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 여자가 가는 봄 소풍 단골 장소는 인천대공원이었다. 면허연습 금지라고 써 있을 정도로 드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입구에 들어서면 확 트인 시야로 녹음이 눈에 들어온다. 하도 많이 가서 손바닥 보듯 공원 지도를 머리에 꿰고 있을 정도다. 우리는 정문을 기준으로 장미공원이 있는 왼쪽보다는 공원 깊은 쪽으로 이어지는 오른쪽으로 걸어 들어 간다. 호수가 나올 즈음 자전거 대여소가 나오는데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가족용 자전거를 빌려 공원을 돌곤 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그러니까 우리 세 여자 몸무게가 합쳐 0.1톤이 넘는 때부터는 그냥 걷기로 했다. 두 명이 아니, 운전대가 있는 왼쪽에 있는 운전자가 주로 패달을 밟아야 하는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꼬맹이 아가씨들이 숙녀로 자라나니 서로 운전대를 차지하겠노라고 싸웠지만 원칙적으로 운전은 아이들이 할 수 없게 되어 있고 홀로 100KG를 운반하면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다.
벚꽃이 뒤덮인 공원은 아름답다. 벚꽃이 바람에 흐드러지게 날리면 온 몸에 봄이 온 것 같았다. 보통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오는 산책이 주목적이었지만 한 번은 아예 김밥을 싸가지고 진짜 소풍을 갔었다. 돗자리를 펴고 김밥도 과자도 배 터지게 먹고는 공놀이를 하는데 셋이 삼각형을 만들어 미니 축구공 만한 탱탱볼을 주고 받았다. 힘이 왜 그리 세던지 공이 공중에 펑펑하고 날려 주변의 주목을 받았다. 어디가나 힘 좋은 씩씩한 딸들 덕에 엄마가 기가 난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하는데 열 아들 몫 하는 장군 같은 딸을 둘이나 키워냈으니 자랑스럽지만 그 만큼 뒷바라지 해야 할 일도 있었다. 펑펑 공중으로 날아간 그 놈의 공이 나무에 걸렸다. 아주 높다란 나무였다. 나뭇가지에 낀 공을 빼려고 신발을 던졌는데 애석하게도 신발까지 걸렸다. 용기를 내서 나무를 탔다. 사람들의 뭇 시선을 받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환호했다. 엄마가 나무까지 탄다고...
왕산해수욕장. 인천에는 살지도 않는데 단골 여름 방학 나들이 장소, 시도 때도 없이 바람쐬러 가는 곳이 또 인천이다. 그냥 거길 간다. 지저분한 서해의 짭쪼름한 , 깊고 푸른 동해나 거칠고 역동적인 해운대는 아니지만 잔잔한 놀만한 곳. 바다가 보고싶을 때면 아이들과 무작정 갔던 곳이다. 왕산 옆 을왕리는 너무 복잡하고 관광지다운 면모로 우리 같은 짠돌이 방문객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왕산은 한적했고, 부담이 없었다.
나야 바닷물에 들어가기 보다는 커다란 우산이나 펴놓고 돗자리에 누워 책이나 보든지 저기에서 첨벙거리는 아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게 낙이었다. 아이들이 두 어 시간 놀고 오면, 보랏빛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을 먹었다. 그 날도 우리에게 일상과 같은 날이었다. 컵라면에 웬일로 호사스럽게 소시지를 샀다. 큰 아이는 핫바를 샀다.
하하호호 세 여자의 수다는 늘 끊어질 줄 모른다. 그게 문제였다. 말없이 후루룩 들이켰어야 하는데 컵라면 한 젓가락에 수다 한 바가지 얹어 소시지를 베어 물고 오물오물 식사의 한 마디가 길어졌다. 그 때였다. 갈매기가 쏜살같이 날아와 소시지를 통째로 물고 날아갔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세 여자는 어안이 벙벙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쌍욕을 누구한테 하랴. 저 똑같이 생긴 수십 마리의 갈매기 중 누구랸 말이냐. 다시 뱉어내라고 말할 수도 없고…아이들을 깔깔대며 숨이 넘어갔다. 엄마 소시지 통째로 날아갔다고….
매년 단풍이 물들면 가는 동네 산이 지루해져서 다른 노선을 타볼까 바람을 피웠던 적이 있다. 큰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야트막한 산이라고 해서 아이들과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주차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복잡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좁은 입구 탓에 주차할 공간을 찾느라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 뭐 그럴 수 있다 여겼다.
등산을 시작하려는데 영 찜찜한 입구 탓에 주변 어르신들께 여쭈어 보았다. 거기로 가라 저리로 가라 하시는데 매번 가는 동네 산의 정확하고 넓고 정리 잘 된 입구와는 사뭇 달랐다. 오솔길처럼 나있는 등산 길에 아이들과 나는 주저주저 했다. 이러다가 길을 잃어 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말이다.
괜찮을거라 호언장담을 하고 아이들을 끌고 올라가는데 산에 오른지 한 10여분 지났을까 큰 아이가 많이 뒤쳐지고 있었다. 아이를 보니 식은 땀이 나고 있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가자고 했다. 재차 물으니 큰 일이 났다고 했다. 똥이 마렵다고…
아이고. 그 때부터 얼마나 뛰었는 지 모른다. 말했다시피 오솔길에 좁은 공원 입구까지 뛰어야 화장실이 있었다. 작은 녀석을 안고 뛰었던 것 같았다. 큰 아이 녀석의 달음질 솜씨가 그토록 뛰어 난 줄 몰랐다. 전광석화 같았다. 그러나 화장실 바로 앞에서 그만….
그 후의 일은 상상에 맡기겠다. 집에 노 팬티로 왔고, 나는 큰 아이의 바지를 빨았다. 우리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겨울은 세 여자에게 가장 놀거리가 많은 시기다. 하루가 가는 게 아쉬울 정도다. 일단, 겨울이면 빼놓지 않고 연을 날린다. 방패연을 만들어 날려 보기도 했고, 가오리연을 사서 날리기도 했고, 거금을 들여 좋은 얼레를 사기도 했다. 좁은 방구들에 세 여자가 둘러 엎드려서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정성들여 연을 만들었다. 방패가 찢어지지 않게 가는 대를 잘 끼우고 중심을 잘 잡아야 했다. 연이 완성되면, 옷을 겹겹이 껴 입고 손이 시렵지 않게 장갑을 껴고 반드시 털모자도 써야했다. 찬바람과 추위를 이겨낼 만큼 무장한 후, 이를 꽉 깨물고, 결의에 찬 발걸음으로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아무리 바람이 분다하여도 연을 어느 정도 띄우기까지가 고되다. 우리가 그렇게 고수가 아니라서 연이 시원찮기도 했지만, 찬 바람을 맞으며 숨이 헐떡일 때까지 뛰면서 연이 두둥실 날아가는 그 순간의 쾌감을 즐겼기 때문에 우리는 신나게 뛰었다. 개처럼 말이다. 연이 손톱 만큼의 높이까지 그러다가 실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연이 날아가고자 하면 가차없이 얼레를 돌려주었다. 그러면 연은 어느새 하늘의 점이 되었다. 우리는 손이 시려운 것도 귀가 어는 것도 몰랐다.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점이 된 연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겨울을 즐겼다.
세 여자는 스케이트도 수준급이다. 빙상장도 찾아 다니고, 시청 앞 스케이트 장은 당연한 방앗간이었다. 물론, 사람들에 치여 한 발치 날을 내미는 것도 수월찮지만 그곳이 주는 낭만이 있다. 헬멧 속 머리가 다 젖도록 탔고, 시간이 나면 스케이트 장 옆 덕수궁도 들렀고, 길 건너 편의점에서 먹는 컵라면은 맛이 끝내줬다.
아이들은 스케이트 타는 것도 좋아하지만 피겨 퀸이 되는 것을 더 좋아라했다. 시청 앞이 아니더라도 뒷동네 체육관에 친구들이 모이면 피겨 대회를 열었다. 창피하지도 않냐고 물어보면 뭐가 창피하냐고 되물었다. 아이들이 노는 방식은 간단했다. 노래를 틀어 놓고 김연아처럼 피겨 스케이팅을 타는 듯 온갖 연기를 다 했다. 나야 보면서 깔깔댔지만 아이들과 아이들의 동네 친구들은 진짜 혼심을 다했다. 저들끼리 우승자를 정하기도 했고 그러다 현실로 어느 순간 정신이 돌아오면 그토록 창피해 웃었다. 그 체육관에는 아이들의 친구들이 또 그 친구들의 친구들이 밤늦도록 모였고 놀고 또 놀며 잠잘 시간이 돼도 집에 가기를 싫어했다.
우리의 놀이의 정점은 눈싸움이다. 일단, 겨울에 한 두 번 폭설이 내리는 날이 바로 그 날이다. 그 날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낮이건 밤이건 상관이 없었다. 일단, 롱패딩을 입고 장갑을 착용한 다음 거대한 눈사람을 만들었다. 뭉쳐지건 안 뭉쳐지건 상관이 없었다. 포슬거리는 눈이건 축축한 눈이건 걸리면 무조건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한 덩이 몸을 만들어 놓고 지루해지면 미끄럼틀을 신나게 탄다. 눈이 오는 날 타는 미끄럼틀은 초특급 롤러코스터다. 미끄럽기가 말도 못하다. 미끄럼틀 끝에 도달하면 거의 날아가 착지한다.
그러고나서 한바탕 놀고나면 다시 눈을 굴려 눈사람을 완성했다. 완성하지 못했던 해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매년, 다른 눈사람과 만나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나서 눈싸움을 했다. 팀을 나누기도 하고 개인전을 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어느 순간이 되면 두 아이와 내가 정적으로 만났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이 순간 내려 놓고, 같은 학년 몇 학년 몇 반 누구가 되었다.
눈덩이가 날아다니기 시작하면, 살벌했다. 나는 아이라고 봐준 적이 없었다. 살이 찢어질 것 같이 눈덩이를 맞아도 침을 질질 흘리면서 코를 줄줄 흘리면서도 눈싸움에 진심이었다. 아이들이 요리조리 숨어 다니면서 넘어지고 엎어지고 눈싸움에 쓰려고 굴려 놓은 눈덩이를 다 뭉개고 가져가고 악을 썼다. 그렇게 매년 예기치 못한 폭설이 내리는 날, 눈싸움을 해왔는데 작년에는 확실히 달랐다. 덩치가 나보다 커진 아이들이 여전히 나를 정적으로 팀전을 했는데 눈을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 나는 아이들에게 외쳤다. 이거 ‘노인 학대야’라고….
가을이다.
아이들과 놀기 좋은 계절.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적어진다. 아이들 발자국이 나보다 작았을 때, 더 많이 놀아 주었을 것을... 사춘기인 아이들 마흔 중반의 나. 우린 또 어떤 계절을 보내게 될까.