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구름 흘러가는 곳에 떠오르는 할아버지

by 데일리아트

방금까지 정면에서 마주 보이던 창밖의 구름이 커피 한 모금 마시는 사이 저만큼 이동해 있다. 이렇듯 뿌리 없이 부유하는 무상함이 이승의 삶일진대, 수없이 의문을 품었던 죽은 자들에 대한 안부, 그들은 과연 자유를 얻었을 것인가?


사람은 가도 사물은 남아 기억과 함께 현존한다. 지금 거처하는 공간엔 한 세기의 기원을 가진 몇 가지 애장품이 있어 감상의 세계로 초대하고자 한다. 이것들은 어디서 왔는가? 그 연원을 캐보자면 조부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젊은 시절 만주, 일본, 대만 등을 돌며 유랑의 시간을 보냈고 아름다운 것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졌다.


그 안목이 얼마나 빼어나던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뮤지엄 동양관 섹션을 처음 방문했을 때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거기 전시된 모든 것들은 바로 집에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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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실의 꽃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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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실의 장식장


도자기, 유리공예, 병풍, 족자 등. 특히 족자는 수십 점이어서 계절마다 그림을 바꿔 달았다. 장르와 주제 또한 다양했다. 힘차게 뛰는 말의 형상, 늙은 염소의 세밀한 주름 묘사까지. 사실적인 것과 이미지가 복합된 상징성의 동물들, 꽃과 난초. 예술의 향연 속에 크면서 어린 나이에도 품격의 차이를 알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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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소품


한국 문화의 전통성, 민속학에 관해 글을 많이 썼던 이미륵은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잠자리에 누워 병풍 그림을 바라보는 것을 즐겼다. 병풍은 여덟 폭으로 되어 있었다. 산이며 바위며 꽃이며 시내며 저 멀리 다리 너머로 혹은 바닷가 너머로 아득히 날아가는 기러기들이 그 위에 그려져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아름답게 빛났다."(이미륵,


이미륵의 느낌이 바로 내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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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를 타일 형태로 붙인 장식장


그 중에서도 만든 이, 빚은 이의 천품이 느껴지는 도자기 화병과 갈빛 장식장은 창조의 노고와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조부는 그 물건들이 중국의 황실에서 나온 것이라며 소중히 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 중국 황실의 예술품들이 여기에 와 있는지 그 유래를 알지 못한 채 조부는 오래 전 세상을 떠났다. 아끼던 것들임을 잘 알기에 고인과 똑같이 사랑으로 닦고 조심히 만졌다.


마티 디오프 감독의 다큐멘터리 「다호메이」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까 두렵다고 읊조리는 조각상이 자신의 정체성을 소개해 줬으면(···) 의인화 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면 좋으련만 ."


똑같은 심정이다.


화병엔 꽃을 꽂았었고 장식장엔 추억의 갈피가 내재해 있다. 문을 열면 건네지던 학용품과 과자, 인삼의 무게를 재던 저울, 나침반, 붓집. 그리움의 연장선에 그분이 남긴 삶의 광휘가 있다. 품격이 자연스럽게 가정에서 길러지고 있었다.


시인 엘리어트가 말했듯이 가정은 우리가 출발한 곳이다. 이 말처럼 내 시의 출발점은 조부와 함께 있었다.


초시 주변


백명훈


열세 살 때 / 돌아가신 할아버지 보고 싶어 / 무덤가에 갔다가


자나 깨나 보고 싶은 할아버지 그리워 / 거기 갔다가


숲에선 새 울고 바람에 풀잎 흐적이기 / 시나 뭐나 모르고 글 하나 써 봤더니


어떤 분 '시인 되겠네 ' / 님이라 불렀더니 친구의 뒷얘기


' 쟤는 벌써 연애한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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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를 타일 형태로 붙인 십장생 약장


십장생을 도자기 타일로 붙여 만든 약장이 있다. 서랍 위에 붙였다는 착상이 흔히 보는 약장과 구별되는 것으로 태극 문양, 백로 , 달, 소나무, 거북이, 구름, 꽃, 사슴 도상이 십장생에 얹혀지는 바람과 함께 오래 살고 싶다는 염원을 읽게 한다.


사전적 정의로 안목은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능력이라 했다. 사랑은 모든 안목을 뛰어넘는다. 그리하여 하여 둘러싸고 있는 내 쉼터의 유품들 속에서 나는 행복하다.


[길 위에서] 구름 흘러가는 곳에 떠오르는 할아버지의 흔적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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