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조연으로 만들지 않는 법
8년 전 봄, 아내의 임신 소식을 처음 들었던 날!
벅차오르는 감동 뒤편으로, 내 마음속에는 아주 묵직한 질문 하나가 닻을 내렸다.
"나는 과연 어떤 아빠가 될 것인가?"
꽤 비장한 질문이었다.
아이에게 존경받는 아빠, 친구 같은 아빠...
2019년, 1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주 양육자의 길을 선택했을 때 내 마음속에는 '완벽한 아빠 육아'라는 드라마를 찍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현실은 냉정하고 참혹했다.
'침대에 누워 편히 잠을 잔 날이 언제일까?'
이것이 추억이 될 만큼 보채는 아이를 달래는 새벽이 매일 반복되었다.
그리고 밤을 꼬박 새운 이른 아침 지쳐 잠든 아이를 안고 나는 창문 밖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바쁘게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내 모습이 햇빛에 반사되어 유리창에 비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내 뜻대로 따라오지 않는 아이를 향해
"아빠가 너를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 넌 매일 울기만 하고 대체 아빠가 어떻게 해줘야 우리 서로 편하게 밤을 보낼 수 있겠니?"
겉으로는 희생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것은 '나'를 알아달라는 투정이었다.
아빠 육아라는 무대 위에서 아이와 함께 춤추는 파트너가 아니라, 화려한 조명을 독차지하려는 단독 주연배우가 되고 싶었던 ‘아빠의 투정’ 말이다.
관계를 망치는 '주인공 병'
우리는 종종 관계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려고 노력한다.
내가 얼마나 옳은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내 생각이 얼마나 논리적인지를 증명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주인공이 되고 싶은 태도는 악의가 있어서 라기 보단, 자기 자신에게 너무 몰두한 나머지 타인이 들어올 공간을 지워버리고 관계의 공간을 무단으로 점유하고 싶은 욕구에서 나오는 태도일 것이다.
아이 6살 때 일이다.
나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있었고, 내 욕심 대로 풀리지 않던 일들에 짜증이 나있었다.
"아빠! 우리 어디 가는 거?"
"우리 오늘은 그냥 집에 가자. 아빠가 너 좋아하는 헬로 카봇, 또봇 많이 보여줄게"
"아빠! 우리 오산천 산책하러 갈까?"
"아니! 우리 오늘은 그냥 집에 가자니까. 아빠가 영상 보여준다고 했잖아!"
아이는 울먹이면서 말했다.
"난 아빠랑 산책도 하고, 자전거도 빌려서 같이 타고 싶은데 아빠는 내 마음도 몰라주고 나 속상해"
그날 나의 말과 태도에는 '내가', '지친다', '짜증 난다', '넌 그냥 시키는 대로 해', 내가 짜증 난 것들과 내가 힘들 이유들이 뒤섞여 온통 '나' 뿐이었다.
아빠인 내가 자기감정에 취해 있는 동안, 아이는 아빠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빛나려고 할수록 상대는 더 어두워진다. 이것이 관계의 슬픈 역설이다.
조명 감독이 되는 기쁨
코칭과 코칭 대화를 공부하며 내가 깨달은 관계의 핵심은 '대화의 무대 위에서 내려와, 기꺼이 상대를 비춰주는 조명 감독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 몫을 챙기기 위해 싸우기보다 상대의 욕구를 깊이 파고들어 우리가 함께 더 큰 파이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상대를 비춰주는 조명 감독 같은 사람이다.
결국 내 노력을 인정받으려 하기보다, 상대의 존재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조명을 비출 때 그 관계는 기적처럼 살아난다.
우는 아이를 한 없이 바라만 보던 아빠의 정신을 돌려놓은 것은 아이의 한 마디였다.
그리고 나를 스친 질문 하나!
'동훈아 너의 욕구를 잠시 내려놓고 아이의 눈을 한번 들여다볼래? 아이는 지금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을까?'
정신을 차린 아빠는 아이의 욕구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아빠에 대한 서운함', '아빠와 함께 행복한 추억을 쌓고 싶은 기쁨'의 욕구를 관찰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너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 미안해.
오늘은 아빠 마음이 좀 힘들어서 너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구나.
미안해.
우리 오산천 가자. 그리고 손잡고 산책도 하고 자전거도 함께 타자"
아빠가 주인공 자리에서 내려와 아이에게 조명을 비춘 순간, 비로소 아이의 마음과 욕구가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를 지우고 '너'를 채우는 존중어 연습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가 자꾸 엇갈린다면,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만약 그 답이 '나'라면, 이제 대화의 스포트라이트를 옮겨야 할 때이다.
나는 이것을 '존중어의 시작'이라고 부르고 싶다.
존중어는 단순히 높임말만을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다. 상대방을 삶의 주체적인 주인공으로 대우하는 태도이다.
오늘 저녁, 가족에게 건네는 말의 첫마디를 존중어로 바꿔보자.
아내에게, 남편에게 "내가 오늘 얼마나 힘들었냐면..." 대신
"오늘 당신의 하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어?"
아이에게 "아빠 말 좀 들어봐" 대신
"네 생각은 어때? 아빠가 미처 보지 못한 게 있을까?"
코칭 대화 전문가이자 8년 차 주 양육자인 나 역시, 여전히 툭 튀어 오르는 '나의 욕구'와 매일 협상 중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주인공이 되기를 포기하고 기꺼이 관객석에 앉아 박수 쳐줄 때, 내 배우자와 아이가 비로소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빛나게 할 때, 그 반사광으로 인해 가장 따뜻하게 빛나는 존재들이다.
그저 내 곁에 있는 그 사람이 환하게 웃고 있다면, '완벽한 아빠 육아' 드라마는 해피앤딩으로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