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것입니다. 나이 들어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저무는 사릿고개, 1995, 혼합제, 65×91cm
그의 그림 속에서 소는 주인 곁에 듬직하게 서 있다. 소년은 풀밭에 쪼그리고 앉아 '생각하는 철학자' 흉내를 내기도 한다. 아무 걱정도 없으면서 세상 고민 다 안고 있는 듯이 턱을 괴고 앉아 눈까지 지그시 감고 말이다. 그는 이런 그림을 그릴 때 이마도 안 나오고, 뒤통수도 안 나온 아이를 그렸다. 소의 맑은 눈동자와 그 맑은 눈동자를 닮은 사람, 그 맑은 눈동자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그리운 화가는 그 시절의 세상에 가 다시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는 물고기들은 대부분 바다속의 유유한 삶을 보여 주지 않는다. 수면을 향해 곤두서 있을 때가 많은데, 물고기 위로 구름이 흘러가기도 하고 소라 껍데기가 다가와 있기도 하다. 물고기가 물고기를 떠받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 안에 숨어 있는 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려는 욕망을 확인한다고 했다. 작은 물고기로 살아가야 하는 고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꿈꾸는 일탈을 말이다.
가난한 화가의 손주를 위한 선물(과자통 위에 한지,먹,수채)
“내 마음 속에는 바다속의 물고기 역시 늘 고향을 그리워하는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가득한 모양입니다. 망망대해의 바다속이 다 물고기의 것인 듯하지만 늘 어디론가 방황의 길을 떠나는 물고기의 슬픔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목이 메곤 합니다.”
물고기가 물고기를 물고, 그 물고기가 다시 다른 물고기에게 물려있는 그림은 약육강식의 인간사를 은유한다. 강자랄 것도 약자랄 것도 없는 세상을 풍자하는 것이다.
화백은 산과 구름도 즐겨 그렸다. 키가 같은 세모난 산은 일자로 혹은 둥글게 줄지어 그려졌다. 구름을 그릴 때 그의 상상에는 경계가 없어진다.
“산과 구름을 그릴 때, 나는 내 몸뚱이를 받아 준 산과 물과 구름에 대해 엄숙해집니다. 붓 한자루 힘있게 움켜쥐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그야말로 아무리 험한 산도 뒷동산처럼 가볍게 오를 수 있을 것 같고, 구름을 불러내려 그 위에 올라타고 세상 유람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기분이 됩니다. 황홀경이지요.”
무제,1993,종이,먹,수채,이쑤시개_31x21cm
그런 탓에 화백은 오르지 못할 산처럼 까마득하게 높은 산을 그리지 않는다. 서로 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저 친구 같은 산을 그린다. 구름을 그릴 때에는 어떠한가. 눈에 보이는 대로 깃털 구름을 그리기도 하고, 번개처럼 획 스쳐가는 구름을 그리기도 한다. 구름에 눈을 그려 넣거나 사람을 향해 내뻗는 손처럼 그리기도 하였는데, 자연에도 숨결이 있으니 그림에도 숨결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이 아주 고달팠던 시대에, 낭만이 실종된 사회에 살지언정 낭만을 영영 되찾을 수 없다고 생각지는 말자고 그는 다짐했다. 이 그림들은 산은 산으로, 구름은 구름으로 시대의 복판을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자유로운 산과 구름들이 숨막힌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바랬다.
절규, 1994, 혼합제, 65×91cm
“그 시절을 안간힘 다해 버텨 온 분들에게 이제 이 구름과 이 산들의 골짜기에서 막걸리 한 잔 마실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그때, 영혼을 불살라 어둠과 맞섰던 사람들과 손을 잡고 산과 구름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늘 고맙다고 여기며 살아온 그였다. 모든 것이 세상의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고 자신 또한 그 질서 속에 들어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느 날 그는 잔뜩 화가 난 개 한 마리를 그려 넣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내 손끝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입을 잔뜩 벌린 개를 그려냈습니다. 아마도 나는 세상을 향해 아우성을 쳐봐야 들어 줄 사람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들어 줄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들으려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 그래서 그림 속의 개는 하늘을 향해 푸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 한인현, 2022, 혼합제, 53×72cm
한인현은 매일 신문을 정독하였다. 때때로 그는 신문을 스크랩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그린 그림 뒤에 기사를 붙인 뒤 메모를 하곤 했다.
비록 그의 발이 시위에 나선 적도 그의 손에 돌이 들린 적도 없다. 하지만, 그의 붓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모두 기록하고 있었다.
더 좋은 세상을 기다리며, 홀쭉한 배를 끌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어 고함치고 있는 개를 더 이상 그리지 않기 위한 그다운 걸음이었다.
나그네가 휘청휘청 길을 가는 그림을 본다. 달빛은 그 사내의 발밑까지 밝게 비추고 산들이 사내가 가는 길 사이에 자리잡아 있다. 그런데 길 끝에는 나뭇잎이 한 장. 한 발짝만 더 내디디면 뚝 부러질지도 모르는 나무가지 위를 걷는 것이 인생길이라고 그림은 말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언제나처럼 가련한 그믐달이 떠 있다.
삶이 무거울 때마다 그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은 따로 있다고 되뇌곤 했다.
잘 그리는 화가보다 좋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어서, 그는 뚜벅뚜벅 그의 길을 걸었을 뿐이다.
회상, 2002, 종이,먹, 37x25cm
“길동무 역시 없습니다. 스산한 바람이 사내를 움츠리게 합니다. 그래도 길을 가는 것, 그것이 사람이 아닐까요. (...)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가든, 길을 가는 사람에게 응원을 보내 주십시오. 힘겹고 고단한 인생길을 갈지언정 누군가의 응원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는 한 번 더 신발끈을 묶어 매고 가고 또 갈 것입니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⑧] 바보화가 한인현-그리움을 견디는 사내 < 인터뷰 < 뉴스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