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하루가 남긴 후회

따뜻한 설렁탕과 식어버린 삶 사이에서

by 사색하는 덕주부

신이 된 인류, 인간으로 남은 자

『호모 데우스』는 인류가 신이 되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하루를 버티는 인간이었습니다. 불멸과 행복을 꿈꾸던 그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고, 그 눈빛은 피로로 가득했습니다. 김첨지는 근대화가 시작된 그 거리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끝내 인간으로 남아 있던 이였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그의 삶에는 알고리즘도, 진화도 없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세계가 인간의 ‘미래’를 예언했다면, 현진건의 이야기는 인간의 ‘현재’를 고발합니다. 『운수 좋은 날』은 그렇게 화려한 진보의 그림자 아래, 여전히 선택할 수 없는 인간의 고통을 들려줍니다. 거창한 이념도, 과학의 진보도 없는 그의 하루 속에서 오히려 인간의 진짜 얼굴이 드러납니다.


그렇게 신이 된 인류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 인간의 하루로 돌아옵니다. 불멸을 꿈꾸던 인류의 내일이 아닌, 버텨야 했던 한 사람의 오늘을 바라보며.




하루의 운명


인력거를 모는 김첨지는 오늘따라 운수가 좋았습니다. 연이은 손님에 장거리 손님까지 태우며 오랜만에 쉴 틈 없이 벌이를 했습니다. 아내가 병에 걸린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약 한 번 써보지 못했습니다. 김첨지는 병은 약을 주면 재미를 붙여 자꾸 찾아온다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사실은 약을 살 돈조차 없었던 탓이었습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번 돈으로 조를 사서 조밥을 지었는데, 설익은 밥을 급히 먹다 병이 오히려 더 깊어졌습니다. 오늘따라 유독 나가지 말라고 말리는 아내를 뒤로한 채 일을 나섰지만, 뜻밖에도 큰돈을 벌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영 불안하여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는, 아내가 오래전부터 먹고 싶어 하던 설렁탕을 사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가 품에 안은 설렁탕의 김은 아직 따뜻했지만, 아내의 몸은 이미 식어 있었습니다.


식어버린 방과 따듯한 설렁탕의 온기




선택의 무게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쌓여 미래를 만들어 갑니다. 어떤 선택은 스쳐 지나간 하루로 남지만, 어떤 선택은 삶을 바꾸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김첨지에게도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장거리 손님을 태우고 가던 중 집 근처를 지나칠 때, 혹은 동네에 이르러 친구와의 술자리를 미루고 곧장 집으로 향할 때. 그 한 걸음의 차이가 삶과 죽음을 갈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늘 하루를 벌지 않으면 내일 굶어야 하는 사람, 생계에 쫓겨 선택할 여유조차 없던 인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선택조차 의미를 잃는 순간이 있습니다. 김첨지의 하루처럼, 운명이 이미 닫힌 문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말입니다. 과거를 돌이킬 수 없기에 선택은 언제나 후회로 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안에 또 다른 후회를 품고 살아갑니다. 결국 우리는 후회 속에서 선택하고, 그 후회마저 안고 나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과거의 후회에 머무르기보다, 다음 선택이 덜 아프기를 바라며 내일을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남은 자의 시간


『운수 좋은 날』은 떠나간 이를 애도하지 못한 하루의 이야기입니다. 반면 10년 전 아내를 잃은 『바움가트너』의 주인공은, 떠나간 이를 여전히 마음속에서 살아 있게 둔 채 살아갑니다. 그의 삶에는 여전히 아내의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김첨지의 하루가 끝난 자리에서, 바움가트너의 삶은 시작됩니다.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 삶이 계속된다는 것, 그 사실이야말로 인간이 신보다 위대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다음은 떠나간 이와, 떠나보내지 못한 남은 자의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남겨진 사람의 시간




by 사색하는 덕주부

책을 읽고, 삶을 사유하며,

언젠가 아들에게 전할 기록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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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AI 생성 도구를 통해 직접 제작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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