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문학치료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말은 곧 문학이 무의식에 이르는 통로라는 인식과 연결된다. 작가는 자신의 무의식을 언어로 형상화하고, 독자는 상상력과 감응을 통해 그 무의식의 세계를 마주한다. 이때 독자는 작품 속 인물이나 장면에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을 경험하기도 한다. 문학작품이나 영화, 드라마 속에서 특별히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인물에게 오히려 시선이 머무는 순간, 우리는 이미 자신의 무의식이 반응하고 있음을 체험한다.
문학치료에서의 읽기와 쓰기는 문학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 마음을 비추어보는 시간이다. 타인에게는 낯설거나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감응일수록, 오히려 자기만의 내면을 확인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치료적 읽기란 작품 속 정서와 자신의 정서가 만나는 지점을 의식화하는 과정이며, 치료적 쓰기는 그 만남의 경험을 자기 언어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분열된 자아와 그림자, 그리고 자기 화해의 과정을 시 작품과 대중문화 텍스트를 통해 살펴본다.
자기 인식의 거울
자기 인식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시작된다. 거울은 나를 비춰주지만, 그 모습은 반대다. 이러한 거울의 특성에 주목하여 시를 쓴 시인이 있다. 이상(1910-1937)은 거울에 대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는데, 그의 시에서 화자는 자신과 똑같지 않은 거울 속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분열된 자아를 인식한다.
이상의 시 「거울」을 띄어쓰기가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원문 그대로 가져왔다. 읽기에 불편하고 갑갑하다. 시인이 의도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행갈이와 연 구분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단어와 단어를 붙여 한 행을 몰아 읽고, 잠시 쉬고, 다시 몰아 읽고, 잠시 쉬고... 그렇게 읽으면 된다. 여러분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낮아지고, 또박또박 끊어 읽는 대신 더듬거나 웅얼거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의미 전달이 잘 안 된다고? 그게 오히려 잘 읽은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독자에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내면세계를 독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지금부터 시 읽기로써 화자의 독백을 재현해 보자.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 내게 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요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요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이상, 「거울」 전문
시 「거울」은 겉보기에는 단순한 자기 관찰의 시처럼 보이지만, 시적 화자가 거울 속의 자신을 ‘타자’로 경험하는 순간, 자아의 분열이 발생한다. 먼저 화자는 거울 속 세계를 또 하나의 독립된 세계로 인식한다. 거울은 현실의 복제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세계로 재인식되고 있다.
문학치료적 관점에서 거울은 자기 객관화(self-observation)의 장치다. 자기 객관화란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나와 동일시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치료 과정에서 참여자가 자신의 감정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볼 수 있을 때,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거울」의 화자는 바로 이 초기 자기 객관화의 상태에 진입해 있다.
거울 속의 세계가 ‘조용하다’는 표현은 현실 세계의 소란스러움과 대비되는 동시에, 내면 깊숙한 무의식의 영역이 아직 언어화되지 않은 상태임을 암시한다. 이어지는 2연에서 화자는 거울 속의 자신에게 말을 건네지만, 그의 귀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딱한 귀’다. 아직 의식화되지 않은 내면과의 소통이 불가능함을 상징한다. 중요한 점은 화자가 거울 속의 나를 ‘딱하다’고 느낀다는 사실이다. 연민은 자기 내부의 낯선 부분을 적대시하지 않고 돌보려는 태도이며, 치료적 관계 형성의 출발점과 닿아있다.
3연에서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이며, 악수를 할 수 없다. 분열된 자아와 현실 자아 사이의 단절이다. 그러나 이 단절은 완전한 분리가 아니라 ‘접촉 불가능하지만 인식 가능한 거리’로 설정된다. 문학치료에서 이러한 거리는 치료적 거리(therapeutic distance)라 불릴 수 있다. 너무 가까우면 감정에 휘둘리고, 너무 멀면 자기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 거울은 만질 수 없지만 볼 수 있는, 즉 이상적인 치료적 거리를 제공한다.
4연에서 화자는 거울의 양면성을 말한다. 거울은 접촉을 차단하지만, 동시에 자기 내면을 만나게 하는 유일한 매개다. ‘만질 수는 없지만 만날 수 있다’는 표현은 치료적 읽기의 본질과 맞닿는다. 문학에서의 경험은 실제는 아니지만, 그 상징적 만남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조우하게 한다.
5연에서 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나는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분열이 고착되면서 화자는 거울 속의 나가 ‘외로된 사업’을 하고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내면의 무의식적 욕망과 충동이 의식적 자아와는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감지하는 장면이다. 화자가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연에서 화자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하고 싶다고 말한다. 여기서 현실 자아는 분열된 자아를 돌보는 주체로 아직 위계를 유지하고 있다. 즉, 자아는 아직 붕괴되지 않았고, 자기 내면을 돌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거울 속 자아는 충분히 통제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초기 분열의 인식 단계이자 자기 돌봄 가능성의 단계다. 자기 내부의 낯선 감정이나 사고를 발견하되, 그것을 파괴해야 할 적으로 보지 않고 돌봄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순간, 치유의 경로가 열리기 시작한다. 이 시는 분열의 발견이 곧 치유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상에게 거울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최고의 도구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