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떠나는 사람의 시간

죽음을 앞둔 순간 드러나는 고요한 내면

by 사색하는 덕주부

『바움가트너』는 남겨진 사람의 시간이 어떻게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상실은 남겨진 이에게 시간을 멈추게 하지만, 그 멈춤 속에서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아주 작은 변화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떠나는 사람의 시간은 어떨까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지만, 그 끝에 서 있는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은 오히려 생을 가장 선명하게 비추기도 합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바로 그 ‘마지막 시선’이 머무는 자리, 죽음 앞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진실을 조용히 비춰주는 작품입니다. 한 인간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잃고, 무엇을 다시 발견하는지. 이번 글은 그 고요한 내면의 방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려 합니다.




이반 일리치의 생애와 무너짐


이반 일리치는 순탄한 성장과 안정적인 경력을 바탕으로, 사회가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충실히 따라 살아온 인물입니다. 법학을 마치고 판사로 일하며 지위를 쌓아갔고, 결혼 초에는 행복했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 부부 관계는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그는 점점 가정보다 사회적 성공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었고, 승진과 인정은 그의 삶을 구성하는 핵심 기준이 되었습니다.


멈추기 전, 삶이 남겨둔 자리


더 나은 삶을 위해 집을 새로 꾸미던 어느 날,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병은 서서히 그의 몸을 잠식해 갔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그제야 ‘죽음이 자신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는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고통을 인정하고, 분노와 부정을 지나 가족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는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마지막 시간에 드러나는 삶의 진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이반 일리치 역시 그랬습니다. 병세가 악화되는 동안에도 그는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치료만 된다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몸의 고통은 숨길 수 없었고, 죽음의 그림자는 점점 더 뚜렷해졌습니다. 결국 그는 피할 수 없던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내가 살아온 삶은 진실했는가?”


문밖에서 조용히 다가온 진실


죽음을 의식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겪는 감정은 단순한 선형이 아닙니다. 두려움과 체념이 교차하고, 희망과 분노가 뒤섞이며, 자신이 붙들어온 가치들이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반 일리치는 이 모든 단계를 지나며,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성공과 인정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었는지를 깨닫습니다. 그가 외면했던 관계와 감정들이 마지막 시간에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누군가를 용서하고, 자신에게도 용서를 허락하는 그의 태도는 죽음이 단순한 끝이 아니라 깊은 성찰의 시간임을 보여줍니다. 죽음을 의식하는 일은 결국 살아 있는 시간을 더 선명하게 비추는 빛이라는 사실을 작품은 조용히 말하고 있습니다.




늙어간다는 것, 남아 있는 시간의 의미


우리는 노년을 종종 인생의 황혼으로 비유합니다. 늙어간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시간이면서,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이 조금씩 힘들어지고, 삶의 많은 부분을 다시 타인의 손길에 의지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오던 시간이 서서히 뒤로 물러나는 이 순간은, 인간의 삶이 지닌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다음 글에서는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을 통해 스웨덴의 한 마을에서 마지막 시간을 살아가는 한 노인의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맞이하게 되는 변화가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인간이 다시 어떤 관계와 의미를 찾아가게 되는지 함께 사색해 보겠습니다.




by 사색하는 덕주부

책을 읽고, 삶을 사유하며,

언젠가 아들에게 전할 기록을 남깁니다.

더 많은 글은 블로그에서 만나보실 수 있어요.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AI 생성 도구를 통해 직접 제작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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