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기에 비로소 알게 되는 평범함의 가치
우리는 늘 시간이 앞으로 흐른다고 믿어왔습니다. 태어나고, 자라고, 사랑하고, 늙어가는 순서에는 거꾸로 걷는 길이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문학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시간의 방향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감정을 보여주곤 합니다.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에서 우리는 천천히 저물어가는 한 노인의 시간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제는 그 시간의 방향 자체가 뒤집힌 한 사람, 벤자민 버튼의 삶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젊어지는 한 남자의 시간에서, 우리는 또 다른 방식의 ‘삶의 결’을 마주하게 됩니다.
벤자민 버튼은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운명을 지닌 채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는 늘 주변과 다른 방향으로 나이를 먹었고, 그런 삶 속에서 데이지라는 소녀를 만나 자연스러운 끌림과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데이지 역시 벤자민의 독특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둘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갑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의 궤적은 점점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데이지가 성숙해지고 자신의 길을 넓혀갈수록, 벤자민은 젊어지며 그 거리감은 점점 커져만 갑니다. 잠시 교차했던 사랑은 결국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없음을 드러내고, 벤자민은 그녀를 위해 조용히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벤자민과 데이지의 사랑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두 사람의 시간이 잠시 같은 결로 흐르던 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삶의 온도가 우연처럼 맞아떨어졌던 그 짧은 구간에서, 그들은 누구보다도 평범한 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평범함은 오래 허락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다시 엇갈리기 시작하는 순간, 사랑은 더 깊어지기보다 더 조심스러워지고, 함께하는 미래는 선택이 아닌 포기가 되어버립니다. 벤자민 버튼의 사랑은 그래서 더 아름답고, 동시에 더 아프게 남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던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젊어짐을 꿈꾸곤 합니다. 더 젊고, 더 활기찬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인생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벤자민 버튼의 삶은 그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의 시간은 노인에서 아이로 저물어 가지만, 그 특별한 시간의 흐름은 삶을 풍요롭게 하기보다는 깊은 고독을 남깁니다.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혼자만의 길을 걷는 것과도 같습니다. 비슷한 꿈을 꾸기도, 같은 속도로 나란히 걸어가기도 어려운 삶 속에서 그는 늘 이해받지 못한 채 존재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데이지를 떠나는 벤자민의 선택 역시 그런 고독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를 위한 배려이자, 자신의 미래가 누군가에게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특별하다는 이유로 끝내 함께 머물 수 없었던 그의 삶은, 축복처럼 보이던 운명이 얼마나 외로운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드러냅니다.
우리는 흔히 ‘특별함’을 동경하고, ‘평범함’을 하찮게 여깁니다. 그러나 평범함이란 같은 방향으로 나이를 먹고, 서로의 변화를 이해하며, 함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벤자민 버튼의 특별했던 인생은 오히려 그 평범함이 지닌 따뜻한 가치를 새삼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범함 역시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글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통해, 오히려 평범해지기 위해 스스로 가면을 써야만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돌아보려 합니다. 특별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던 삶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평범함’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by 사색하는 덕주부
책을 읽고, 삶을 사유하며,
언젠가 아들에게 전할 기록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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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AI 생성 도구를 통해 직접 제작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