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을까.
공황장애가 온 사람처럼 숨이 턱턱 막히고 의욕 없는 생활이 몇 년 동안 계속 이어져 왔다.
변화를 위한 몸부림, 그 어떤 짓을 해서라도 증세를 떨쳐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결국에는 내 속에 있는 불기둥을 식혀낼 수 없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함께해 왔던 나의 일,
아니 내 삶이 바닷가 만든 모래성처럼 파도에 쓸려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그 어떤 이유를 붙여서 다시 이어보려 해도 쓸려 무너진 마음은 붙일 수 없었다.
그냥 떠나고 싶었다. 대책 있었냐고???
떠나는 것이 답일 뿐, 그 뒤에 삶은 정확히 보장된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정확히 무엇을 바로 시작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무모하지는 않았다.
내 모든 생활이 깨져 있으니, 그 어떤 조언도, 그 어떤 유혹도 나를 잡아주지 못했다.
‘무작정 쉬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짓 눌려 있는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내 머릿속에 단 한마디만 맴돌고 있었다.
그 한마디만 남기고 20년 가까이 몸담았던 곳을 떠났다.
미련이 없었냐고? 왜 없었을까?
나의 20대 청춘을 다 바친 곳이고 내 삶의 전부라 생각했던 일터를 떠나는 것인데 미련이 남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미련 없다.’라고 이야기할 수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게 나는 천직으로 생각하고 살았던 사회복지사의 신분을 버리게 되었다.
단순히 먹고사는 것의 문제가 아니었으니
그 후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하나 둘 연락이 오기 시작한다.
조용히 나가고 싶어 피하고 싶은 전화는 피하려 했지만, 질긴 것이 인연인지라
외면하고 회피할 수 없었다.
정해져 있는 뻔한 답이 돌아올 것을 알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니 나이(만 41세)가 몇인데 지금 나가서 뭐 해 먹고살려고 나가냐.’
‘미쳤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무모해도 너무 무모한 것 아니냐.’
‘정신 차려라. 제정신 아니구나.’
심지어 ‘나가려면 조용히 나가라.’(내가 나간다고 뭐 떠벌리고 다녔던가...)
그래도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너의 행동 무모하리만큼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리고 내가 알았으면 사표 내는 것을 알았으면 말렸을 텐데.’ 아쉬움에 눈물을 흘려주는 선배
‘너의 무모함이 아니라, 너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달라.’는 선배
‘너의 용기를 응원한다.’, ‘형님의 미래를 응원합니다.’라 하는 후배도 있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시인의 시처럼
나는 두 번째 흔들림을 준비하기 위해 그렇게 떠났다.
“떠난 후, 나의 일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찾아 헤매게 되었을까.”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