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여사 May 09. 2024

안녕? 쿠바

  작년 11월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마이애미로 날라갔다. 


  나에게 있어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는 CSI Miami 인트로 에서 호레이쇼 반장이 악어가 나오는 늪 지대 같은 곳을 보트를 타고 날라가는 모습과 아름다운 미국 최남단 섬 키웨스트에서 헤밍웨이가 작가 인생 후반에 살면서 아름다운 글들을 썼다 라는 두 가지 내용, 그리고 하나 더 쿠바 음악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던 영화 브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장소를 혹, 가 볼 수도 있다 라는 생각만으로도, 꼭 가봐야 하는 곳이였다. 아이들은 뭐, 올랜도가서 디즈니 월드를 가는 것이 목적이겠지만, 일단 서로 목적은 달라도 가고자 하는 의지들이 있어서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가보았다. 


  생긴 모습과 달리, 고등학교 때 남의 피도 아닌, 내 피만 봐도 벌벌 떨었던 시기가 있어 의대는 꿈도 못 꾸었고 꾼 적도 없었는데, CSI 시리즈들을 열혈 팬으로 보면서 이번 생은 글렀고, 다음 생에 태어나면 법 의학자가 꼭 되고 싶다 라는 생각도 했었을 만큼, CSI 드라마 시리즈의 영향은 나에게 있어서는 지대했었다. 그 중에서도, 사장 시즌이 많고 시청자들이 많았던 라스베가스 버전도 좋아했지만 카리스마가 강력히 있어 보였던 호레이쇼 반장이 나오는 마이애미 버전을 좀 더 선호했는데, 사실 그 드라마만 보면 마이애미는 무법 천지의 도시 같아 은근슬쩍 편견도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사건 사고가 마이애미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변 중 남미 국, 특히 쿠바의 갱단까지 연결된 에피소드들도 많고 멀기도 멀어, 마이애미는 물론 쿠바까지 진짜 준비 제대로 해서 큰맘 먹고 가야 하는 곳 같아서, 한국에서는 엄두도 못냈다. 


  그런데, 미국에 있는 덕분에 쿠바 한번 가까이 가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 아무 사전 조사도 없이 마이애미 가서 호레이쇼 반장처럼 배를 타고 쿠바 갈 수 있을 줄 알고 신나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한국 여권으로 국제선을 타고 쿠바에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몰라도 (올 2월 대한민국과 쿠바는 65년 만에 공식 수교를 했다), 미국에서 쿠바를 가면 돌아올 때 미국으로 입국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출발 전날 지인으로부터 들었다. 국제 정세에 별 관심이 없었던 지라, 특히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이후 특정 기간동안 뉴스도 웬만하면 안 볼려고 했더니, 두 나라의 관계가 이렇게 바뀌어 있는지, 전혀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었다. 스스로 무식함에 답답하다. 사람이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와 정치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요즘 내 나라 상황을 봐도 그렇고, 많이 느낀다.  


  쿠바는 현존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이념으로 삼은 정당에 의해 실질적으로 통치권이 행사되는 나라로, 소위 말하는 공산국가 다섯 나라 중 하나이다. 2015년 7월 미국과 국교를 재개하여 여러 제재들이 해제되었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고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이 되면서 많은 제재 해제 정책들이 다시 뒤집혔다고 한다. 쿠바에서 재산을 몰수당한 미국인들이 쿠바와 거래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헬름스-버튼법도 2019년 부활했고, 쿠바에 투자한 EU와 캐나다, 일본 등의 반발로 합작법인 형태 투자는 소송 대상에서 제외됐으나, 미국의 제재는 쿠바 무역의 족쇄가 되어 오고 있다. 문제는, 지금도 그렇다는 것에 있다. 2021년 7월, 이러한 강한 제재 들 속에 코로나 확산과 생필품 부족 그리고 전력 난까지 겹치면서, 이례적인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730명 가까이 되는 시위대에게는 최고 20년이라는 중형 판결이 내려졌다고 한다. 시위 한번에 20년이라니...... 물론, 해당 시위는 쿠바 정부의 경제적 관리 실패와 탄압에 지친 사람들의 자발적인 표현이며, 일상 속 냉혹한 현실로 고무된 정말 살아내기 위한 시위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냉혹한 현실은 분명 미국의 경제 제재 조치들과 연관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니, 이쯤 되면 뭔가 액션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에도 쿠바 제재는, 그의 대선 공략과 달리,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여러 공식 행보를 보면, 쿠바와의 외교 관계에 대한 정책 개정은 현재 바이든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아닌 듯 하며, ‘미국의 반 테러를 위한 노력에 완전히 협조하지는 않는 국가들’ 중 하나로 쿠바를 여전히 목록에 올려 놓았다 보니 바이든 대통령은 쿠바 정책 관련 트럼프 정부와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냥, 마이애미 최남단 키웨스트 섬 Southern Most Point에서 멀리서나마 바라보면서 마음을 달래본다. 쿠바까지는 90마일, 대략 145km이니 서울에서 내 고향 영주 가는 길 만큼이나 가깝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