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시
1930년대 한국 근대 시에서 이상(李箱)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자신의 내면 의식을 낯설고 급진적인 형식으로 표출하였으며, 주로 불안하고 불편한 정서와 소외의식, 분열된 자의식을 노래하였다. 오늘날에는 자아 탐색이 당연한 문학적 주제이지만, 당시에는 ‘나의 내면’에 대하여 시를 쓴다는 발상 자체가 혁신적이었다.
이상의 대부분의 시는 전통적인 문장 기법에서 벗어나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단어를 붙여 쓰며, 생경한 기하학적 용어와 숫자, 관념적인 한자어를 사용하여 난해하게 느껴진다. 앞서 살펴본 시 「거울」은 1933년 『카톨릭 청년』에 발표된 시로 이상의 작품 중에서는 그나마 덜 난해한 편에 속한다. 그의 시는 연작시「오감도(烏瞰圖)」에서 난해함의 정점을 찍는다. 자아 분열 양상도 「오감도 시 제15호」에 이르면 급격히 악화된다. 이 작품은 「거울」 발표 약 1년 뒤인 1934년 8월 8일 『조선중앙일보』에 게재된 작품으로, 동일한 거울 모티프를 유지하면서도 자아 분열이 극단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여전히 띄어쓰기는 하지 않았으며, 행과 연 구분이 따로 없는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어 시각적으로 한층 더 갑갑해진 모습이다.
1.
나는 거울없는실내에 있다. 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이다. 나는지금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 있다. 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를꾸미는중일까
(…)
4.
내가결석한나의꿈. 내위조가등장하지않는내거울. 무능이라도좋은나의고독의 갈망자다. 나는드디어거울속의나에게자살을권유하기로결심하였다. 나는그에게시야도없는들창을가리키었다. 그들창은자살만을위한들창이다. 그러나내가자살하지아니하면그가자살할수없음을그는내게 가르친다. 거울속의나는불사조에가깝다.
5.
내왼편가슴심장의위치를방탄금속으로엄폐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을발사였다. 탄환은그의왼편가슴을관통하였으나그의심장은바른편에있다.
-이상, 「오감도 시 제15호」 부분
「오감도 시 제15호」에서 화자는 거울 없는 실내에 있으며, 거울 속의 나는 외출 중이다. 서로의 존재를 부재로써 확인하는 상황이다. 화자는 거울 속의 나를 두려워하며 떨고 있다. 시 「거울」에서와는 다르게 분신이 나를 압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관계는 이미 신뢰를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화자는 그가 자신을 해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의심한다. 자기 내부의 부정적 감정과 사고가 주체를 위협하는 상태, 즉 감정 조절의 실패 상태이다. 불안, 자기혐오, 자기 파괴 충동이 외부 인격으로 투사되어, 분열된 자아가 자기 자신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형상화된다.
화자가 거울 속의 나에게 투신자살을 권유하는 장면은 자기 파괴 충동의 극단적 외현화다. 그러나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자살하지 아니하면 그가 자살할 수 없음을” 가르친다. 억압이나 폭력으로 자신의 분신을 파괴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더 강한 반직용을 일으킬 수 있다. 섣부르게 분신을 부정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거울 속의 나는 화자를 압도할 뿐만 아니라, 잘못을 지적하며 가르치기까지 한다. 우월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마지막에 화자가 거울 속의 나를 향해 총을 쏘지만, 심장의 위치가 달라 죽지 않는 결말은 상징적이다. 자신에게서 분열된 자아는 제거될 수 없으며, 결국 그것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문학치료에서 치유란 문제 되는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고 조절 가능한 형태로 통합하는 과정이다. 이 시의 결말은 통합 이전 단계, 즉 ‘아직 화해하지 못한 분열의 지속 상태’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그들의 위계는 전복되어 분열된 자아가 점점 통제할 수 없는 존재로까지 팽창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상의 시에 나타나는 자아 분열은 병리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보편적인 현상을 예민하게 포착한 관찰의 결과이다. 「거울」이 자기 객관화의 출발을 보여준다면, 「오감도 시 제15호」는 분열된 자아가 통제 불가능한 위협으로 경험되는 극단적 국면을 보여준다.
문학치료적 관점에서 이상의 시는 ‘분열된 자아의 인식 단계’를 대표한다. 참여자가 자기 내부에 낯선 감정과 충동이 존재함을 자각하고, 그것이 때로는 자신을 위협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음을 이해하는 단계다. 이 인식 없이는 통합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상의 시는 치유 이전 단계의 심리적 지형도를 정밀하게 그려낸 텍스트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