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부정)
우리는 언제 아버지가 보고 싶은가
의무감에 거는 전화 한 통이라도 좋다.
문득, 우리는 언제 아버지가 보고 싶은가.
“어머니는 언제 보고 싶은가?”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지체 없이 대답할 것이다.
"항상요."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그런 대답을 바로 내놓기가 쉽지 않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 시절, 나를 지켜준 보호자는 누구였을까.
아버지였을까, 어머니였을까.
혹은 두 분 모두였을까.
사자소학 ‘효행 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父生我身(부생아신), 아버지는 내 몸을 낳으시고
母鞠我身(모국아신),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은
같은 무게로 기억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우리는 자연스레 **‘모정(母情)’**에 더 많은 감정을 쏟는다.
왜일까?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챙기던 손길이
대개는 어머니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사랑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의 희생은 정말 없었던 걸까?
아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보지 못한 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성장해 버렸을 뿐이다.
아버지는 늘 가족이라는 울타리였다.
그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묵묵히, 조용히, 부지런히
혼자서 움직였을 것이다.
그 부지런함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무언가를 ‘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랑을 소리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문득 깨닫는 날이 온다.
너무 늦어버린 그날.
말 한마디 못 한 채
눈물만 흐르던 그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은 같을 수 없다.
조금씩의 오차는 늘 존재한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만큼은
비교 대상이 아니기를,
누가 더 크고 깊은지를
굳이 따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우리가 마음속으로 항상
두 분 모두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무언의 증거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